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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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정일동지께서는 최현의 옆자리에 다시 돌아와앉으시였다.

《방금 최현동지는 수령님앞에서 아무런 주저도 없이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한것이 실수라고 했는데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바로 이제부터 민족보위상동지가 해야 할 사업의 정수입니다. 전군이 수령님과 당의 명령앞에 무조건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하도록 키우는것이 바로 현시기 우리 당이 내세우고있는 군건설의 총적목표란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여 최현동지같은분들은 우리곁에 앉아만 있어도 큰 힘이 됩니다.》

최현은 두눈을 슴뻑거리며 그이의 절절한 시선을 바라보았다.

곁에 앉아만 있어도 힘이 된다고 하시는 그이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큰 짐을 외면하려고 했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긴 최현을 바라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더구나 수령님께서 최현동지를 민족보위상으로 임명하신데는 다른 깊은 뜻도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서두를 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난 기간 군벌관료주의자들은 백두에서 창조된 항일의 혁명전통을 굳건히 계승할데 대한 우리 당의 군사사상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해나섰다. 훈련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 해나가도록 하는것은 결코 전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인 문제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전략적인 문제란 말입니까? 그거 참 통쾌한 말씀입니다.》

최현의 수북한 장미가 쭝깃 일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군사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일어난다는 백전로장의 열기를 다시금 느끼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우리 군대가 항일의 전통을 계승한다는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상과 도덕, 전법과 전술, 군종과 병종의 모든 범위에서 실질적으로 계승한다는것입니다. 그러니 항일전의 로장인 최현동지가 단단히 한몫을 해야 할게 아닙니까?》

두주먹을 들어 무릎을 쿵쿵 내리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최현이 어찌된 일인지 자기를 바라보시는 김정일동지의 믿음에 겨운 시선을 마주보지 못하고 낯색을 흐리였다.

《믿음은 고맙습니다만… 그게 헐치는 않을것같습니다. 제 방금전에두 고창렬이와 한창 론쟁을 하다가 오는 길인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놀라시였다. 고창렬이라면 얼마전까지 공군사령부 참모장을 하다가 총참모부 국장으로 임명된 젊은 지휘관이다.

머리가 남달리 비상하고 비행술도 높은데다 배짱 또한 보통이 아니여서 수령님께서도 늘 미래의 총참모장감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우시는 쟁쟁한 지휘관인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백전로장인 최현과 론쟁을 했다는것을 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닌것같으시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젊은 사람과 론쟁까지 하셨습니까?》

그이께서 부드러운 어조로 물으시자 최현은 아주 띠를 풀어던졌다.

《얼마전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요즘 적들이 푸에블로호때문에 당한 수치를 하늘에서 만회해보려고 대형정찰기를 우리 령공에 들이미는 일이 빈번해지는데 공군에서 한번 되게 답새겨야 하겠다고 말씀이 계셨답니다.》

《아, 〈EC-121〉호 말입니까?》

그 문제라면 김정일동지께서도 잘 알고계시였다.

태평양함대소속 대형간첩비행기 《EC-121》호로 말하면 레이다정찰활동을 위하여 특별히 제작된 4발프로펠라추진식비행기로서 첨단급의 전파탐지회피기능과 강력한 방어능력을 갖추고 우리 나라와 로씨야의 원동지방, 중국의 동북지역까지 드나들면서 정탐행위를 감행하고있는 간첩비행기였다. 최신기술이 고도로 집약된 비행기인것만큼 포착과 추적이 헐치 않고 상승고도가 성층권을 벗어나기때문에 웬만한 반항공무기의 탄두나 전투기들은 가까이 접근할수도 없었다. 물론 우리에게 그만한 상승고도를 가진 전투기가 없는것은 아니였으나 적들은 교묘하게도 일본의 아쯔기공군기지에서 공해상공으로 들어오다가 우리의 고공전투기들이 발진하는것을 레이다로 포착하기만 하면 날쌔게 기수를 꺾어 달아나버리였다.

현대적인 정찰수단들로 우리의 비행장위치나 비행기들의 움직임을 피눈이 되여 감시하고있는 적들을 불의에 공격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쉽지 않은 일이였기때문에 어버이수령님께서도 총참모장인 오진우와 고창렬국장에게 덤비지 말고 작전방안을 세밀하게 세울데 대하여 거듭 가르쳐주시였다. 물론 이것은 군대에서 할 일이고 또 수령님의 교시가 계신 이상 그들은 반드시 해낼것이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집무실에서나 영화촬영소의 촬영현지에서나 심지어 대극장의 예술공연시연회에 참가하시여서도 줄곧 그 공격방안에 대한 사색을 이어오시였다.

김정일동지께 있어서 나라의 크고작은 일을 두고 가뜩이나 부담이 크신 수령님의 마음속 중하가운데서 제일먼저 덜어드리고싶은것은 바로 군사문제였다. 군사를 국사중의 국사로 내세우시는것이 우리 수령님의 변함없는 정치관이고 적들과의 군사적대결이야말로 혁명의 운명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리유도 있었지만 김정일동지께서 군사를 중시하신 첫번째 리유를 꼽는다면 당년 10살밖에 안되던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사연깊은 권총을 직접 넘겨받은 만경대가문의 후손으로서, 최고사령부작전탁앞에서 직접 군사를 배운 수령님의 제자로서 응당한 도리이고 본분이라고 생각하셨기때문이였다.

거듭되는 사색과 무한한 환상을 거쳐 그이께서 어렴풋이 도출해내신 공격방안은 수십쌍의 눈이 한데 모인 탁상우에 주패장을 펼쳐놓고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카드를 꺼내거나 감추는 요술사의 능란한 재주와도 흡사하였다. 전쟁이란 크게 보면 복잡한것같지만 대담하게 압축해놓고보면 하나의 예술로 되는것이다.

여러개의 몫을 지어놓은 카드무지들중에서 지정된 주패장이 반드시 왼쪽에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놓고 오른쪽에서 꺼내들자면 어떤 눈속임이 필요한가. 흔히 요술사들의 손동작이 사람의 눈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요술의 본질은 관람자와 요술사의 두뇌전, 심리전이다.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바로 여기에 관중의 실책이 있고 요술사가 성공할수 있는 공간이 있듯이 저들의 감시수단들이 항상 우리의 공격수단들을 지켜보고있다고 장담하고있는 여기에 적들의 약점이 있고 우리가 성공할수 있는 비결이 있지 않겠는가.

적들이 우리를 눈이 빠지게 지켜볼수록 좋다. 적들의 시선을 붙들어 이리저리 끌고다니다가 오리무중속에 내팽개쳐놓고 우리는 불의의 지점에서 벼락같은 공격을!

그이께서 점차 륜곽이 선명해지는 공격방안을 그려보시는데 최현의 높아진 목소리가 사색을 흔들었다.

《…고창렬이 그 대형정찰기를 쏴떨굴 방안을 놓구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하는데 아무리 들어봐야 그건 우리 식이 아니란 말입니다. 아닌것은 분명한데 딱히 방도가 떠오르질 않아서 직사포를 고지우로 끌어올리던 방법같은걸 쓰면 안되겠나?했더니… 그러면 비행기를 하늘에 매달아놓겠는가고 들이대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이건 비준 못한다!하구 눌러버리니까 대뜸 한다는 말이 대안이 없는 부결은 관료주의라는겁니다. 허허허…》

《바로 그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최현의 말을 긍정해주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저도 그동안 좀 생각해봤는데 조국해방전쟁시기 직사포를 고지우로 끌어올리던 그런 전법을 써야 합니다. 적들이 예측할수 없는 곳에 나타나 상상할수 없는 타격을 들이대는것이 바로 빨찌산식이 아닙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팔을 힘껏 벌려보이시였다.

《적들의 시야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밤눈이 밝은 놈은 낮눈이 어두울수 있고 우에서 잘 내려다보이는것은 밑에서 잘 올려다보이지 않을수도 있는것입니다. 적들이 우리 비행기들의 발진위치를 알고있는것이 문제라고 하는데 오히려 적들에겐 그것이 약점으로 될수도 있지 않습니까?》

눈을 쪼프리고 고개를 기웃거리던 최현은 그이께서 두손을 하나로 겹쳤다가 가르기도 하고 이리저리 엇바꾸어 흔들기도 하며 요술의 원리와 흡사한 공격방안에 대하여 설명하시자 대번에 얼굴이 확 밝아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직 문제의 끄트머리만 들어올리시였으나 최현은 벌써 그 밑바닥을 환히 들여다본것이였다.

《역시… 장군은! 하하하… 신통한 묘책입니다! 아니, 신비한 전술입니다! 적의 우점을 약점으로 만든다! 알만 합니다!》

최현은 두툼한 손바닥을 펼쳐들고 그 한복판에 자기의 주먹을 툭툭 쥐여박으면서 연방 탄성을 질렀다. 어쩌면 그렇게도 단박명쾌하신가!

항공전문가인 고창렬은 물론이고 빨찌산의 로장이라고 하는 자기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를 그렇게 즉석에서 풀어주시다니!

이것이 그이의 신비한 지혜와 무한한 담력의 결실만이겠는가!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빨찌산식전법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 필승의 의지가 안아온 탐구의 결정체가 아니겠는가!

결국 나에게는 그런 신념, 그런 의지가 아직도 모자란다.

모자라거던. …

최현이 두툼한 눈섭을 쭝깃거리며 생각에 잠겼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열정적인 어조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수적으로나 경제기술적으로 대비조차 할수 없는 적들과 정면으로 힘내기를 하는것은 론리적으로도 어불성설일뿐더러 우리 나라의 실정에 전혀 맞지 않는것입니다. 우리는 적들이 땅으로 기여오든 바다로 기여오든 모조리 빨찌산식으로 쳐갈기자는것입니다. 수령님식으로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 두주먹을 높이 들어 힘있게 흔들어보이시자 최현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김정일동지의 두손을 잡은채 허리를 푹 수그리며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올리였다.

《이 늙은것이 수령님의 하늘같은 믿음을 받구두 못난 생각만 하고있을 때 장군은 만사를 제치구 군사에 직심하셨으니 정말 할말이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황급히 최현의 어깨를 안아일으키며 말씀하시였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난 그저 어떻게 하면 수령님의 군사사상을 제대로 관철할수 있겠는가 하고 그간 여러모로 궁리해본것을 기탄없이 털어놓았을뿐입니다. 이제부터 최현동지가 하셔야 할 일이 정말 산더미같습니다.》

《그야 그렇겠지요 내가 생각이 좀 모자라 그렇지 장군이 그렇게 길만 툭툭 테주신다면 숨이 붙어있는 이상 가내지야 못하겠습니까? 산에서 싸울 때두 아니구 푹신한 승용차에 앉아 큰길로 다니는데 내 펄펄 뛰여다니겠습니다. 빨찌산식이라…》

김정일동지께서는 풀이 죽었던 최현이 당장에 허리를 펴고 나앉은것이 기쁘시여 통쾌하게 마주웃으시다가 거칠거칠한 그의 손을 따뜻이 그러잡으시였다.

《그렇다고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저와 토론할 일이 있으면 여기로 오느라 하지 말구 꼭 전화로 찾으십시오. 내 자주 가보기도 하겠지만 최현동지가 찾는다면 만사불구하고 가겠습니다.》

최현은 흡족한 기분에 마음이 너누룩해져서 연신 고개방아만 찧다가 눈물이 그렁해졌다.

《사실 당중앙위원회 부장을 하다가 민족보위성으로 가자고보니 제일 섭섭한게 장군과 떨어지는것이였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속이 한결 개운해집니다. 》

이때 다급히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신인하부부장이 급히 들어섰다.

《저…》

숨이 턱에 닿게 달려들어온것을 보면 무슨 바쁜 일이 생긴것이 분명한데 신인하는 최현이 곁에 있어서인지 인차 말을 못하고 숨만 헐떡거렸다.

최현이 거북한 눈치를 채고 나가려 했으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주잡으신 로장의 손을 놓지 않으신채 신인하를 재촉하시였다.

《무슨 일입니까?》

《경기장에 나갔던 량남지도원이 일을… 저질렀습니다.》

《일을 저지르다니?》

김정일동지께서는 속이 덜컥 내려앉는것같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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