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1 장

푸른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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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외기러기가 된 모습으로 교단에 나서기도 싫은데다가 학교에 있으면 떠나간 남편생각이 더 자주 떠올라 교원생활을 그만두고 공장도서실관리원 및 출판물보급원이 되였다.

말없는 책을 벗삼아 살아가려는것이였다. 책이야말로 절대로 배반을 모르는 벗이였다.

공장의 일군들은 학생들을 구원하고 희생된 기능공학교 교원의 안해인 차수정을 위해 보급실 가까이에 새 집도 지어주고 그의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었다. 그러나 떠나간 남편에 대한 생각과 외롭고 고독한 생활만은 그 누구도 가셔주지 못했다.

몇년동안 외롭고 쓸쓸한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날이였다.

그날 남편의 맏누이인 가공직장장 방인화가 수정을 찾아왔다.

인정많은 방인화는 수정의 처지를 깊이 동정하면서 자기의 옆집에서 사는 종금직장 수의사 리병우와 가정을 이루라고 진심으로 권고하는것이였다.

수정에게는 방인화가 무척 고마왔다. 방송화와는 달리 동생을 잃은 후에도 수정을 남같이 여기지 않고 따뜻이 대해주던 그였다.

하지만 차수정은 리병우와의 문제만은 랭담하게 거절하였다.

떠나간 남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찬 가슴에 선듯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더우기 젊고 미남자인데다가 리지적이면서도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하여 공장일군들과 학생들속에서 신망이 높았던 남편에 비해볼 때 리병우는 너무도 눈에 차지 않았던것이다.

나이차이도 많은데다가 첫눈에도 멀짝해보였으며 이모저모로 부족점이 많았다.

(혼자 살면 살았지 어떻게 저런 사람과…)

수정은 속으로 코바람을 불었다. 변변치 못한 사람을 대상자로 내세운 방인화를 은근히 민망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공장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기술자인데다가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오리털단백질먹이를 연구하고있다는 점이 점차 그의 마음을 봄눈처럼 녹여주었다. 그와의 재혼으로 자기의 운명도 달라질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리상적인 과학자, 기술자부부가 될수 있지 않을가. …)

하지만 꿈과 현실을 일치시킨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리병우와의 가정생활은 수정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리봄순이라는 고운 이름으로 불리우는 외동딸과 함께 살던 리병우는 겉모습그대로 물렁팥죽이였다. 우물쭈물하고 미적지근한것을 딱 질색하는 수정은 외동딸의 눈치만 흘끔흘끔 살피면서 주대없이 노는 리병우에게서 심한 경멸감을 느끼였다.

결국 두번째 결혼생활도 1년만에 막이 내려진셈이였다.

그는 이따금 까닭모를 설음과 분노, 까닭모를 질투심으로 아픈 가슴을 달래며 한밤을 눈물속에 뜬눈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괴로움을 남들앞에서 절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흔살가까운 나이에 독수공방하는 그를 보고 덕이 없는 녀자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차수정은 코웃음쳤다.

(덕이 없구 불쌍하다구? 왜? 남편두 자식두 없어서? … 괜찮아! …)

그는 오연히 머리를 쳐들고다녔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비웃으며 도전해나서듯 랭소를 머금고 입귀를 실그러뜨렸다. 그때마다 생기를 머금은 한송이 꽃잎같던 입술은 떨어진 호박꽃처럼 돼버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칭찬에 떠받들려온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을 눈아래로 내려다보며 깔보았고 눈에 거슬리면 따벌처럼 톡톡 쏘아주는데 습관되였다.

습관과 천성은 쌍둥이형제이다. 자기에 대한 지나친 우월감으로 하여 그는 더욱더 깔끔하고 야비한 성격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오늘 송영숙을 만나고보니 마음이 나약해지고 그지없이 쓸쓸하기만 하였다. 자기의 운명이 더할나위없이 가엾고 또 허무해보였다.

송영숙에 비하면 자기는 얼마나 불행한 녀자인가.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견해와 기준은 제나름대로이다. 누구는 단란한 가정생활에서 그리고 누구는 높은 직위와 영예를 지니는데서 또 누구는 성스러운 사업에 한생을 다 바치는데서 행복을 찾는다. 그래서 행복이란 스스로 만족해하는 사람들의것이라고 하는것이다.

차수정은 가사에 파묻히지 않고 자기가 사랑하는 책을 벗삼아 사는것을 행복이라고 자부해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한갖 자기자신에 대한 위안이며 기만이라고 생각되였다.

(영숙인 정말 크게 발전했구나.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야. 거기에 비하면 나는…)

집에 들어선 그는 점심먹을 생각도 다 잊고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서글픈 생각외에 그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까닭모를 설음에 북받쳐 어깨를 떨며 오래오래 흐느껴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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