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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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를 떠난 승용차는 기분좋게 내달렸다.
생산부기사장 서정관과 함께 발동선에 설치된 풀절단기를 보고 들어오는 지배인의 승용차였다.
9월의 쾌청하고 청신한 바람이 차창으로 흘러들었다.
장병식지배인은 구리빛얼굴로 차창밖을 이윽토록 내다보았다.
지배인의 눈앞에는 호수가의 물속에서 건져내는 수초를 빠른 속도로 절컥절컥 보드랍게 절단하던 풀절단기의 가동모습이 보이는것같았다.
주위가 진펄로 되여있는 드넓은 호수는 봉대천과 향동천, 호중천과 구읍천을 비롯한 수십개의 크고작은 하천들이 운반해온 퇴적층이 깔려있고 거기에 오리배설물까지 흘러들어 물고기와 조개류는 물론 오리가 잘 먹는 마름과 같은 수초가 많았다.
말그대로 자연먹이보물고였다.
몇년전까지만 하여도 공장에서는 종업원들에게 수초과제를 주어서 관리공들은 물론이고 수리공이든 회계원이든 누구나 여름 한철은 호수에 들어가 수초를 거두어들이게 했었다.
그렇게 거두어들인 수초를 직장마다 나누어주군 했는데 관리공들은 작두날처럼 큰 칼로 풀을 탕쳐서 오리에게 청사료로 먹이였다.
하루 수십키로의 풀을 탕치느라 호동들에서는 칼도마장단소리가 그칠새 없었고 관리공들의 손바닥은 물집이 생기다못해 굳은살이 배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배합먹이작업반을 따로 조직하여 발동선을 타고 호수에 나가 물고기와 골뱅이, 조개도 잡고 수초도 수확하여 직장마다 공급도 하고 풀절임을 해두었다가 겨울철에 오리먹이로 리용하였다.
직장들에서는 풀절단기로 수초를 절단하여 호동마다 분배하군 하였다. 그러나 새로 온 기사장 송영숙은 이 풀절단기를 아예 수초배에 설치하자고 달라붙었다.
《바다에서는 잡아들인 물고기를 가공모선이 받아서 가공하지 않나요?
우리도 수초를 건져내는족족 절단해서 호동마다 나누어주자요. 그러면 로력도 절약되고 또 신선하고 깨끗한 풀을 오리에게 먹이니 수의방역에도 좋지 않겠나요?》
수초배에 풀절단기까지 설치하는것을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송영숙기사장은 이렇게 말했었다.
그는 설비부기사장을 휘동하여 그와 함께 두팔을 걷어붙이고 공무직장과 배합먹이작업반으로 드달려다녔다.
얼마후부터는 수초배에 나가살다싶이 하더니 끝내 풀절단기를 설치하고야말았다.
《참 좋구만! 로력도 많이 절약되구 위생성두 보장되구.》
《정말 좋은 점이 한두가지 아닌데요?》
보는 사람마다 탄복하였다.
장병식지배인도 오늘 수초배에 올라 풀절단기가 가동하는것을 보면서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의 마음은 흥그러웠다.
높아진 인민경제계획과 150일전투계획을 빛나게 수행하여 관리국은 물론이고 농업성 일군들로부터 힘있는 단위의 지배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는 며칠째 흐뭇한 기분속에서 살았다.
더우기 요즈음 그는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듯한 기분이였다.
나이많고 병약하던 전 기사장과 함께 일할 때는 언제나 그를 보살펴주어야 했고 그의 몫까지 합쳐서 발이 닳도록 뛰여다녀야 했다.
그런데 젊고 건강한데다가 열정적인 성격인 녀성기사장은 공장에 온지 몇달밖에 안되지만 어디서나 일자리를 푹푹 내면서도 지배인의 사업을 잘 받들어주었다.
사실 이번 150일전투는 송영숙의 능력과 일본새, 그의 성품과 작풍을 검증한 나날이기도 하였다.
처녀시절부터 지배인으로 사업해온 그는 생산지도와 기술지도는 물론이고 기업관리에서도 막히는데 없이 원숙하였다.
어느새 생산공정을 환히 꿰뚫고 현장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정열적으로 생산지휘와 기술지도를 하였다.
정열적이고 성실한 사람을 최고의 인격자로 생각하는 장병식에게는 기사장의 그 헌신성과 능숙한 사업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보다 현장에 나가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관리공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리는것을 보면서 성격 또한 나무랄데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일욕심이 많거던. … 지나치게…)
기사장에 대한 좋은 감정은 때로 유감스러운 생각으로 이어지군 했다.
일군이라면 응당 사업의 중심과 주선을 잃지 말고 수많이 제기되는 문제들을 생산에 복종시켜야 할것이다.
그런데 송영숙기사장은 멀리 앞을 내다보며 전망적으로 수행해야 할 기술적문제들을 왕왕 눈앞의 생산계획과 전투계획우에 올려놓군 하였다.
《우리 공장이 앞으로도 높아진 생산계획을 원만히 수행할수 있는 길은 다름아닌 첨가제와 오리털단백질먹이의 성공에 있습니다.
국산화된 우리 식의 첨가제와 털단백질먹이를 만들어내는데 공장의 래일이 담보됩니다. 그러므로 과학기술력량을 여기에 총동원하여…》
송영숙은 150일전투를 총화짓는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며칠전부터는 기술준비소에 첨가제연구와 생산을 위한 원료분쇄기와 쌍스크류식폭쇄기가 반드시 필요된다면서 그것을 위해 뛰여다녔다.
설비부기사장과 밤늦도록 설계도 하고 의논도 하더니 끝내 새 설비를 기계공장에 주문했을 때 장병식지배인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탄복하기도 했다.
새로 온 기사장으로 하여 공장의 과학기술적문제들이 모두 해결되고 보다 큰 혁신이 담보되리라는것을 그는 믿어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옥에도 티가 있듯이 기사장의 사업태도나 열정에 대해서는 나무랄데 없지만 지나친 과학기술본위주의가 본신사업에 지장을 줄수 있다는것을 느끼였다.
더우기 기술자들과 기능공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우대심은 여러차례 지배인의 불만을 자아냈다.
며칠전 공장에서 새로 지은 다층살림집을 배정할 때였다.
그때 장병식지배인은 공장입직년한과 계획수행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새 집을 배정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기사장은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기술자, 기능공들에게는 그 모든 조건에 관계없이 집을 배정해주자는것이였다. 더우기 결혼한지 1년도 안되는 알깨우기직장의 책임기사에게도 집을 배정하자고 몇번이나 제기하였다.
오래지 않아 공장이 큰 덕을 보게 될 기술자라면서 반드시 새 집을 주어야 한다는것이였다.
(기술자들을 지내 어루만지거던. … 고집두 보통이 아니구. …)
하면서도 기사장의 사업을 적극 밀어주고 지지해주는 지배인이였다.
《지배인동지!》
서정관이 그를 불렀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장병식은 대답대신 머리를 뒤좌석쪽으로 약간 돌리였다.
서정관은 지배인에게로 몸을 기울이였다.
《첨가제수송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래일… 떠나겠습니까?》
조심히 묻는 그의 말에 장병식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걸 왜 묻는가 하는 눈빛이였다.
《이번엔 전번분기에 가져간것보다 수량이 적어서 그럽니다. 이달에도 단백질먹이연구용으로 오리털을 적지 않게 내보내다보니…》
서정관은 지배인의 눈치를 예민하게 살피며 말끝을 흐리였다.
이윽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엔 보름정도 기다렸다가 오리털을 더 보충해가지고 떠나는것이 어떨가 합니다.》
《…》
장병식은 이번에도 침묵을 지켰다. 생산계획수행에 모든것을 복종시킬 대신 자기의 배심대로 기술적인 문제만을 우선시하는 기사장에 대한 불만이 또다시 머리를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