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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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성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갱도로 올라가는데 앞쪽에서 저벅저벅 자갈밟는 소리가 성급하게 들리더니 석철룡의 성난 얼굴이 육박해왔다.

《중대장동무, 도대체 공사를 하자는거요, 말자는거요?》

최진성은 설아 생각에서 인차 벗어나지 못하고 석철룡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고서야 그가 몹시 성이 났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입니까? 공사를 그만두다니요?》

《그런데 조개잡이는 대체 어떻게 된거요? 지금 그렇게 한가한 놀음을 하고있을 계제가 됐냐 말이요?》

진성은 그제서야 아침에 정치지도원이 하던 말이 생각히웠다.

오늘은 경리일인데 군인들을 휴식도 시킬겸 조개잡이를 조직하는것이 어떻겠는가고 했을 때 좋을대로 하자고 건성으로 대답했었다. 휴식도 휴식이려니와 식당에 부식물이 떨어져가고있는것도 사실이였다.

《그건 제가 정치지도원에게 그렇게 하자고 했던겁니다.》

석철룡은 눈살을 찌프렸다.

《동무도 그 안경쟁이장단에 춤을 추기 시작한거 아니요?》

《장단이 맞으면야 춤을 못출것도 없지요.》

《흥, 잘은 장단이 맞겠소. 그 사람이 조개잡이를 하는건 다른 목적이 있어서란 말이요.》

석철룡은 이렇게 말하면서 두손을 우그려 둥실한 원기둥모양을 만들어보였다. 그 원기둥이 무엇인지 진성은 잘 안다.

정치지도원은 회의나 강습때문에 섬밖에 나갔다가 올 때마다 베개통모양의 둥실둥실한 유리병들을 몇개씩 가지고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모두 포르말린용액을 담은 생물표본용유리병들이였다.

식당근무성원들이 부업삼아 낚아들이는 물고기들중에서 커다란 가재미나 도미같은것이 보이면 어떻게 구슬려내는지 다음날아침에는 영낙없이 그 포르말린용액속에 들어가군 하였다.

진성은 정치지도원이 아마 생물학에 취미가 있거나 그 계통의 대학을 나온 연구사출신이 아닌가 하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석철룡의 생각은 달랐다. 밉게 보자고 해서인지 억측에도 가시가 돋쳤다.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적생산관계가 완성된게 언제라고 아직도 개인상공업을 차려놓으려나? 알게 뭐요? 저런걸 어느 골목에 가서 쓱싹해버리는지…》

진성은 허구프게 웃었지만 혹시 하는 생각이 영 없는것은 아니다. 그 두터운 도수안경속에 무슨 생각이 돌아가는지 도대체 알 재간이 없다. 아무튼 이제는 해도 떨어져가는데 빨리 조개잡이를 중단시켜야 할것같다.

최진성은 석철룡과 함께 바다가로 나갔다. 퍼르뎅뎅한 바다물우에는 하얀 면내의를 입은 군인들이 한벌 덮여 갈매기떼가 내려앉은것같았다.

석도주변에는 해산물이 많았다. 그물이 없어 푹푹 건져내지는 못하였지만 장난꾸러기 병사들이 불에 달군 바늘을 구부려 만든 민지없는 낚시에도 조기나 도미, 가재미와 망둥어같은것이 곧잘 물려올라왔다.

뿌득뿌득한 바위돌을 밟으며 무릎이 잠길만큼만 들어서서 손더듬을 하면 여기저기에서 조개와 굴들이 잡히고 이따금 신발짝만한 해삼이며 밤송이같은 성게들도 묻어올라왔다. 초봄이라 아직 물이 차겠는데 아침저녁으로 굴을 뚫느라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던 병사들은 혈기가 넘치는 한창나이에다 펄떡거리는 해삼이며 주먹같은 조개를 쥐여올리는 재미에 이발을 드륵드륵 마주치면서도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아따따!》

저쪽 바위너설가까이에서 누군가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릎밖에 잠기지 않는 기슭에서 무엇을 더듬고있던 1소대의 막냉이가 팔을 잔뜩 쳐들고 바다물에 엉치를 떨구었는데 허공중에 쳐들린 그의 손목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문어가 칠칠 감겨돌았다. 보라빛이 도는 대가리가 애호박만한것이 얼핏 보기에도 두어키로는 실히 나갈것같았다.

《야, 문어 떨어진다, 기슭으로 뿌려라!》

《문어가 아니라 내 팔이 떨어질것같습니다.》

《제길, 문어한테 물려서 죽었다는 사람 못봤다. 엄살 말구 뿌려!》

《아이고!-》

울상이 되여버린 막냉이가 휘휘 팔을 두르며 기슭으로 달려나와 어푸러지자 조개를 줏던 군인들 여럿이 그에게 달라붙었다가 오히려 저들까지 문어의 흡반에 어디가 붙었는지 이크지크 비명소리들을 지른다.

《쳇, 군대라는게! 주먹만한 문어 한마릴 놓구 야단들은!》

최진성의 곁에서 문어떼는 구경을 하고있던 석철룡은 더 보고만 있지 못하겠던지 징겅징겅 물을 차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때 가설식당쪽에서 밥국통을 든 정치지도원이 마주 뛰여왔다. 정치지도원은 들고 온 밥국통을 바다물속에 쑥 잠그었다 꺼내더니 막냉이앞에 털썩 내려놓았다.

《자, 여기다 손을 넣소. 어서!》

막냉이가 아부재기를 치며 팔을 마구 휘두르자 정치지도원은 그의 손을 억지로 붙잡아 바다물이 반쯤 들어찬 밥국통속에 밀어넣었다. 서투른 가해자의 팔을 붙들고 악을 쓰던 문어는 녹아버린듯이 사라지고 뻘깃뻘깃하게 흡반자리가 난 막냉이의 팔이 쑥 빠져나왔다. 뚝심으로 문어를 뜯어낼 잡도리를 하고 달려왔던 군인들은 밥국통속에 잠겨 죽은듯이 차분해진 문어를 내려다보다가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동무들도 참, 억지로야 문어를 뜯어내오? 문어나 게발같은데 물렸을 때는 조급해말고 바다물에 담그어야 맥을 풀거던. 다들 주의해야겠소.》

정치지도원은 바다물속에 무릎을 잠그고 선 군인들에게 주의를 주고나서 벌겋게 어혈이 진 막냉이의 팔을 붙들고앉아 후후 입김을 불었다.

최진성은 자기가 한발 빨라서 막냉이의 팔에 매달린 문어와 씨름질을 시작했더라면 무슨 창피를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귀불이 벌개져가지고 물속에 잠긴 문어의 물컹물컹한 대가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찔렀다.

《거 정치지도원동무는 바다물계가 훤하구만. 평양내기라더니…》

《바다에 살아본적은 없어두 리치야 뻔하지요. 생각없는 미물이라두 저를 잡겠다는데야 당기면 당길수록 독을 쓸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지도원은 한동안이나 막냉이의 팔을 매만지더니 슬그머니 그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명남동무, 이 문어가 동무의 팔을 물어뜯은 생각을 하면 당장 모가지를 베고싶지만 어쩌겠소? 이걸 나한테 산채로 주지 않겠소?》

막냉이는 뒤더수기를 벅벅 긁으며 시무룩이 웃었다.

《이건 덩지나 컸지 찔게감으로야 뭐… 반대없습니다.》

정치지도원은 막냉이의 어깨를 툭 쳐주고나서 문어가 든 밥국통을 훌쩍 들고 천막쪽으로 달려갔다. 석철룡의 곱지 않은 눈길이 최진성의 눈길을 붙들어가지고 저것 좀 보라는듯 정치지도원의 뒤등에 끌어다던지였다.

보나마나 저 문어도 포르말린용액통에 들어간다는 말없는 힐난이다.

진성은 아무말없이 쓴입만 다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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