(제 48 회)

제 2 장

파도소리

7

(2)

 

진성은 자기가 어떻게 위생소에 들어섰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우정 오자고 한것은 아니였는데 묵념에 잠겨 걸음을 옮기다가 멈춰서고보니 석철룡과 진영범이 누운 침대앞이였다. 머리와 오른쪽허벅다리에 흰 붕대를 두툼하게 둘러감은 석철룡이 팔굽으로 침대를 눌러짚으며 힘겹게 일어나앉았다.

《영범이가 피뜩 정신을 차렸다가 금방 또 잠들었소.》

진성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영범이가 푹 뒤집어쓴 모포를 들추었다가 살며시 내려놓았다. 영범이의 머리맡에는 어제저녁에도 보지 못한 낯선 오지단지가 놓여있었다.

《이건 뭡니까?》

《찹쌀과 꿀을 버무린 무슨 죽같은거요. 새살을 돋게 하는 보약이라나. 안경쟁이가 가져왔소.》

어쩐지 석철룡의 말투에는 약간 비양조가 어리였다.

《와서는 어쨌는지 아오? 전마선이 가라앉은게 어디쯤인가? 방향은 어떻고 거리는 어떻고… 꼭 무슨 예심원흉내를 낸단 말이요. 그래, 내가 배를 우정 가라앉히기라도 했단 말이요? 거기에 뭘 더 캐볼게 있소?》

진성은 속이 울컥해올랐지만 붕대투성이의 환자앞이여서 혀를 깨물어넘기고말았다.

《참, 아까 위생지도원이 말하는걸 듣자니까 군단에서 정치위원동지가 내려왔다던데?》

석철룡의 물음에 진성은 힘겹게 대답했다.

《지금 정치지도원을 만나고있습니다.》

《중대장은 빼놓구?》

진성에게서 대답이 없자 석철룡은 몸이 불편한지 어깨를 뒤척이였다.

《그래서 그렇게 꼬치꼬치 자료를 묶댔군. 때는 이때라는거겠지. 마침 일도 그럴듯하게 됐겠다, 무슨 험담인들 꽂아넣지 못하겠소? 모를 일이야. 물싸움때도 그래, 이번 일도 그래, 이 석철룡이가 잘해보자는 일들은 모두 꺼꾸로만 틀어박히거던. 그래, 진성동문 앉아서 벼락을 맞겠소?》

최진성은 석철룡의 넉두리를 더 들어내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아무리 앓는 몸이래도 한마디만은 하고싶었다.

《부중대장동무, 우리는 지금껏 정치지도원동무에 대해 너무 편견을 가진것같습니다. 그는 지금 동무와 나 그리고 중대의 운명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끝내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그가 미처 말을 떼기도 전에 천막출입구가 풀럭 제쳐지면서 직일병완장을 두른 군인이 뛰여들어왔다.

《중대장동지! 정치지도원동지가…》

숨이 턱에 닿은 직일병의 어조에서 이상한것을 느낀 최진성은 그의 말을 다 들어보지도 않고 밖으로 뛰여나왔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카바이드등을 켜놓은 위생소안에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나온 진성은 앞이 콱 막혀 순간적으로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돌서덜투성이의 가설부두쪽에서 불덩어리 몇개가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무엇이라고 와와 부르짖는 소리도 들린다. 무슨 일인지 생기기는 저쪽에서 생긴것이 분명하다. 진성은 직일병을 뒤에 떨구고 그쪽으로 냅다 달렸다.

가만, 방금 직일병이 정치지도원소리를 한것같은데…

좀전까지 중대부천막안에서 정치위원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있던 정치지도원이 저기서 어떻게 되였다는것인가?

한달음에 달려가보니 몇명의 구대원들이 불망치들을 휘두르며 바다쪽에 대고 정치지도원을 목이 쉬게 부르고있었다.

《어떻게 된거요? 여기서 뭣들 해?》

불빛에 번들거리는 진성의 눈을 쳐다보던 군인들이 머리를 수그렸다.

《정치지도원동지가… 정치위원동지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바다에는 왜 나갔단 말이요? 왜 나갔는가 묻지 않소?》

《물에 빠진 전마선을 찾는답니다.》

《뭘?!》

진성은 심장이 굳어져서 명치끝으로 툴렁 떨어지는것같았다.

급히 눈길을 돌려 물면우를 훑어보니 멀리서 대추씨같은 불빛이 흥떡일뿐 눈에 띄우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림짐작으로도 삼백보는 실히 떨어져보인다. 딱히 깊이를 알수는 없지만 이 주변은 기복이 심하니 바닥이 몹시 험할것이다. 험상궂은 바위뿌다귀들이 웅크린 바다물속에 들어갔다가 파도나 심해지면 큰 사고다. 그런데 그가 어쩌자고 이런 모험을 한단 말인가. 진성은 욱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여기서 왜 발만 구르고 섰소?》

《배가 없습니다. 두척 다 끌고나갔습니다.》

섬에는 뭍에 나갈 때 쓰는 련락선과 고기잡이를 할 때 쓰는 부업선 두척뿐이다. 그들은 두척이 다 필요해서라기보다 누구도 따라서지 못하게 하느라고 끌고나간것이 분명하였다.

《젠장!》

진성은 와락와락 군복을 벗어 기슭에 던지고는 바다속에 뛰여들 차비를 하였다. 와뜰 놀란 군인들이 황급히 달려들어 진성을 붙들었다.

《어쩌자고 그럽니까?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갔다간 저기까지 가내지도 못합니다. 파도를 못봅니까?》

병사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성난 사자의 털갈기같은 파도가 우악스럽게 달려들어 진성을 덮쳤다. 진성은 입안에 쓸어들어온 짠물을 쓰겁게 내뱉으면서 자기를 붙들었던 병사들을 힘껏 뿌리쳐버렸다. 그러다가 몸의 중심을 잃고 그자리에 털썩 넘어졌다. 허리까지 바다물에 잠긴채 퍼더버리고앉은 진성은 넘실거리며 얼굴을 덮치는 파도를 주먹으로 쳐갈기면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사고만 내보라! 가만두지 않겠어! 정치지도원이면 단가? 동무는 이 중대장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그렇게 독단을 부려도 돼? 어디 보자! 내 그 안경을 박살내버리겠어! 한발자국도 못움직이게! 두고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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