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1 장

푸른 호수

8

(2)

 

그의 아버지 송천하의 고향은 38도선을 눈앞에 둔 개성이였다.

분렬된 조국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뼈아프게 체험한 아버지 송천하는 중학교를 졸업한 다음 희망대로 의학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조국통일의 성전에 한몸 다 바칠 열혈의 꿈을 안고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군인이면서도 언제나 학구적이고 진취성과 향학열이 높았던 송천하는 강원도의 전연지구에 위치한 어느 인민군부대에서 군의로 복무하였다.

어느해 출장길에서 그는 몸매 갈람하고 웃음많은 한 처녀를 알게 되였다. 열정적인 성격에 노래 잘 부르고 손풍금을 잘 타는 그 유치원교양원처녀와 결혼한것은 이듬해 가을이였다.

그들사이에서 송은숙이라고 부르는 맏딸과 작은딸 영숙이가 태여났다.

송천하는 자기의 두 딸을 무척 사랑하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두 딸과 안해가 기다리는 집보다 군인들의 병실에서 생활하는 날이 더 많았다.

아버지가 집에 오는 날은 명절이였다.

어머니도 그날이면 집안팎을 알뜰히 거두고 두 딸에게 고운 옷을 갈아입히였다. 그리고 경쾌한 칼도마장단을 울리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남쪽지방사람인 아버지는 생채나 랭료리보다 더운 음식을 좋아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구미에 맞게 볶음을 잘 만들었다.

화끈 달아오른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볶음을 만들 때면 기분좋은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기군 하였다. 그러면 어린 영숙은 아버지가 집에 오신다는것을 제꺽 알아차리군 하였다.

영숙은 나비처럼 춤추며 마당가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마을앞에 키높이 자란 황철나무아래에 옹송그리고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군부대병실쪽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엎어질듯 달려가군 하였는데 그러면 아버지는 억센 두팔로 막내딸을 닁큼 안아들군 했다.

군복에 슴배인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아버지는 두 딸에게 어려서부터 책을 사랑하는 습관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재미나는 책들을 가져다주면서 열심히 읽도록 하였고 어떤 날에는 밤을 새워가며 우리 나라의 력사와 지리를 비롯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딸에게는 아버지의 팔베개를 베고 흥부와 놀부에 대한 이야기며 효녀 심청이와 춘향이 그리고 강감찬, 을지문덕, 리순신장군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력사에 이름을 남긴 녀성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좋았다.

어느날 큐리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마리 큐리는 뽈스까가 낳은 딸이다.

우리 나라에도 큐리부인과 같이 조국을 지키구 빛내인 훌륭한 녀성들이 많단다. 그들은 모두 조선이 낳은 딸들이지. … 은숙이와 영숙이도 공부를 잘해서 이다음 우리 나라를 지키고 빛내이는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

새별눈을 반짝이며 아버지의 말을 듣는 영숙의 어린 가슴은 이름할수 없는 충동으로 콩콩 높뛰였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입속으로 조용히 되뇌여보았다.

《조선의 딸… 조선이 낳은 딸…》

그후에도 그는 이 말을 자주 곱씹어보았다. 그러면 웬일인지 자기의 키가 한뽐씩 자라는것 같았고 지혜의 샘도 퐁퐁 솟아오르는것 같았다.

무엇인가 크고 성스러운 일에 자기를 깡그리 바치고싶은 충동으로 가슴을 울렁거리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이야기속에 나오는 남복차림에 말을 타고 달리는 설죽화가 자기처럼 생각되기도 하였고 인간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닌 등불처녀 나이팅게일처럼 무엇인가를 위해 밤을 새며 새날을 맞이하고도싶었다.

참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영숙을 꿈많은 처녀로 성장시켜주었다.

어머니는 찬찬한 성미인 큰딸은 남편처럼 의사로 키우고 곱게 생긴 막내딸은 음악가나 예술가로 키우려고 생각하였다.

안해의 생각을 아버지는 적극 지지해주었다.

《난 반대없소. 우리 은숙이는 군의로 키우고 막내 영숙이는 인민군협주단 작곡가로 키우고…》

그러나 영숙은 음악가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부모의 꿈에는 아랑곳없이 늘쌍 집짐승들과만 놀았다. 어머니가 메워주는 손풍금은 아무리 봐도 집짐승들을 데리고 노는것보다 재미나지 않았다.

노래를 불러도 그는 닭장이나 토끼우리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춤을 춰도 강아지나 오리를 데리고 놀면서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양지쪽창문가에 우리 집 토끼

잠만 깨면 호물호물 잘도 먹지요

어느날 그는 새끼토끼 두마리를 방안에 들여다놓고 언니와 같이 놀다가 그만 창문옆에 놓인 손풍금을 넘어뜨렸다. 빨간 눈을 깜박이며 큰 귀를 쫑긋하고 깡충깡충 뛰여다니는 새끼토끼가 손풍금뒤에 숨은것을 잡으려다가 그렇게 된것이였다.

손풍금덮개가 떨어진것을 보고 언니는 겁이 나서 왕 울음을 터뜨렸다.

뒤뜰에 심은 약초밭의 김을 매던 어머니가 놀라서 뛰여들어왔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아버지도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무슨 장난질인가고 두 딸을 꾸짖었다. 동생이 안아들여온 토끼를 데리고 놀았던 언니는 그냥 울면서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영숙은 앵두입술을 옥물고 머리 한번 가로 젓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바닥을 두드리며 욕을 하였다.

《또 이런 장난질을 하겠니, 응?》

했으나 작은딸은 여전히 새침한 기색으로 버티기를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상 재미나는 놀이가 없었고 토끼와 함께 뛰여노는 장난을 그만둘것 같지 못했던것이다.

끝내 작은딸에게서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조용조용 타일렀다.

《짐승들을 깨끗한 집안에 들여오면 안된다. 알겠니?》

그제서야 영숙은 머루알같은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머리를 까딱까딱 하였다.

언제인가 집에 오셨던 할머니는 장난 세차고 류달리 고집이 센 작은 손녀를 보며 혀를 찼다.

《우리 작은손넨 승질이 괄구 고집이 너무 세서…》

그래도 좋았다. 집짐승을 데리고 맘껏 놀수만 있다면…

부모가 바라는대로 어릴 때부터 동네아이들에게 솔잎침도 잘 놓아주고 모래약도 지어주던 맏딸 은숙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의학대학 학생이 되였다.

그러나 영숙은 음악대학이 아니라 수의축산대학을 지망하여 어머니를 깜짝 놀래웠다. 어머니는 당장 음악대학으로 지망을 바꾸라고 강요하였다.

아버지만은 작은딸의 희망을 지지해주었다.

영숙이가 대학으로 떠나는 날 아버지는 군부대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역전에까지 나와서 그를 바래주었다.

그날 아버지는 막내딸의 크고 정기어린 눈동자를 기대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영숙아! 세상에서 제일 성스럽구 아름다운 일은 조국을 위해 자기를 다 바치는것이란다.

공부를 잘해라! 그래서 이다음 우리 나라 가금업의 기둥감이 되거라! 아버진 널 믿는다. …》

그러나 이것이 막내딸에게 한 마지막말이 될줄은 누구도 몰랐다.

언제나 병사들의 건강을 위해 험한 벼랑길도, 수십리 밤길도 마다하지 않던 아버지는 전연지구에 매설된 적들의 지뢰에 의하여 마흔일곱살의 젊은 나이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던것이다.

한생토록 조국을 지키고 빛내이기 위해 불같이 살다가 불같이 희생된 아버지였다. 그 누구보다 나서자란 이 땅을 사랑하고 통일된 조국의 부강번영을 바라고 또 바라던 아버지였다.

영숙은 훌륭한 아버지의 모습을 언제나 잊지 못하였다.

대학으로 떠나는 날 자기를 바래주며 하시던 말씀도 항상 명심하였다.

대학 전과정을 최우등으로 마치고 학위를 받던 날에도,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던 날에도, 한개 공장의 지배인으로 임명된 날에도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며 아버지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군 하였다.

오리공장 기사장으로 임명받은 날에도 이렇게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아버지! 오리공장은 우리 나라 가금업의 새 력사가 깃든 크나큰 공장이예요. 난 그 공장의 기사장이 되였어요. 아버지의 말씀을 명심하고 더 많은 일을 하겠어요. …》

어렵고 힘든 날이면 더욱더 크게 안겨오는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영숙은 지치고 힘들어 쓰러졌다가도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입술을 옥물고 일어나군 하였다.

한생토록 아버지의 당부대로 살기 위해 자기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지금도 송영숙은 길지 않은 한생을 조국수호의 길에 다 바친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며 나라의 가금업발전에 이바지하는 큰 일군이 되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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