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8

(1)

 

요즈음 인민군협주단에서는 전에 없던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무실과 퇴근뻐스, 사택을 련결하는 세 삼각점만을 뱅뱅 돈다고 하여 《삼각참모》라는 별호를 등에 지고다니는 대렬참모가 정치부장의 방에 대렬문건들을 한아름씩 안고 들어갔다가 저녁늦게야 땀을 흘리며 나오는가 하면 연출가, 지휘자들을 비롯한 창작가들은 한달에 한번도 하나마나하던 기량판정을 매일같이 반복하군 하였다.

집체훈련을 할 때는 단장과 정치부장을 비롯한 지휘부성원들이 여느때없이 객석에 모여앉아 무대쪽을 힐끔힐끔 살피며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우고 무엇인가 조용히 수군거리군 하였다. 그럴 때 보면 모두가 함께 고개를 끄덕거리는 일은 극히 드물고 누군가는 완강히 고개를 젓고 또 누군가는 손에 든 문건에 손가락을 눌러가며 열심히 설명하기도 하였다.

정면으로 비쳐드는 옥소등빛때문에 객석쪽을 똑똑히 가려볼수는 없었지만 어떤 선별사업이 진행되고있다는것만은 누구나 온몸으로 느꼈고 그 내막을 먼저 알고싶어 몸살들을 앓았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라 대체로 이런 때는 귀가 밝은 연주가들, 입이 빠른 재담수들, 감각이 예민한 성악가들보다 손발날랜 무용과배우들이 한발 앞서군 한다. 며칠도 못가서 녀성합숙 무용과침실에서부터 신빙성있는 소문이 새여나오기 시작했다.

《협주단인원들을 대폭 축소한대. 성분도 따지고 가정환경도 보고. 이전에 민족보위상한테서 무슨 선물을 받았던 사람들까지 깨깨 검토한다나. 이게 바로 군벌관료주의와의 투쟁이라는거야.》

《장섭연출가는 정치부장동지방에 불리워가서 두시간이나 체조를 당했대. 왜라니? 관료주의자라는거지.》

《거 왜 기악과의 영옥이 있지 않니? 무용반주할 때마다 발장단치면서 활을 긋는 바이올린 2번수! 그 앤 전쟁때 오빠가 행방불명됐는데벌써 눈치를 채구 가극단에 가서 인물심사까지 하구 왔다더라. 가극단 지휘자는 호박이 넝쿨채로 떨어졌다고 입귀가 귀박죽밑에까지 올라가더라나.》

《차라리 가극단에 가는것두 좋지 뭐. 거기선 인차 큰 가극을 만든다는데. 우리처럼 북통을 메구 소편대공연이나 다니기보다야 뭐…》

《모를 소리다?… 여기서 내보낸 애를 가극단에서라구 받아줄가? 거기두 문턱이 형편없이 높을텐데… 혹시 거기 지휘자가 애잡짤한 영옥이얼굴에 반해서 헤뜬 소릴 한건 아니야?》

《어쨌든 조만간에 무슨 회오리바람이 불긴 불 모양이야. 누가 날려가구 누가 남게 되겠는지.》

처음에는 소곤소곤하던 소문이 얼마 안가서는 가지를 뻗치고 잎사귀까지 부룩하니 돋아서 별의별 말들이 다 들렸다. 설아는 간이 콩알만해지고 온몸이 귀가 되여 신경을 도사렸지만 다행히도 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물론 자기의 리력문건에는 이렇게 씌여있을것이다.

고향은 길림성 왕청현의 양자툰, 1944년생, 아버지 정영식, 어머니 한소영, 어머니와 함께 중국에서 살다가 1958년에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버지를 찾아 귀국, 아버지는 1950년 락동강에서 전사…

그 글줄뒤에 숨어있는 진실은 아직 누구도 모르고있다.

설아는 10여년전에 자기가 삼촌의 말을 따른것이 오늘에 와서 얼마나 다행이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켠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그때문에 말갛고 희던 얼굴은 파르스름하게 질리고 피기가 사라져버린 입술은 까틀까틀하게 터갈라졌다. 설아는 풀덤불에 고개를 박은 까투리처럼 어떻게나 모든것이 빨리 지나가주었으면 하고 조마조마한 속으로 빌뿐이였다. 그런데 불안스럽게 바라보던 비구름은 홀연 지나치고 생각지도 못했던 구름에서 비방울이 떨어졌다.

방금전에 있은 회의때였다. 객석의 맨 뒤구석에 고개를 수그리고 앉은 순간부터 자기 생각에만 옴해있던 설아는 옆에 앉은 동무의 손가락에 허리를 찔리워 일어서서야 연탁에 서있는 장섭연출가를 알아보았다.

연출가의 군복은 여느때나 다름없이 몸에 딱 붙고 단정했으나 군관혁띠의 멜띠가 좀 늦추어졌는지, 아니면 목단추가 풀렸는지 어딘가 후줄근해보이는 모습이였다. 주석단에 앉은 정치부장이 설아에게 물었다.

《설아동무가 어디 한번 말해보오. 동무는 정말 그 북통들을 싣고가면서 다른것을 느끼지 못했소?》

설아는 한동안 얼떠름한 기색으로 주석단과 장섭연출가를 번갈아보았다. 북통이라면 지난해에 차에 싣고나갔던 그것밖에 없는데 이 회의에서 왜 그것이 토론되는것인가.

《장섭동무는 아직도 자기를 정당화하는데 어디 당사자의 말을 좀 들어보기요. 동무는 혼자서 그 북통들을 싣고오라고 한 연출가의 지시가 지나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소?》

설아는 별로 깊이 생각해볼 사이도 없이 《없습니다. …》하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답해버렸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자기가 무엇인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없었다?》하고 반문하는 귀에 선 목소리가 탁상마이크를 통해 크게 확산되여 들려왔다. 설아는 눈길을 쳐들지도 못했다. 아마 주석단에 정치부장과 함께 앉아있는 총정치국의 지도성원인 모양이다.

《그러니 동무는 장섭연출가동무의 관료주의적인 사업작풍이 퍽 마음에 드는게구만.》

가벼운 웃음이 터져올랐다가 슬며시 가라앉았다.

이때 연탁쪽에서 장섭연출가의 거친 목소리가 울렸다.

《저는 이 자리에서 잘못을 고치겠다고 외교적인 발언을 하고 비판을 모면할수도 있지만 연단에 선 기회에 제 견해를 좀 말해야겠습니다.》

정치부장이 연출가를 제지시키더니 곁에 앉은 지도성원과 몇마디 주고받는것같았다. 이윽고 장섭연출가에게 언권이 차례졌다. 연출가는 군복매무시를 바로하고나서 웅변이라도 하듯이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연출가는 창조과정뿐아니라 배우들에 대해서도 책임집니다. 물론 그들의 정치생활이나 사생활 같은것은 별문제지만 그들의 기질과 성격이 창조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때문에 부득불 여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설아동무는 천성적인 예술적소질도 있고 어지간한 기량도 있지만 성격이 유약하고 소심성이 많습니다. 저는 이 동무의 장래발전을 위해서 우정 그런 단독임무를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키우자는 립장이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관료주의로 되는지 저는 잘 리해되지 않습니다.》

또다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눈길을 드니 얼굴이 칼칼해보이는 지도성원이 자기앞에 놓인 종이장들을 몇번 뒤적이다가 연탁쪽으로 고개를 돌리는것이 보였다.

《연출가동무, 물론 동무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 나는 예술을 잘 모르지만 동무의 그 책임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오. 그런데 동무는 지금 문제의 본질을 딴데로 가져가는것같소. 우리는 어떤 책임에 대하여 말하는것이 아니라 동무의 독단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행동에 대해 추궁하는것이요. 제기된 자료에 의하면…》

지도성원은 자기가 쥔 종이장에 적힌것이 분명한 장섭연출가의 관료주의적인 사업작풍을 적라라하게 렬거하였다.

갓난애를 가진 녀배우에게 휴식시간을 보장해주지 않아 젖먹이아이를 업고 협주단정문에서 기다리던 그의 시어머니가 정치부에 신소…

예술과에서 합의를 보고 무대미술가들이 한주일이나 품들여 만든 장치물을 자기 기호에 맞지 않는다고 하루밤동안에 다시 만들어내라고 강요…

창조시간이 바쁘다고 하여 정기학습에도 참가하지 않고…

《그 북통문제도 같소. 예술행정도 거치지 않고 무규률적으로 마구 지시를 주다보니 어떻게 되였소? 북통 하나가 분실된것은 물론…》

엉거주춤하고 서있던 설아가 저도 모르게 주석단쪽에 대고 가냘픈 소리를 질렀다.

《저… 잃었던 북은 찾아왔습니다.》

설아에게 말을 끊기운 지도성원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처녀를 바라보는데 정치부장이 반쯤 일어서며 《북 한개가 문제가 아니란 말이요》하고는 설아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설아는 고개를 꺾으며 자리에 앉았다. 호 한숨을 내쉬며 두손을 외투주머니에 쑤셔넣었는데 오른손에 빨깍거리는 종이가 잡힌다. 뜬금으로라도 외워낼 진성의 쪽지편지다.

《북을 직일관동지에게 맡기고가오. 중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무런 냄새도 빛갈도 느끼지 못할 마른 나무토막같은 글이였다. 그러나 설아는 최진성이 봉인도 하지 않은 쪽지편지를 남에게 맡기자니 그렇게밖에 더 쓸수 없었을것이라고 넘겨짚고말았다.

이름대신 《중위》라고 쓴 글만 보고도 설아는 지금까지 받은 두장의 편지를 통하여 진성이 혹시 자기를 남다르게 생각하고있지 않는가 하고 품었던 엷은 억측이 확신으로 굳어져버리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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