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1 장

푸른 호수

11

(2)

 

그의 말을 또다시 직장장이 받았다.

《예, 수의사동무가 그걸 연구했기때문에 알낳이률을 높이면서도 건달오리수를 줄여서 배합먹이두 많이 절약됐습니다.》

직장장은 자기 집 자랑에 성수가 난 아낙네처럼 《우리 수의사》라는 말을 그냥 곱씹으며 말하였다. 사실 말이 없고 성실하면서도 실력가인 수의사덕에 직장사업이 잘된다는것을 잘 아는 직장장이였다.

그들은 종금호동을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영숙은 수의사에게 털단백질먹이의 소화흡수률과 기호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의 물음에 리병우는 뜨직뜨직 대답하더니 《털단백질이야 좋은거지요. 헌데…》하고 말꼬리를 흐리는것이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송영숙이 얼른 그 말꼬리에 매달렸다. 리병우의 어조에서 그 어떤 불만같은것을 느꼈기때문이였다. 그의 눈빛은 진지해졌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무슨 일인지…》

그는 리병우를 고무하면서 은근히 대답을 재촉하였다.

《다른게 아니구…》

수의사는 힘들게 뗀 말을 잇기가 몹시도 괴로운듯 다시 말꼬리를 여물구지 못하고 두눈만 꺼벅꺼벅하였다. 자기가 한 말의 후과에 대하여 타산한다고 짐작한 송영숙은 아예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곧추 쳐다보았다.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말씀하세요. 연구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든 가정사정이든 뭐나 다 좋아요. 그러니 어서! …)

정기도는 큰 눈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직장장도 안타까운지 킁킁 코소리를 내였다.

리병우는 그제야 입에 가로질렀던 빗장을 뽑았다.

《글쎄… 공장에서 누군가 첨가제를 연구한다던데… 그게 어떻게 됐는지… 지금 수입첨가제를 사오느라 오리털을 몽땅 수출하는데 그래가지고는 털단백질이 아무런…》

말하던 사람도 듣고있던 사람도 다같이 눈길을 떨구었다.

송영숙은 리병우가 다 하지 못한 뒤말이 무엇인가를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지금처럼 오리털을 몽땅 수출하면 털단백질먹이가 제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등 필요없다는것이였다.

원료자재가 없는데 연구를 해서는 무엇하겠는가고 리병우가 물을것만 같아서 송영숙은 은근히 가슴을 조이였다.

심중해진 그의 얼굴을 보고 리병우와 직장장은 새로 온 녀성기사장이 아래사람들의 의견을 심중히 듣고있는것이라고 생각할것이다.

그러나 송영숙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털단백질연구와 첨가제연구가 이렇게 밀접한 련관속에 있다는것을 전혀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직장장의 말에 의하면 그전에는 오리겨드랑이의 보드라운 털만 골라서 수출하였는데 지금은 꼬리나 날개쪽털이며 오염된 털까지도 다 세척하여 수출한다는것이다. 생산이 높아지면서 첨가제량이 부족하기때문이라는것이다.

(고기생산을 높이기 위한 결정적고리는 역시 첨가제로구나. …)

송영숙은 첨가제연구의 절박성에 대하여 다시금 새롭게 깨달았다. 하루빨리 첨가제연구에 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실험실문제때문에 하루이틀 시간을 보낸 자기자신이 민망스러웠다.

(하루빨리, 한시바삐 연구에 진입하자. 그러면 실험실도 생기고 방도도 떠오를것이다. 그렇다! 빨리! 한시바삐! …)

송영숙의 머리속엔 오로지 이 하나의 생각뿐이였다.

결심을 굳히며 구내길을 따라걷던 그는 감나무호동옆에 서있는 리봄순을 띄여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수집음을 담고 얌전히 인사하는 그를 본 송영숙은 시험호동관리공이 여기엔 왜 왔을가 하면서 쳐다보았다.

《딸이 또 점심식사를 가져왔구만.》

직장장이 리병우에게 하는 말이였다.

그제야 머리를 수굿하고 걷던 리병우가 눈길을 들었다. 그의 얼굴은 처음으로 밝아졌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딸에게 다가갔다.

《봄순이가 수의사동지네 딸인가요?》

송영숙은 직장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예, 금이야 옥이야 하는 외동딸입니다. 딸 하나야 잘 낳았지요.》

직장장은 여전히 리병우의 좋은 점에 대해서만 확대시킬뿐 어두운 가정생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송영숙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리병우와 봄순이를 쳐다보면서 그들의 곁에 수정을 세워보았다.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음을 맞춘다면 얼마든지 행복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공직장장도 두사람 문제를 해결해보려구 애쓰는구나. …)

그는 방금전에 만났던 방인화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와 힘을 합쳐서 수정의 가정문제를 해결하리라 마음다졌다.

얼마후 그는 자전거를 끌고 종금직장정문을 나섰다.

지금껏 느낀것이 많고 또 그것이 심중하고 절박한 문제들이여서 송영숙은 그 모든것을 하나하나 되새겨보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큰길에 나서서 자전거에 몸을 실으려던 그는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농립모를 깊숙이 눌러쓰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람은 당비서 김춘근이였다.

송영숙은 가볍게 머리숙여 인사하였다.

《종금직장에 갔댔습니까?》

김춘근이 그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헌데 무슨 생각을 하댔기에 몇번이나 불러도 듣지 못합니까?》

《저…》

송영숙은 갑자기 말문이 굳어졌다. 머리속에서 고패치던 여러가지 생각을 정립하여 한마디로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것이다.

기사장의 얼굴에 씌여진 복잡한 심리를 읽은 김춘근당비서는 손바닥으로 구레나룻을 쓸어만지며 빙그레 웃었다.

《요즘 친정어머닌 앓지 않습니까? 늙은이들이 생소한 곳에 오면 앓는다는데… 그리구 적적할텐데 우리 집에 자주 다니라구 하십시오. 멀지두 않은데요. 나두 시간을 내서 찾아가보겠다구 생각만 하면서 가보지 못해서 미안하군요.》

그는 휴식날엔 친정어머니와 세대주랑 함께 집에 놀러오라고 당부하듯 말했다. 옛 정치위원시절처럼 송영숙을 만날 때마다 백상익의 안부를 물으며 그의 생활에 남다른 관심을 돌리군 하는 당비서였다.

그는 송영숙과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수의사 리병우를 만나보았는가고 물었다.

《예, 지금 만나보고 나오는 길입니다.》

《그래 만나보니 어떻습니까?》

당비서는 호기심이 짙은 눈길로 다시 물었다.

《사람은 진국이더군요. 문제는 가정생활이 안착되여야 할텐데…》

송영숙은 여전히 머리속이 복잡하여 말꼬리를 흐리였다.

기사장의 생각이 자기와 한곬으로 흐른다는것을 알게 된 김춘근은 제꺽 긍정을 표시하였다.

《옳습니다. 그 동무의 가정생활에 연구성과가 달려있지요. 그런데 그 동무의 안해는 영 절벽인데다가 본인은 그저 어정쩡해있으니…》

그는 속이 타고 안타까운지 쩝 소리를 내며 입을 다셨다.

군인출신의 당일군인 그는 모든 문제를 명령식으로 할수 없는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와했다.

당비서의 마음을 헤아려본 송영숙은 수의사의 안해였던 차수정이 대학동창생으로서 닭공장에서 3대혁명소조생활도 함께 한 잊을수 없는 동무라고 말하였다.

김춘근당비서는 뜻밖의 소식인듯 걸음까지 멈추었다.

《그렇습니까? 그러니 보급원동문 요즘 대학동창생을 만나서 기뻐하겠군요. 기사장동문 물론이구.》

당비서의 얼굴은 확 밝아졌다.

그의 얼굴에 씌여진 그 어떤 기대감을 읽은 송영숙은 자기가 그들의 가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써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터놓았다.

《수정동문 원래 좋은 동무입니다. 난 그 동무도 우리 공장을 위해 뭔가 특색있는 기여를 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마음을 놓을수 있겠군요.》

김춘근당비서의 얼굴에는 만족한 웃음이 담겨졌다. 이윽고 그는 심중한 기색으로 말하였다.

《난 기사장동무가 이제는 공장의 현행생산실태며 전망적인 사업들과 함께 기술자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했으리라구 보면서 며칠전부터 공장의 전망과 관련해서 얘기를 해보려구 했소.》

당비서는 자기의 생각을 정립하느라 그러는지 몇번 마른 기침을 하였다.

《기사장동무두 잘 아는것처럼 축산부문에서 고기생산은 배합먹이보장과 먹이원천탐구를 떠나 생각할수 없는게 아니겠소?

그래서 지금 공장에서는 자체로 털단백질먹이연구도 하구 여러가지 사업들도 하구있지. 하지만 무엇보다먼저 해결돼야 할 문제는 첨가제지. 자체로 첨가제문제를 해결하지 않구서는 털단백질먹이가 제아무리 좋다구 해두 그 덕을 볼수 없지 않소.》

(당비서동지도 다 알구계시누나. …)

송영숙은 저도 모르게 호- 한숨을 내쉬였다.

그 한숨소리에 김춘근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아름찬 과제때문에 한숨이 나오는 모양이지요?》

그는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이윽고 그는 다시 정색을 지었다.

《너무 어렵게만 생각지 마십시오. 난 우리 동무들이 꼭 첨가제연구에서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문제는 시간이지요.

내 그래서 기사장동무한테 격식없이 당적분공을 주려구 하는데…》

당적분공이라는 말에 송영숙은 약간 걸음을 멈추었다. 그 어떤 경건한 감정이 그의 온몸에 굽이쳤다. 그리고 긴장해졌다.

송영숙과 걸음을 맞추며 김춘근은 자기의 표현대로 격식없이 말했다.

《당적분공이란 다름아니라 정기사동무의 첨가제연구와 함께 털단백질먹이연구를 힘자라는껏 도와달라는겁니다. 물론 본신사업이지요. 하지만 그들과 인간적으로 마음을 합치구 지혜를 합쳐서 하루빨리 성공의 날을 앞당겨달라는겁니다.》

송영숙은 머리를 수굿한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였다.

선듯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그의 침묵을 무언의 대답으로 리해한 김춘근은 자기도 힘껏 도와주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송영숙은 이번에도 침묵을 지키였다.

당비서가 주는 과업은 지극히 당연한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자비하고 가혹한 형벌을 언도받은 심정이였다.

(정의성의 첨가제연구를 도와주다니…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을…)

야속하고 억울하기도 하였다.

문득 자기자신이 지금 첨가제연구를 하고있는중이라고 말을 할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서슴어졌다. 당적분공을 회피하기 위한 출로를 모색하느라 그런다고 생각할것같아서였다.

갑자기 그는 비칠하였다. 너무 자기 생각에 옴하여 발을 곱디딘것이다.

《왜… 왜 그럽니까? 예?》

당비서는 놀라며 말까지 더듬었다.

《아니, 저… 자전거발디디개에 걸려서…》

거짓말을 하느라 송영숙은 말까지 더듬었다. 그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그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증명해보이느라 괜히 자전거발디디개를 툭 차기까지 했다.

그럴수록 얼굴은 홍당무우가 돼버렸다.

이윽고 그는 심호흡을 하며 당비서와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걸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