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7

(2)

 

최진성은 책상우에 테놓은 《용광로》담배곽에서 담배 한가치를 뽑아물고 아궁쪽을 넌지시 건너다보았다. 석철룡이 주머니를 몇번 더듬거리다가 불을 쑤시던 장작개비를 연기가 펄펄 나는채로 쑥 내밀었다. 최진성은 빨간 불티가 앉은 장작개비끝에 담배가치를 들이대고 몇모금 뻑뻑 빨다가 쿨럭쿨럭 기침을 깇어댔다.

《젠장, 피울줄도 모르면서 랑비는!》

석철룡이 담배를 이리 내라는듯이 손을 내밀며 핀잔을 하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뒤를 달았다.

《헌데 거 최동무 일은 간단히 넘어갈것같질 않습데.》

진성은 두어모금도 빨지 못한 가치담배를 석철룡에게 넘겨주며 비주름히 웃었다.

《나야 그 싸움을 말리려다 보뚝밑에 묻히기까지 했던 사람이 아닙니까.》

《그것때문이 아니라… 듣자니 이번 회의때 동무 아버지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면서?》

최진성은 목구멍으로 신물같은것이 울컥 올리밀었다.

《담화에 갔던 군인들치구 동무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는것같소. 중대생활을 어떻게 했는가? 병사들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가? 아버지에 대한 말을 한건 없는가? 집에는 갑자기 왜 갔는가? 뭐 등등 이런거요. 난 그저 그러루하게 대꾸했는데 병사들이야 모르지. 이런 판엔 있는 도깨비, 없는 도깨비 다 나오니까. 동무하구 가까운줄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영범인 어제밤 두번이나 불리워갔댔소.》

진성은 이제야 자기가 중대에 들어섰을 때 군인들이 왜 자기를 서먹서먹하게 대했는지, 영범이가 왜 자기를 슬슬 피해달아났는지 깨도가 되는것같았다. 등뒤에서 벌컥 문여는 소리와 함께 써늘한 바깥기운이 풍겨오더니 직일병이 들어섰다.

《중대장동지, 지도성원동지가 부릅니다.》

아궁앞에서 불을 쑤시던 석철룡이 최진성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두눈을 끔뻑해보였다.

《누가 벌써 보고를 한 모양이구만. 어디 용감히 싸워보우.》

최진성은 책상우에 놓았던 군모를 으스러지게 구겨쥐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직일병을 따라갔다.

림시 담화실로 꾸렸다는 독신군관침실은 자기가 있던 방이라고는 꿈도 못꾸게 정갈하였다. 흙묻은 작업복들이 되는대로 걸려있던 옷걸이에는 상좌견장이 달린 새파란 군복외투가 반듯이 걸리고 침대우에는 늘 구깃구깃하고 담배내가 배여있던 누런 백포대신 하얀 백포가 깔린것이 꼭 매끈하게 다듬어놓은 눈판같았다. 얼굴이 약간 칼칼해보이는 상좌가 책상을 마주하고 침대탈의판우에 단정히 앉아있었다. 그는 방에 들어온 진성을 피끗 쳐다보고는 짤막하게 물었다.

《집에 갔댔소?》

《예…》

진성은 아무런 흥심도 없이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건방지군.》

상좌는 진성의 시들한 목소리를 이렇게 규정해버리더니 가슴에 딱 붙어있던 책상모서리를 조금 밀어냈다. 삐그덕 하고 바닥이 긁히우는 소리가 그의 울끈한 심기를 대변하듯 위혁적으로 울리였다.

《아버지는 만나고왔소?》

《만났습니다.》

《무슨 말을 나누었소?》

《우리 가정문젭니다.》

《가정의 운명에 대한 문제겠지. 그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좀 들어봅시다.》

진성은 상좌가 만년필뚜껑을 빙글빙글 돌려 벗기는것을 보자 길숨한 고개를 외로 틀며 시쁘둥하게 대답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린 가정적인사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듣자니 동문 그 집의 친아들은 아니구 양아들이라던데…》

《피를 물려준 부모들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만. 그러니 동무에겐 기회가 있는셈이요. 양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면 동문 새 출발을 할수도 있겠소.

관계를 끊어버린다?!

집에 들렸을 때 아버지도 그렇게 말했더랬지. 이제라도 성을 갈고 인연을 끊겠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그러나 그때 최진성은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전쟁때 저 분계선너머 경상남도 함양에서부터 자기를 업고 사선을 헤쳐온 아버지

전쟁이 끝나던 날 자기를 데리러 학원에 찾아왔던 아버지…

친아들도 아닌 자기에게 혁명의 대를 이어주겠다고 그처럼 요구성을 높여 키워준 아버지

사람의 낯을 가지고야 어떻게 그 인정을 배반한단 말인가.

진성은 싸늘해졌던 심장이 서서히 달아오르는것을 느끼며 또박또박 대답하였다.

《관계를 끊는다는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아버지를 버리고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진성의 입만을 지켜보고 앉아있던 상좌의 눈가에 알릴듯말듯한 경련이 스쳐지나갔다.

《다시말하지만 난 동무에게 기회를 주고있소.》

《아버지의 과오를 아들도 책임져야 한다면 난 피하지 않겠습니다.》

상좌는 뚜껑을 열어놓은 만년필로 종이우에 똑똑 점방아를 찧다가 책상우에 펴놓은 흰종이우에 몇글자 북북 적어넣었다.

《좋소. 그렇다면 동무가 한 그 엄숙한 선언이 오래가길 바라는 수밖에. 그럼 이번엔 다음문제! 평양에 협주단배우를 만나러 갔다고 하던데…》

어쩐지 뒤를 가무리는 상좌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것같았다.

《말해보오. 처녀의 이름은 뭐고 어떤 관계인지. 아니, 어느정도의 관계인가고 묻는게 정확하겠군.》

진성은 속이 아쓱해났다. 슬그머니 자기를 피하던 영범이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배신을 당한듯한 모멸감에 속이 메슥메슥해올랐다.

진성은 부르르 떨리는 입술을 가까스로 열었다.

《처녀는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상좌는 씩 소리가 나도록 코숨을 내불었다.

《동무두 군관학교 최우등졸업생이라니까 변증법을 알겠지? 안면으로 최우등을 한게 아니라면 말이요.》

진성은 문득 자기의 리성이 허물어지고있음을 의식했다. 어떤 모욕과 멸시도 다 참아내리라고 또 얼마든지 참아낼수 있으리라고 골백번 마음을 도슬러먹었으나 이제 와서는 자신을 믿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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