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1 장
푸른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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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도 모르는 끌힘에 의하여 송영숙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던 차수정은 집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의 마음은 그지없이 쓸쓸하기만 하였다.
총총걸음으로 직장과 직장을 오가며 도서보급을 하고 예약사업을 하려고 뛰여다니던 그답지 않게 머리를 수굿한채 기력이 다 빠진 늙은이처럼 맥없이 걸었다.
그의 눈앞에서 송영숙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품위있고 우아하면서도 지성미가 어려있는 모습이였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자기
삶의 광택이런듯 유난히 반짝거리던 아름다운 머리를 그려보던 수정은 긴 한숨을 내그었다. 생각할수록 자기
(내가 언제부터 이 꼴이 되였을가. … 영숙이와 어깨를 겨루던 내가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였을가. …)
그의 가슴은 그 누군가의 거악한 손길에 사정없이 할퀴우고 뜯기운듯 쓰리고 아팠다. 소리내여 울고싶기도 하였다.
차수정은 오리공장과 가까운 호수가주변의 어느 채종농장 농장원의 넷째딸로 태여났다.
어릴 때부터 그는 남달리 령리하고 공부도 잘하였다. 코잔등에 주근깨가 다문다문하고 입모양이 꽃잎같은 단발머리소녀는 어느해 전국청소년학생들의 알아맞추기경연에서 영예로운 1등수상자가 되였었다. 그의 모습이 텔레비죤화면에 나타난 그날은 온 마을, 온 학교가 명절날이였다.
그가 개선
그의 부모들도 내리내리 딸만 다섯을 낳은중에 그래도 옥돌이 하나 삐여졌다고 입을 다물줄 몰랐다.
차수정은 고향마을의 자랑으로 떠받들리였다. 그는 공부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다 잘했다. 종다리처럼 청고운 목소리로 노래도 잘 불렀고 탁구 또한 체육단선수 못지 않게 잘하였다.
남들이 놀랄 정도로 리해력이 빠르고 사고가 민첩한데다가 판단이 정확한 그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한번 보면 사진기였고 한번 들으면 록음기였다.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수정은 다재다능한 자기의 재능을 뽑내며 여기저기에 모두 희망을 걸어보았다.
녀성과학자, 녀성박사, 녀성영웅이 되고싶었다. 그러다가도 조명등 빛이 눈부신 화려한 무대가 눈앞에 떠오르며 녀가수를 꿈꾸기도 하였다. 이국의 하늘가에 람홍색공화국기발을 휘날리는 체육인들의 모습을 텔레비죤화면에서 보고는 탁구선수가 되여 세상에 이름을 날려볼가 생각했다.
수정이 수의축산대학을 지망한것은 우연이였다.
가금업의 새 력사가 펼쳐진 오리공장에서 녀성기술자로 한번 이름을 떨쳐 또다시 고향마을 호수가를 자랑하려는 즉흥적인 생각에서였다. 부모형제들도 그의 희망을 지지해주었다.
차수정은 대학 전과정을 송영숙이와 함께 보내였다.
공부도 함께 하였고 기숙사생활도 한호실에서 함께 하였다. 그들은 공부에서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은근히 경쟁하기도 하였다. 처음 그들의 실력은 어슷비슷하였다.
그러나 발열량으로 비교한다면 차수정은 벼짚불이였고 송영숙은 참나무숯불이였다. 송영숙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폭넓게 공부하고 깊이있게 파고들군 하였다. 그의 변함없는 열정과 진지하고 꾸준한 노력앞에서 수정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가깝고 친한 사이였다. 그들사이에는 네것내것이 따로 없었다. 그들은 사물함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사소한 간격도 없이 생활하였다.
막내딸을 찾아 대학에 자주 오군 하던 송영숙의 어머니는 수정이를 친딸처럼 여겼고 의학대학을 졸업한 그의 언니 송은숙도 수정을 친동생처럼 사랑해주었다.
방학때가 되면 수정은 호수가의 고향마을이 아니라 송영숙이네 집이 있는 군부대마을로 가군 하여 부모형제들을 섭섭하게 해주기도 하였다.
그들이 대학공부를 하던 그 시절은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어려운 나날이였다.
그때 딸자식 많은 차수정의 집형편은 그 누구의 집보다 어려웠다.
주위환경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군 하는 수정은 어려운 가정사에 위축되여 대학생활을 그만둘가 하는 생각을 가진적도 있었다. 그러나 송영숙과 그의 어머니 문춘실의 고무와 도움에서 힘을 얻고 대학을 떠나지 않았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들은 3대혁명소조생활도 닭공장에서 함께 하였다. 수정의 표현대로 대학기숙사를 닭공장으로 옮겨놓은셈이였다.
3대혁명소조생활이 끝난 다음에야 그들은 헤여졌다.
송영숙은 희망대로 닭공장에 그냥 남았고 차수정은 오리공장기능공학교 교원으로 배치받았던것이다.
오리공장의 래일을 담당해갈 기술자, 기능공들을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키워가리라는 포부를 안고 교단에 나선 그는 송영숙이와 헤여질 때의 약속대로 한달에 한번씩 꼭꼭 편지를 썼고 또 회답도 받았다.
공장에 배치된 그 이듬해에 그는 기능공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함께 하던 방인화의 남동생 방영진이라는 청년을 가슴속에 간직하게 되였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열중하고 쉽게 권태감을 느끼군 하는 그였지만 다정다감하고 박식하고 헌신적인 그 청년만은 그의 마음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곧 행복한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결혼후 3년만에 그의 남편은 호수가얼음구멍에 빠진 소학교의 나어린 학생들을 구원하고 희생되였다. 너무나도 뜻밖의 불행을 당한 수정은 그때까지 이어오던 송영숙이와의 편지거래를 끊어버리고말았다. 송영숙이 학위를 받은데 이어 닭공장 지배인이 되였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는 더더욱 편지를 주고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자기의 처지는 너무도 처참했던것이다.
부모와 형제들은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살자고 말했다. 수정은 그 권고를 뿌리쳤다. 불행해진 모습으로 고향에 들어서고싶지 않았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