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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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고들 하십니다!》
반죽좋은 웃음을 짓고 구면이나 만난듯이 로동자들 한복판을 꿰지르고들어간 석철룡은 등에 지였던 조개마대를 털썩 내려놓으며 방금 이야기판을 펴놓았던 반백의 중로배를 붙들고 늘어졌다.
《반장동지! 우선 이걸 좀 받아주십시오. 아, 뭐긴 뭐겠습니까?》
석철룡은 주위를 휘 둘러보다가 어느새 눈결에 띄운 현장속보의 글줄을 뚝 따서 익살스럽게 인사를 붙이였다.
《월계획을 200%로 넘쳐수행한 레루직장 가열작업반동지들에게 드리는 우리 인민군대의 전투적인사지요. 하하하…》
뒤따라 조개마대를 내려놓은 진영범이 마대웃머리를 활 제쳐놓았다. 주먹같은 조개알들이 기름멱이라도 감은듯이 반질거리는것을 본 로동자들이 저마끔 한알씩 손에 집어들고 혀를 찼다.
《허, 이거 퍼그나 큰놈들이다?》
석철룡이 벙글거리며 시뜻하게 대꾸하였다.
《여부가 있습니까? 우리 석도의 특산물인데요. 시뻘겋게 단 강괴우에 올려놓구 두어번만 굴려보지요? 노랗게 익은 조개살이 날 잡숴주시오 하구 툭툭 튀여나오질 않는가. 둘이 먹다 셋이 죽어두…》
석철룡이 제먼저 꿀꺽 군침을 넘기며 양념을 바르자 여기저기서 구수한 소리들이 튀여나왔다.
《그것 참, 저녁교대 끝나고 한대포 하면 군턱이 지겠는데?》
《200%축하연에 조개불고기라… 군대동무들이 고맙군.》
조개마대에 정신이 팔린 반원들을 둘러보던 작업반장이 능청스러운 미소를 눈가에 띠우고 석철룡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런 귀물을 거저 먹어두 소화가 되나?》
말귀빠른 석철룡이 제꺽 말을 받아물었다.
《그야 물론 소화제를 좀 잡숴야지요. 뭐, 큰건 아니구 소화제값으로는 소철레루 몇장이면 됩니다.》
그제서야 군인들이 찾아온 사연을 알아차린 반원들이 손에 쥐였던 조개알들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석철룡은 가슴이 철렁했다.
여기서도 또 거절인가?
그까짓 조개 두마대쯤이야 수고하는 로동자들에게 지원한셈치면 되는것이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일이 아뜩하였다. 석철룡은 반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로동자들이 난처해하는 원인을 알게 되였다.
여기가 레루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직장이라고 하지만 제강소적으로 급하게 제기된 생산계획을 맞추느라 롤홈의 규격도 바꾸고 전기로에 장입하는 망간과 탄소의 비률도 달리했기때문에 당장은 곤난하다는것이였다. 이제는 다로구나 하고 모두숨을 쉬는데 아까 연방 재채기를 하던 청년이 반장의 팔을 슬그머니 끌어당기며 소곤거렸다.
《반장동지, 군대동무들이 광차때문에 그러는것같은데 레루대신 ㄷ형강을 쓰면 안돼요?》
《고정만 잘하면 레루못지 않지. 그런데 ㄷ형강은 어디 있나?》
《우리 사로청에서 구락부 보수하는데 쓰자구 좀 모아놓은게 있어요. 우린 후에 뽑아쓸셈치구 도와주자요. 군대일이 아니나요?》
이렇게 되여 석철룡은 소철레루대신 ㄷ형강을 한자동차나 싣고 석도가 바라보이는 바다가로 나오게 되였다. 물론 진지공사가 끝난 다음 도로 가져다준다는 조건부가 붙기는 했지만 이만해도 큰 횡재를 한셈이다.
어리다고 보았던 청년에게서 뜻밖의 도움을 받게 된 석철룡은 지금도 그에게 엎드려 절을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젊은 동무인데 똑똑하거던. 아무렴, 이거야 군대일이 아닌가.
전쟁이 끝난지 열여섯해밖에 되지 않았고 지금도 미국놈들이 우릴 먹자고 지랄을 하는데 군대가 있고야 나라도 있다는것을 말로만 외우는 사람들도 더러 있거던. 우선 오늘 오후에 찾아갔던 배사공아바이만 봐도 그렇지. 우리가 타고나온 작은 매생이에는 ㄷ형강을 다 실을수 없어서 배를 좀 빌리자고 했는데 대번에 딱 잘라던지지 않는가.
아무리 한t들이전마선이라고 해도 ㄷ형강을 싣는것은 위험하다고?
겉으로는 생각해주는것같지만 그게 다 손발이 시려서 하는 말이지.…
다들 그 가열공청년같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왜서인지 문득 석박골 처녀교원의 얼굴이 슬그머니 떠오르면서 그를 처음 만나던 두해전 일이 어제일처럼 삼삼히 밟혀온다.
그날은 가을치고는 퍽 음산한 날이였다. 당장 소낙비가 쏟아부을듯이 컴컴하게 흐린 하늘아래서 석철룡이 군인들의 격술훈련을 지도하고있는데 병실에서 근무대기를 서고있던 중대직일병이 난데없는 꼬마 두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잔뜩 겁에 질린 눈을 땅아래로 떨구고 발끝을 비비적거리는 꼬마들은 얼굴과 손이 온통 검댕이투성이였다. 직일병의 말에 의하면 위수구역안에 몰래 들어와 밤청대를 하다가 붙들렸다는것이였다.
《위수구역침범에다 산불미수라… 이 장난꾸러기들에게 버릇을 좀 가르쳐줘야겠군.》
석철룡은 대기병에게 훈련이 끝날 때까지 꼬마들을 벌을 좀 세우는 척 하고 돌려보내되 갈 때는 햇밤을 한배낭씩 지워보내라고 귀속말로 지시하였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보초소에 이 꼬마들의 담임선생이 찾아왔다는 련락이 올라왔다. 그리 멀지 않은 보초소앞에 서있는 녀선생을 보는 순간 석철룡은 머리가 아찔해지는것같았다.
가뜬한 단발머리에 티한점 없을것같이 맑은 살결, 달덩이같이 둥실한 얼굴, 몸에 꼭맞게 지어입은 연보라빛달린옷과 턱 한번 흐트리지 않고 이쪽을 겨누어보는 도고한 몸가짐…
석철룡은 자기가 이 처녀선생앞에서 한줌만큼 졸아드는것을 느끼자 이상한 승벽심이 살아올랐다. 그 처녀와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단박에 그자리에 주저앉을것같은 위구와 함께 어떻게 해서든 그 처녀를 피해야 한다는 마음속 몸부림이 이상하게 요동쳤다.
《중대 차렷! 격술대형으로… 벌렷!》
미모의 처녀선생에게 눈을 팔고있던 군인들이 와뜰 놀라서 대렬을 정리하였다. 별안간 성이 난듯싶은 젊은 지휘관을 처녀는 겁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석철룡은 그것을 륙감으로 느꼈다. 승리자의 쾌감같은것이 찌르르하게 가슴을 누비였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크게 구령을 치면서 병사들의 잘못된 동작을 두고 큰소리로 지적도 하고 이따금 지나치게 힘을 주어 시범동작을 해보이기도 하면서 운동장에 벌려선 군인들속을 북나들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