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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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께서는 리철봉의 얼굴이 얼른거리는듯싶은 차창에 시선을 바투 가져가시다가 창유리에 비낀것이 자신의 다음이야기를 기다리는 김순일의 초조한 얼굴이라는것을 알아보고 얼른 고개를 돌리시였다.

《둘째원인으로는… 사회정치학자들의 경직된 사고방식에 있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인 판도에서 보면 어떤 철학이든 크게 두가지 즉 관념론과 유물론, 형이상학적인 사고와 변증법적인 견해를 축으로 리론문제를 다루고있습니다. 말하자면 물질론의 자막대기에 맞지 않는것은 덮어놓고 관념론이며 관념론이 아니면 물질론이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우리 수령님께서 창시하시고 혁명투쟁전과정에 구현하여오신 주체사상은 관념론으로도 설명할수 없고 물질론으로도 재여볼수 없는 전혀 새로운 사상입니다. 수령님께서 지금까지 자신의 사상을 새로운 철학과 리론으로 정립하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리론은 자꾸 내놓아서 무엇하는가, 혁명투쟁에 구현하고 우리 인민이 현실생활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만류하셨기때문에 세상사람들은 아직 그 가치와 의미를 잘 모르고있습니다. 머지 않아 수령님의 사상과 리론, 투쟁방법이 전일적으로 체계화되고 새로운 철학으로 정식화될 때 사람들은 인류해방의 영원한 지도사상이 바로 조선에서 태여났다는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김순일은 인류가 오래동안 열과 빛을 느끼고 눈으로 보면서도 그 열원과 광원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던 태양의 비밀을 밝혀내듯 이 땅우에 현실로 펼쳐지고있는 위대한 리념을 새로운 사상과 철학으로 정식화하실 원대한 포부와 신념이 그이의 심장속에 맥동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아울러 이것은 리론상의 철학이 아니라 미구에 도래하게 될 국가의 정치구도, 세계의 정치경로로 될것이라는 확신까지 갈마들었다.

생활속에서 도출된 위대한 발견이 새로운 지도리론으로 현실에 일반화될 때 어떤 변혁이 일어나는가를 잘 알고있는 김순일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송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저… 방금 하신 말씀이 우리 군사리론분야에까지 해당된다고 생각해도 좋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로숙한 군사리론가의 물음이 안고있는 커다란 의미를 느끼시며 힘주어 대답하시였다.

《사실 우리 인민군대는 수령님을 모시고 그 첫걸음을 뗀 순간부터 오늘까지 군인대중중심의 전략과 전술을 일관하게 견지하여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벌써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를 조직하고 정규적혁명무력건설시기 학원을 비롯한 인민군대안의 일부 부대들에서부터 당단체를 내오도록 하시였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문화훈련국을 총정치국으로 개편하여 군대안의 당사상사업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일으키도록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의도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설명하시였다.

《…이렇게 항일무장투쟁시기에나 조국해방전쟁시기에나 또 전후복구건설에 이어 지금까지도 군대의 정치사상적위력, 도덕적위력을 앞자리에 놓는 수령님의 이 군건설사상은 인민군대의 모든 활동의 기초로 되여왔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직 그것을 리론으로 정식화하고 체계화하지 못했을뿐입니다. 지금 인민군대에서 군벌관료주의여독을 청산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지만 군사과학리론분야에서도 역시 정치성을 배제한 일체의것을 불허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인민군대의 정치군사적위력가운데서 정치적위력, 사상적위력을 더 중시해야 합니다.》

김순일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자기는 지금껏 군사리론연구에서 물질적인 측면에 많이 치우쳐있은것같다고 심심한 반성을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며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그러고보니 화가 복이 된셈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아한 시선으로 김순일을 쳐다보시였다. 군사가 특유의 어법인지 김순일은 이야기의 가운데토막부터 턱 꺼내놓은것이였다.

《글쎄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나갔던 우리 아들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줄창 아버지의 대를 잇겠다고 념불외우듯 하더니 몇해전에 덜컥 정치대학에 올라오지 않았겠습니까. 사내가 일단 군복을 입은바에야 군사가가 되여야지 정치일군은 또 뭐냐고 싫은소리를 좀 했더니 이 애비를 군사만능주의자라고 제편에서 비판하더란 말입니다. 허허허…》

김정일동지께서는 호기심이 부쩍 동하시였다.

《아니, 집에 그런 아들이 있단 말입니까?》

김순일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이마전에 흐트러져내린 머리카락을 번듯하게 쓸어올렸다.

《처음엔 아버지가 부총장을 하는 대학에 오는게 뭣해서 뿔빠져달아난줄 알았는데 후에 알고보니 제나름의 신념이 있는것같습니다. 제 말로는 항일투사인 자기네 군단부사령관의 말에 감동이 돼서 정치일군이 될 결심을 내렸다고 하는데…》

《항일투사라니 누구말입니까?》

《우리 아들이 47군단출신이니까 아마 리오송동지였던것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전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21군단 정치위원으로 사업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 자신을 찾아왔던 리오송의 얼굴이 불쑥 떠오르시였다. 정치일군이라고는 한번도 해보지 못한 자기가 어떻게 그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내겠는가고 걱정스러워하던 리오송이 47군단에 있을 때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군사일군이 희망이라던 한 젊은이를 정치일군대렬에 세워놓았는가.

그이께서 이런 생각을 하고계시는데 김순일은 내친김에 아들자랑을 펼쳐놓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학구열이 높고 머리가 비상했다는것, 등잔불밑에서 밤새 책을 너무 많이 보아 그런지 젊은 나이에 벌써 돋보기안경까지 끼게 되였다는것, 그렇다고 하여 골방샌님은 아니고 사람들과의 교제력도 있고 음악과 체육에도 소질이 있다는것…

《제 피줄이래서보다 녀석이 그만하면 괜찮은편입니다. 이따금 말하는걸 보면 씨알머리도 좀 배긴것같은데 어딜 배치받게 될는지…》

김순일의 아들이 정치대학을 졸업한후 여직 미배치로 있다는 말을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반색을 지으시였다.

《그러니 아직 배치를 못받았단 말이지요? 그럼 어디 다른데 보낼게 있습니까? 아들의 희망을 바꾸어놓았다는 당사자에게 보내야지요.》

이 시각 김정일동지께서는 석도에 내려간 최진성이네 중대에 아직 정치지도원을 임명하지 못했다고 하던 리오송의 말을 상기하시였다. 여느 중대와 달라서 좀 능력있는 정치지도원을 보내야겠는데 마땅한 대상이 없어 결심을 내리지 못하겠다고 하던 리오송이 김순일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나올것인가. 우선 리오송자신이 정치대학으로 떠밀어보낸 군인이라니 파악이 있을것이고 륙감적인데가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그가 석박골중대의 정치지도원으로는 꼭 적임자일것만 같으시였다.

《그럼 집의 아들은 21군단에 보내는것으로 락착지읍시다. 총정치국일군들에게는 내가 말해보겠습니다. 좀 어려운 곳에 보내도 일없겠지요?》

김순일은 자기가 바라는것도 바로 어려운데서 단련시키는것이라고 말씀올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럼 됐다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발차를 알리는 호각소리가 울리자 우물주위에 몰켜섰던 사람들이 급히 승강대쪽으로 달려왔다. 끝내 드레박을 구하지 못했는지 빈 물병을 들고 달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평양에 도착하면 곧 철도려객들의 음료수를 대책할데 대한 문제를 상정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하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리철봉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드레박이 없어 시원스럽게 우물을 퍼올리지 못하고있던 려객들처럼 리철봉이도 미지의 심연에서 새 작전안을 통쾌하게 퍼올릴 《드레박》이 없어 애를 먹고있는것은 아닌지

이제 평양에 가면 최현을 만나 그 문제도 빨리 알아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그날 평양에서 최현을 만날수 없으시였다. 그는 《EC-121》호사건으로 정세가 점점 긴장해지자 사무실에 더 앉아배기지 못하고 전선동부로 나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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