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1 장
푸른 호수
9
(1)
송영숙은 다시 배합먹이직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지난밤 교대에서 전동기고장으로 세웠던 대형원료혼합기가 가동한다는 전화를 받고 직접 현장에 나가 확인하려는것이였다.
새벽녘에야 고장을 퇴치하고 생산에 들어갔다는데 그동안 다른 이상은 없는지 몹시 궁금하였다. 오리고기생산에서 선행공정인 배합먹이생산이 하루라도 중단되면 그것은 큰 사고였다.
송영숙은 자전거발디디개를 힘껏 밟았다.
며칠전부터 그는 자전거를 타고 현장들에 나가군 하였다.
전염병예방을 위해 분산되여 자리잡은 생산직장들을 걸어다니는것은 힘도 들거니와 막대한 시간랑비였다.
닭공장과 달리 생산현장들이 멀리 떨어져있다는것과 딸의 수고를 먼저 헤아려본것은 문춘실이였다. 그는 이사오기 전에 집짐승들을 모두 수매하여 손녀의 옷가지와 딸의 자전거를 사주었던것이다.
송영숙은 어머니가 사준 새 자전거를 남편에게 주고 남편이 타고다니던 자전거를 자기가 탔다. 남편이 타던 자전거도 몇년전에 어머니가 사준것인데 정히 타고다녀서 아직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송영숙이 배합먹이직장정문에 들어서니 설비부기사장과 서정관이 마당에 서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송영숙은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어떻게 됐어요?》
대형원료혼합기의 가
《예, 제대루 돌아갑니다.》
설비부기사장이 얼른 대답하였다. 서정관과 동갑나이지만 벗어진 이마때문에 나이들어보이는 그는 간밤의 설비사고때문에 은근히 긴장되여있었다.
《공무직장에서 나왔댔어요?》
송영숙은 혼합기의 가동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며 다시 물었다.
《예, 나왔다가 방금전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대답에 송영숙은 머리를 끄덕이며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먼발치에서도 혼합기의 동음이 고르롭게 들려왔다. 현장에 들어서니 혼합기옆에 서있던 직장장이 어느새 기사장을 띄여보고 모자를 벗어들고 겁석 인사를 하였다.
송영숙은 눈으로 인사를 받으며 기대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강냉이와 콩깨묵, 집짐승뼈와 조가비, 감탕과 첨가제를 비률대로 장입하는 기대공의 걸싼 작업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잠시후 지게차에 실려온 강냉이며 콩깨묵마대들이 넓은 작업장의 한켠에 쌓여졌다. 뒤따라 원료에 혼합될 첨가제마대들도 실려왔다. 수입첨가제였다.
송영숙의 마음은 삽시에 싸늘하게 얼어들었다. 그는 첨가제마대들이 쌓여진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배합먹이에서 첨가제는 4%의 적은 수량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루에 수십t씩 생산되는 배합먹이에 들어가는 첨가제의 량은 매일 수백kg이 된다. 이 적지 않은 수량을 보장하기 위해 공장에서는 오리털을 수출하여 벌어들인 자금으로 첨가제를 사오고있지만 그것도 이런저런 조건으로 하여 어려운 형편이였다.
닭공장에서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송영숙은 수입첨가제를 쓰지 않고도 고기생산을 높일수 있는 국산화된 새로운 첨가제를 만들어내리라 결심하고 그 연구를 시작했던것이다.
오리공장에서도 자체실정에 맞는 첨가제를 만들어내여 수입첨가제를 사오던 자금으로 배합먹이를 더 마련한다면 지금보다 고기생산을 훨씬 높일수 있는것이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축산부문에서 첨단을 돌파해야 할 부문을 종자와 첨가제라고 하는것이다.
송영숙은 이제는 더 미루지 말고 한시바삐 첨가제연구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다졌다. 이제는 어느 정도 새 직무에 대한 견해도 서고 공장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한 조건에서 첨가제연구는 더이상 미룰수 없었다.
문제는 실험실을 어디에 꾸리는가 하는것이였다. 며칠전부터 은근히 실험실문제를 두고 생각이 많았던 그였다. 자기 사업을 원만히 수행하면서 짬시간과 밤시간을 내야 하므로 사무실에서도 가깝고 또 집에서도 그닥 멀지 말아야 한다.
기사장사업이 아니라면 사람 좋고 고지식하면서도 경영관리를 잘하는 윤흥식직장장에게 실험실을 부탁하고싶었다. 그러나 생산2직장은 공장과 너무 떨어진 곳이였다.
문득 정의성의 시험호동과 기술준비소가 떠올랐다. 모든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진 곳에서 연구를 다그치고있는 그가 부러웠다.
다음순간 마음속으로 선포한 과학기술경쟁과 그를 압도하려는 열망으로 가슴이 들뛰였다. 은근히 초조감까지 느껴지였다.
계량되고 포장된 배합먹이마대들이 줄줄이 콘베아를 타고 제품창고로 운반되는것을 지켜보던 송영숙은 지게차의 경적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에야 말없이 자기뒤를 따르는 서정관과 설비부기사장을 보았다. 그들은 새로 온 녀성기사장이 기대고장때문에 지난밤에도 현장에서 꼬박 새우다싶이 하였고 지금도 생산문제로 마음을 놓지 못하는것이 옹색하여 은근히 긴장되여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고장을 퇴치했군요. 다행입니다.》
송영숙은 그들을 돌아보면서 한마디 하였다.
머리를 끄덕이는 두사람을 보면서 송영숙은 그들에게 실험장소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해볼가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기가 현장들을 오가면서 맞춤한 곳을 찾아야겠다고 고쳐 생각하였다.
《직장장들에게 용기관리문제를 강조해야겠어요. 운반과정에 배합먹이를 허실하지 않도록 말이예요.》
콘베아에 실려가는 배합먹이마대를 가리키며 그는 언제부터 생각해오던 문제를 재삼 강조하였다.
두사람은 동시에 알겠노라고 대답했다. 기사장이 미모의 젊은 녀성이지만 기업관리와 생산실무에서 막히는데가 없이 원숙하고 실력가라는것을 번마다 느끼군 하는 그들은 심중하게 접수하고 받아들였다.
송영숙은 생산공정들과 기대공들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본 다음에야 현장을 나섰다. 마당에 세워두었던 자전거를 끌고 정문을 나선 그는 내친 걸음에 생산1직장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자전거에 오르려던 그는 누군가 자기에게로 곧추 다가오는것을 느끼고 눈길을 들었다.
《영숙아!》
낯모를 녀인이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것을 듣고 그는 의아한 눈빛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다음순간 그는 탄성을 질렀다.
《수정이!》
송영숙은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는 분명 대학동창생 차수정이였다.
그들은 와락 한덩어리로 합쳐졌다.
손과 손을 맞잡으며 원무하듯 빙그르- 돌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서로가 몇번이고 몇년만인가고 물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처럼 마주보며 소리내여 즐겁게 웃었다.
웃을 때마다 꽃잎같은 입술을 꼭 오무리고 미소를 짓군 하는 차수정은 박속같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우리 공장 기사장이 됐다지? …
넌 정말 하늘높은줄 모르고 발전하누나. 축하한다! 몇번씩이나 사무실에 찾아갔는데 매번 현장에 나가고 없더구나. …》
차수정은 여위고 주근깨가 다문다문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악의없이 흘겨보았다.
송영숙의 얼굴에 무척 락심해하는 표정이 실리였다.
《넌 여기서 그냥 살았니? 난 네가 친정집으로 아예 간줄 알고…》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현장에 나가군 하면서 왜 수정이를 만나지 못했을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 넌 지금 어느 직장에서 일하고있니?》
송영숙은 잡은 손을 더 꼭 쥐며 호기심을 안고 물었다.
그러자 지금껏 웃고 떠들며 활기에 넘쳐있던 수정은 쑥스럽게 웃었다.
그는 시들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난… 보급원이야. 공장출판물 보급원, 도서실도 함께 보면서…》
큰 공장의 기사장이 된 동창생에 비하면 자기는 너무도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그의 얼굴은 약간 붉어졌다.
수정의 속마음을 읽은 송영숙은 더욱더 친근하고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보급원? 좋구나! 넌 정말 좋은 일을 하는구나!》
《좋긴 뭘… 너에 비하면야…》
차수정은 여전히 쑥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송영숙의 남편이 군인민위원회 계획부원이며 멋쟁이미남자라는것과 얼마전에 전 기사장의 집으로 이사해왔다는것까지 알고있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