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4

 

로일수가 남산재와 대동강기슭을 사이두고 김일성광장 한쪽변두리에 자리잡은 민족보위성청사에 들어선것은 16시 무렵이였다. 중앙홀을 지나 3층 동쪽복도에 있는 사무실에 올라가려고 계단으로 꺾어도는데 직일관실문이 벌컥 열리며 왼팔에 완장을 두른 군관이 달려나왔다.

《부국장동지, 총정치국 일군들은 모두 1층 소회의실에 모였습니다. 부국장동지가 오시면 인차 들여보내달라고 련락이 왔댔습니다.》

로일수는 계단에 짚었던 발을 돌려 회의실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일정계획에도 없던 회의인데다 총정치국 일군들이 모두 모였다는것을 보면 인민군당전원회의 확대회의 문헌접수토의사업을 지도하러 인민군협주단에 나갔던 안영환총정치국장도 되돌아들어온 모양이였다. 회의실 뒤문을 슬그머니 열고 들어서니 빨간 비로도천막을 량켠으로 쑥 밀어제껴놓은 무대우에 연탁과 잇달아 책상 두개가 놓이고 그 한복판에 안영환이 서있었다. 수염터가 꺼밋하고 눈확이 쑥 꺼져들어가 전체적으로 얼굴이 컴컴해보이는 안영환은 무슨 일때문인지 몹시 언짢은 기색이다.

로일수는 회의분위기를 깨뜨릴가보아 뒤좌석 어디에 슬쩍 끼워앉으려다가 안영환의 눈에 띄였다.

《아, 지금 오셨습니까? 어서 여기로 올라오십시오.》

소회의실에 앉은 일군들의 눈길이 일제히 뒤로 쏠렸다. 뒤자리에 그냥 앉아있겠노라고 사양하던 로일수는 안영환의 지꿎은 권고에 못이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객석에 앉은채로 눈인사를 해보이는 일군들에게 굽석굽석 목례를 해가면서 객석사이로 난 좁은 통로를 따라 무대쪽으로 올라갔다.

안영환은 며칠전까지 총정치국 부국장으로 사업하였고 로일수는 조직부 과장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안영환은 항상 로일수의 상급이였지만 전쟁시기 문화부대대장경력을 가진 로병이라고 깍듯이 존대하군 하였다.

한편 로일수는 안영환을 볼 때마다 해방후 중앙보안간부학교에서 공부할 때 자기의 첫 상관이며 스승이였던 안길의 모습을 보는것같아 마음이 별스레 옹송그려지는것이였다. 로일수가 주석단에 올라와서도 인차 자리에 앉지 못하는것을 본 안영환은 제가 먼저 자리에 앉으며 로일수에게 의자를 권하였다. 로일수가 주석단에 앉아 객석을 둘러보니 모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은것이 너나없는 추궁을 한바탕씩 겪은것같았다.

《방금전에도 말했지만…》

안영환은 앉아서 이야기하는것이 불편한지 다시 일어섰다.

《우리 총정치국 일군들은 지난 기간 수령님앞에 죄를 지었다는것을 항상 자각해야 하며 아직도 케케묵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현실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난날의 공로가 있다고 해서, 대련합부대의 지휘관이라고 해서 우리 정치일군들이 날을 세우지 못하고 융화묵과하기 시작하면 군벌관료주의가 또 생겨날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인민군당전원회의 확대회의 문헌접수토의사업을 진행하는 기간 방어전이 아니라 공격전을 들이대서 군벌관료주의의 낡은 때를 쭉 벗겨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 동무들은 당에서 준 높은 신임을 망각하구 잔뜩 주눅이 들어 우유부단하게 행동하고있단 말입니다. 내 어제부터 인민군협주단사업을 좀 료해해봤는데 정치부동무들이 아직 잠을 자고있습니다. 창작가들이 예술단체의 특수성을 운운하면서 제멋대로 놀아나는데 정치부는 말 한마디 못하고있습니다. 그래 인민군협주단이 옛날 곡마단이나 흥행극단과 같습니까? 인민군대사상사업의 1선에 서있는 전투부대이고 군복입은 군인집단인데… 왜 단호하고 결정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가? 이건 바로 정치일군들에게 아직도 혁명적원칙성이 결여되여있다는걸 말해줍니다. 지금 아래단위들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들어봐도 문헌접수토의사업이 매우 소극적으로 진행되고있습니다. 종합과장동무!》

객석 한중간에서 정수리가 거의 벗어져보이는 중좌가 패기있게 일어섰다. 손에 수첩까지 펼쳐들고 일어선것을 보면 총정치국장이 자기를 불러세운 의도를 벌써 짐작한것같았다.

《동무가 구체적으로 좀 설명해보오. 우리 동무들은 다 알아야 하오.》

중좌는 손에 든 수첩을 한번 얼핏 내려다보고나서 주먹으로 입을 가리우고 가벼운 기침을 두어번 깇었다.

《지금 부대들에서는 여러가지 동향들이 제기되고있습니다. 첫째로는 회의에서 지휘관들을 내놓고 비판하면 군사일군들의 권위가 손상되여 부대지휘관리에서 지장을 받을수 있다는것이고 둘째로는 이 기회에 지난 기간 군사일군들에게 눌리워있던 정치일군들이 사실자료를 과장하여 복수적으로 비판할수 있다는것이며 셋째로는…》

《됐소!》

안영환은 손을 흔들어 종합과장을 눌러앉히였다.

《다들 들었겠지만 대체로 이런것들입니다. 첫째요, 둘째요 여러가지인것같은데 사실 그속에 비낀 본질은 두가지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나는 군사일군들이 체면을 앞세우면서 비판을 달가와하지 않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일군들이 여기에 응당한 반격을 가하지 못하고있다는것입니다. 이 회의가 끝난 다음에 부국장동무랑 구체적인 토의를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사업을 아래에만 맡겨서는 안될것같습니다. 우리 총정치국 일군들이 우에 앉아서 지시나 떨구고 보고만 받을것이 아니라 직접 아래단위에 내려가 불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도력량이 모자라서 총정치국 직속단위와 군단사령부계선에만 지도성원들을 내려보냈는데 이제부터는 모두가 만사전페하고 련대이상급단위들에까지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특히 군벌관료주의물을 많이 먹은데는 중대급까지 파고들어야 합니다. 혁명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언제 가도 문제를 바로잡을수 없습니다.》

안영환은 래일 당장이라도 아래단위에 지도사업을 내려갈수 있게 현재 진행하고있는 사업들을 오늘 밤중으로 마무리할데 대하여 강조하고나서 로일수를 자기 사무실로 이끌며 물었다.

《아까 협주단 직일관실로 전화를 걸어왔댔습니까?》

로일수는 걸음을 멈추고 안영환의 손을 잡았다.

김정일동지께서 우리를 불러주셨댔습니다.》

안영환은 숨을 헉 들이그으며 일순 굳어졌다가 락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날 찾아야지 혼자 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안영환이 섭섭하다는듯 로일수의 손을 슬그머니 뿌리쳐버렸다.

《회의가 시작되였다기에… 이거 내가 실수를 한것같습니다.》

로일수가 거듭 사죄를 해서야 안영환은 얼굴을 돌리였다.

《그래 그이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뵈온지가 퍽 오랜데…》

《이번에 새로 임명된 인민군대의 젊은 지휘관들을 만나보고싶어 시간을 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에 대한 기대가 이만저만 크지 않으십니다. 총정치국이 이번 인민군당전원회의 확대회의 문헌접수토의사업을 잘 지도해서 군벌관료주의의 여독을 뿌리뽑을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셨는데 총정치국장동지는 그 사업을 벌써 내밀기 시작했구만요.》

안영환은 방금 김정일동지를 만나뵙고 온 로일수의 입에서 오늘 회의를 지지하는 말이 나온것이 무등 반가운듯 대번에 얼굴색이 달라졌다.

《당의 신임이 큰데 일을 본때있게 내밀어야지요. 허허허…》

수염터가 푸릿하게 살아올라 별스레 컴컴해보이던 안영환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피여났다. 로일수는 그제서야 안영환에게 미안스럽던 마음이 좀 풀리여 우선우선한 목소리로 화제를 돌리였다.

《참, 방금전에 아래단위에 대한 지도사업문제를 이야기했는데… 민족보위성 일군들도 아래단위에 더러 내려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영환의 얼굴빛이 일순 굳어졌다가 천천히 풀려나가는것같았다.

《그건 무슨 뜻에서 하는 말입니까? 지도력량이 모자랄가봐 하는 말같지는 않은데…》

로일수는 사격훈련장에서 하시던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문헌접수토의사업은 인민군당위원회적인 사업이 아닙니까. 물론 우리 총정치국 일군들이 주인구실을 더 잘해야 하겠지만 민족보위성 일군들을 제쳐놓으면 시작부터 군사일군들과 정치일군들을 따로따로 갈라놓는것같은 인식이 생길것같아 그럽니다.》

《심각한 의견인데…》

안영환은 말꼬리를 길게 끌면서 군복웃단추 하나를 끌러놓았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아래단위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들어보면 일부 군사지휘관들이 아직도 정치일군들의 비판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있습니다. 이런 때에 군사일군들을 지도성원으로 내려보내면 오히려 그들의 편역을 들지 않겠습니까?》

《뭘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로일수는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로 자기 주장을 펴나갔다.

《민족보위성 일군들도 이번 계기를 통하여 각성이 된것만큼 원칙적선에서 벗어나 누구를 비호두둔하거나 융화묵과하는것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일부 정치일군들속에서 군벌관료주의를 뿌리뽑는 사업이 군사일군들에게만 해당되는것처럼 여기는 현상도 없지 않은데 그가 누구이든 지난 기간의 잘못은 공정하게 비판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아까 총정치국장동지도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문제에서야 우리 정치일군들의 책임이 더 크지 않습니까?》

안영환은 사리정연한 로일수의 말을 더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지 풀어놓았던 목단추를 다시 채우며 그리 내키지 않는 어조로 대답하였다.

《부국장동무의 의견이 정 그렇다면 민족보위상동지와 토론해봅시다.》

《민족보위상이라니? 누구 말입니까?》

안영환은 놀라는 로일수의 눈을 마주보며 그보다 더 놀라는것같았다.

《모르고있었습니까? 당중앙위원회 부장을 하던 최현동지가 오늘 병원에서 퇴원하는 길로 곧장 임명되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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