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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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봄풀들이 다보록이 돋기 시작한 들판과 야산들이 멀리 바라보인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것은 지구가 생겨 수억만년동안이나 거듭되여온 자연현상이지만 그 평이한 자연속에도 인간이 아직 풀어내지 못한 수수께끼가 얼마나 많은것인가. 하물며 만물의 령장이라는 인간과 그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현상속에는…
《물론 력사적, 지리적제한성이 있는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제한성의 요인이 그것밖에 더 없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지금 현대수정주의자들은 이 리론에 기초하여 과도기의 임무가 끝나면 프로레타리아독재가 필요없다고 주장하고있고 그때문에 국제적으로는 사회주의혁명에서 어느 단계까지를 과도기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심각한 론쟁이 벌어지고있습니다. 그렇다면 리론상제한성은 무엇이겠습니까?》
김순일은 손에 든 고뿌조차 잊어버리고
《원래 맑스는 헤겔의 학설에 심취되여 그것을 깊이 파고드는 과정에 그 오유를 밝히기도 하고 선행시기 부르죠아사회과학이 달성한 성과들을 섭취하기도 하면서 유물변증법인 맑스주의를 형성하였습니다. 오유를 밝힌다는것은 당시 사회정치적령역을 굳건히 지배하고있던 관념론과 형이상학을 때려부시는것인데 그러자니 자연히 물질중심의 변증법을 무기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결국 맑스나 엥겔스는 물질론을 강조하던 나머지 사회력사운동도, 경제적사회구성상태의 발전도 물질론에 기초한 자연사적운동으로 해석하게 되였고 사람의 사상의식에 대해서는 도외시하게 되였습니다. 말하자면 농사군이 곡식밭에 뛰여든 산짐승을 쫓느라고 사냥총을 들고나섰던것인데 나중에는 그 사냥총을 병쟁기가 아니라 농쟁기라고 규정해버린셈입니다. 혁명투쟁에서 자기의 계급적처지와 힘을 자각한 인민대중의 사상의식을 무시하고 물질중심론에 집착한것은 선행리론의 시대적제한성이 아니라 본질적오유입니다. 만약 이 렬차가 달리고있는 요인중에서 전기와 기관, 차량과 바퀴, 레루와 같은 물질적조건들만 렬거하고 기관사를 빼놓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김순일은 얼른 사이다고뿌를 내려놓고 양복웃주머니에서 수첩과 원주필을 꺼내들었다.
《이제 곧 예술영화로도 나오게 되겠지만
《지금 저 북방에서 손발을 얼구면서 밤낮이 따로 없는 창조전투를 벌리고있는 영화예술인들도 그렇고, 당 제5차대회를 맞으며 이르는 곳마다에서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고있는 로동계급도 그렇고 우리 인민은 지금 어떤 물질적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과
김순일은 펜을 멈추고 무릎을 탁 치며 얼굴을 쳐들었다.
《제 이제 평양에 도착하는 길로 사회과학원에 나가야겠습니다.》
《사회과학원에요?》
《몇달전에 교수안집필에 필요한 도서들을 얻으러 거기 갔다가 전쟁시기 남조선에서 들어왔다는 한 철학교수를 만났댔는데…》
《아, 사회과학원에 그런 교수가 한사람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는 얼마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사회과학토론회에 갔다가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 조선의 정치론설들을 보면 혁명투쟁에서 사람의 사상이 1차적요인이고 물질은 부차적요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맑스주의와 배치되는 주관관념론의 변종이 아닌가, 이렇게 들이대기때문에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는겁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솔직히… 론박을 하고싶었지만 머리 허연 교수와 론전을 벌렸다가 실수라도 하면 군대의 체면이 깎일것같기도 하고 철학문제에는 별로
《그러니 그때 꿀먹은 벙어리노릇을 한걸 봉창하러 가겠다는것입니까? 하하하…》
《사상은 결코 강압으로 인식되는것도 아니고 그렇게 인식된 사상은 사상이 아니라 상식에 불과합니다. 사상이란 원리적인 인식이 필요한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 질문이 제기되였고 그 학자는 왜 대답을 못했는가? 거기에는 크게 두가지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김순일은 잠기가 말짱 달아난 눈으로
《첫째로는 그들이 주관관념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데 원인이 있습니다. 주관관념론은 물질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세계의 존재자체를 오직 사람의 의식에만 직결시켜보는 허황한 철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세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부정하는것이 아니라 인정하기때문에 그 물질세계를 사람의 리익에 맞게 개조변혁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는것이며 바로 그 투쟁에서 사람의 사상의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것입니다. 바로 며칠전에도 우리 인민군대는 크기로나 성능으로나 대비도 되지 않는 비행기로 적들이 〈하늘의 요새〉라고 자랑하던 대형간첩비행기를 단방에 격추시키지 않았습니까. 물질중심론으로 설명한다면 도저히 성립될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은 부인할수 없는 현실입니다. 지금 해군에서도 적들의 대규모함선집단을 우리식으로 까부시기 위한 준비를 하고있습니다.》
리철봉의 단단한 어깨와 너부죽한 얼굴이 차창에 비낀다. 군인치고는 사색가형으로 생각을 너무 옴하게 하는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한개 군종사령부의 참모장으로서는 오히려 그편이 훨씬 믿음이 가기도 하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