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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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대학 수의축산학부를 졸업하고 연구소에 배치된 정의성은 그때 닭공장에 내려와 가금의 경골성장특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있었다.

도소재지의 평범한 사무원의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어릴 때부터 두뇌가 명석하고 학구심이 남달리 강하여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그러면서도 처녀시절부터 년로보장나이까지 어느 공장 회계원으로 일해온 어머니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아서인지 생활에서 절제가 강하면서도 타산적이였고 명예심 또한 남달랐다.

그는 가금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는 남다른 야심을 안고 연구의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그무렵 닭공장에서는 공장옆 천흥천기슭에 3층짜리의 독신자 및 로동자합숙을 새로 지었었다. 아담하면서도 생활에 편리하고 설비들과 가구들도 현대적인 좋은 합숙이였다.

정의성에게 있어서 공장합숙은 침실이기 전에 학습실이였고 연구실이였다.

규칙적이고 정돈된 생활을 좋아하는 그는 자기에 대한 요구성 또한 남달리 높았다.

새벽잠이 많은 그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자명종을 새벽 4시에 맞추어놓고 세면장이 아니라 천흥천가에 나가 세면을 한 다음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다.

그에게는 대학시절부터 《전자시계》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그의 일과집행이 곧 정확한 시계였기때문이였다.

그의 방에서 문이 열리고 정확히 울리는 그의 발음처럼 규칙적인 발자국소리가 들릴 때면 합숙식당의 취사원녀인은 그때가 어김없이 새벽 4시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흰눈같이 하얀 말쑥한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 나타날 때면 사람들은 그때가 틀림없는 오전 9시반임을 알았고 19시면 항상 퇴근하려고 정문을 나서는 그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그에게는 자기의 드팀없는 일과를 방해하는 사람이 제일 싫고 귀찮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 《전자시계》는 종종 귀찮고 시끄러운 사람들을 만나군 하였다.

정의성이 닭공장에 내려온지 몇달이 지난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였다.

오전시간을 현장에서 보내고 합숙에 들어온 그는 일과대로 오후 첫 시간을 독서에 바치고있었다.

새로 나온 축산학도서를 열심히 읽어가던 그는 갑자기 소란스럽게 울리는 문소리를 듣고 눈길을 들었다.

《?!》

그는 미간을 찌프렸다. 한호실에서 생활하는 동무가 몇차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조심성없이 들어온다고 마음속으로 나무라면서 다시금 글줄을 더듬었다.

그러나 다시금 눈을 치떴다. 전실에서 무엇인가 왈칵 쏟아지는듯한 소리가 들렸기때문이다.

책에서 눈길을 뗀 그는 못마땅한 마음으로 전실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위생실이 잇달린 세면장문이 《탕!》하고 바쁘게 여닫기는 소리를 듣고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리해하였다. 그런데 더욱 놀란것은 그 다음이였다.

《수정아! 나 수건 좀 가져다줘, 어서!》

(이건 또 뭐야? …)

정의성은 눈을 흡떴다. 세면장안에서 짱짱 들려오는 목소리는 한호실에서 생활하는 남동무가 아니라 뜻밖에도 누군지 모를 처녀의 목소리였다. 세탁을 하는지 물소리까지 쫙쫙 들려왔다.

그 물소리를 뚫고 또다시 청맑은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수정아! 너 들었니, 못들었니? 수건 달라는데, 어서!》

순간 정의성은 덜컥 겁이 났다. 방에서 뛰여나가려던 그는 얼른 자기의 세면수건을 뭉그려 세면장문을 향해 홱 내던졌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뒤따라 울려왔다.

《너 단단히 성났구나. 네 수건을 던져주는걸 보니… 내가 잘못했어. 도서관에 갔댔는데 사서를 만나지 못해서 오래 기다렸거던. 아마 두시간은 기다렸을거야. 그래서 빨리 오느라 땀투성이가 됐지 뭐. 하지만 네가 부탁한 책은 다 가져왔어.》

그제서야 정의성은 누군가 자기의 방을 헛갈리고 잘못 들어왔다는것을 깨달았다.

사실 그때 공장에서 새로 지은 합숙은 출입문이며 방꾸밈새는 물론이고 비품들까지 꼭같아서 합숙생들이 층수를 헛갈리는 때가 드문하였다.

정의성은 세면장안의 처녀도 분명 자기의 방을 헛갈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서관과 책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하여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전실에 널려있는 책들을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경공업과학론문집》, 《조선수산》, 《생물학》, 《수의축산》, 《발명공보》, 《가정에서 닭기르기》…

자기도 래일 도서관에 찾아가 빌려오려던 책들이였다. 그런데 자기보다 먼저 책을 가져온 이 처녀는 누굴가? 경망스럽기 그지없는 이 처녀는?

정의성은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불안하여 서성거리기만 하였다.

자기의 방을 헛갈린 이 처녀는 군도서관에서부터 안고온 책을 전실에 내던지고 더위에 쫓기워 세면장에 뛰여든것이였다.

잠시후 물소리가 멎더니 세면장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 전실에 널려져있던 책들을 차곡차곡 포개여안은 처녀가 담쑥 방안에 들어섰다.

이슬을 머금은 한떨기 꽃처럼 아름답고 청초한 처녀…

방문턱에서 처녀의 맑은 눈동자는 딱 굳어지였다.

《동문… 동문 왜… 남의 방에 들어왔어요?》

방금전까지 깔깔거리며 새처럼 재깔거리던 그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었다.

정의성은 그의 눈길을 외면하며 뭉틀하게 내뱉았다.

《여긴 우리 방이요, 2층 5호!》

그의 말에 처녀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딱 과다졌다.

《뭐라구요? 난… 난… 우리 방인줄 알고… 이걸 어쩌나?》

당황하여 울상이 되여버린 처녀는 어느새 문을 박차고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정의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열려진 출입문을 꼭 닫으며 후-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그리고는 귀중한 독서시간을 뭉청 뺏아간 발칙하기 그지없는 그 처녀를 마음속으로 규탄하였다.

그후 정의성은 3층 5호의 그 처녀가 수의축산대학을 졸업하고 이곳에서 3대혁명소조원생활을 하고있는 송영숙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들은 이따금 생산현장이나 합숙식당에서 만나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처녀는 얼굴이 딸기빛이 되여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차수정이라는 녀동무의 등뒤에 숨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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