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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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발을 쏘고 두발이 남았을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지시였다. 사격좌지를 가리우고있는 가설막과 로천에 세워놓은 목표사이로 잔쌀같은 눈알갱이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러나
그이의 눈앞으로는 그 가느다란 눈발이 아니라 수령님께서 헤쳐오신 백두광야의 눈보라가 뿌잇하게 휘몰아치고
총구가 이렇게 넓어지도록 적들을 향해 날리고 또 날리신 격전의 불줄기들이 뻘건 화광을 그리며 번개쳐지나갔다.
그 한발한발에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걸고, 자신께서 걸머지신 전우들의 생사와 혁명의 장래를 걸고 이 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시던 그 체취가 손잡이를 뜨겁게 달구는것같아 손바닥이 후끈해오르시였다. 흐릿해졌던 목표가 어렴풋이 살아오르는 순간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시였다.
감시경앞에 앉은 선수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9점!》하고 소리쳤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육안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을 가리웠던 뿌잇한
눈보라를 애써 털어버리시며 마지막총탄을 날리시였다. 총탄은 10점환에 어김없이 구멍을 뚫었다.
선수들속에서 박수가 터져올랐다. 손을 흔들어 그들을 제지시키신 그이께서는 흰 아마천을 씌운 립사대우에 싸창을
내려놓으며 감시경쪽에 대고 물으시였다.
《9점이 하나 있었지요?》
그러자 감시경을 들여다보던 선수대신 감독이 앞으로 나섰다.
《그런 총을 가지고 49점이라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나마 9점환에 맞은것은 겨우 한발이 아닙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씀하시였다.
《이 총은 내가 그만큼 손에 익혔으니 그런것이고… 내가 오늘 동무들에게 무엇을 말하자고 하는가? 동무들도 다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읽었을거요. 그러면서두 거기에 씌여진 글을 옛말처럼 생각하거던. 우리 수령님께서는 물론이고 빨찌산의 명사수들이 다 이런
총으로 적들과 싸웠소. 적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안고 조성조문보다 먼저 마음으로 목표를 겨누어야 백발백중할수 있소.》
《알았습니다!》
선수들의 힘찬 대답소리가 몰방으로 터지는 총성처럼 사격장안을 쩡 울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선수들의 훈련과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묻기도 하시고
자신께서 터득하신 명중사격의 요소들을 가르쳐주기도 하시면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퍼그나 시간이 흘러서야 사격훈련장 가설천막을
나서시였다. 밖에서는 싸락눈이 내리고있었다. 잘게 보스러뜨린 거품수지쪼각처럼 하얗고 가벼운 눈알갱이들이 바람에 불리워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다가는 논뚝모서리에 보록보록 쌓인다.
리철봉과 로일수는 솟구쳐오르는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가슴을 들먹거렸다. 방금전에 사격선수들은 김정일동지께서
가지고오셨던 싸창을 자기들에게 기념으로 남겨달라고, 자기들은 매일 그 총을 보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훈련하겠다고 떼질을 하다싶이 매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동무들의 마음이 정 그렇다면 주기는 하겠지만 총신은 교체해야
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연형묵부부장에게 이왕 이 동무들을 도와주던바에 새 총신까지 바꾸어달라고 부탁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선수들과 감독들에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수령님께서 백두산에서 안고오신 이 총을 절대로 손에서 내려놓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말해서 이 총에 깃든
백두의 혁명정신을 끝까지 이어나가야 합니다. 나는 동무들이 꼭 그러리라고 믿소.》
로일수는 총정치국의 책임적인 위치에 임명받은 순간부터 그이께 꼭 가르침을 받고싶었던 자기 사업의 주선과 방향을
방금전 사격선수들에게 하신 그 말씀에서 다 받아안은것같아 피줄이 툭툭 뛰였고 애초에 총을 쥐여볼 엄두도 못냈던 리철봉은 총구가 넓어진 싸창으로
백발백중하시는 그이의 모습이 해방후 자기 손에 총쥐는 법을 배워주시던 김정숙어머님의 모습으로 안겨와서 눈굽이 축축해올랐다.
《사내녀석이 총을 무서워해서야 어떻게 아버지의 원쑤를 갚구 장군님을 보위하겠느냐? 난 너보구 당장 군대가 되라는건
아니다. 철봉인 머리가 좋구 침착하니 공부를 더 해야지. 하지만 어디서 무슨 공부를 하든 아버지가 잡았던 혁명의 총을 마음속에서 놓으면
안된다.》
지금도 귀전에 쟁쟁한 다정하신 그 음성…
어머님께서 자기에게 총쥐는 법을 배워주셨다면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기에게 혁명군대 지휘관의 마음가짐을 배워주시려고 여기로 데려오신것만 같아 가슴이 울렁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저마끔 깊은 생각에 잠긴 젊은 장령들을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시였다.
《오늘따라 왜 그런지 우리 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해방후에 동무네 유자녀들때문에 마음을 많이도 쓰셨는데 이렇게 모두
장령별을 달고 인민군대의 지휘성원들이 된것을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리철봉은 어머님의 이야기가 나오자 또다시 눈물이 고여올랐다.
《저도 방금 김정숙어머님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퍽
어렸을 때인데 신갈파에 적후공작을 나가시다가 우리 집에 잠간 들리셨던 어머님께서 저에게 돈 50전을 꺼내놓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적후에 가면 별의별 일이 다 있겠는데 그 돈만은 절대로 받을수 없다고 도리질을 했습니다. 제 보기에도 그 돈은 그때
어머님께서 가지고 떠나신 돈의 전부였던것같습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철봉이
아버지가 혁명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생각을 하면 이 돈이 무슨 큰것이겠습니까?〉라고 하시면서… 전 그때 그 돈으로 공책과 연필을 사서 정말 실컷 글을 써보았습니다.
얼마나 공부에 정신이 팔렸던지 동네아이들과 놀음놀이도 몇번 해보지 못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해방산의 오또기가 생각나시여 눈언저리가 시큰해나시였으나
리철봉에게 그 사연을 말씀하고싶지 않아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철봉동무가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고 향학열이 높아 해방직후 다른 유자녀들은 다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면서도 동무만은 대학에 보냈다고 하시던
어머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러고보면 철봉동무는 문관이 제격이였을것같은데 어떻게 무관이 되였습니까?》
리철봉은 축축해진 목소리로 대답을 올리였다.
《1949년도에 종합대학 물리학부에서 공부하던 일부 학생들이 다른 나라에 류학을 가게 되였는데 어머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철봉이는 류학을 가느라 하지 말고 군복을 입어야겠다고 하시는게 아니겠습니까? 큰 나라에 공부하러 간다고 붕 떠있던 때라 좀 아쉬운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어머님께서 어찌나 절절히 말씀하시는지. … 〈지금 미국놈들이 우리 나라를 먹자고 기회를 노리는데 나라에
정규군이 창설되기는 하였지만 해군싸움준비가 제일 걸렸다. 해군을 강화하자면 무엇보다도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너처럼 머리가 좋은 유자녀들이
아버지들의 뜻을 이어 장군님의 무력건설구상을 앞장에서 받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저는 그 말씀을 받들고 해군지휘관이
될것을 결심했던것입니다.》
《그러니… 동무가 무관이 된것도 결국은 우리 어머님의 뜻이였구만. …》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득히 흘러간 시절을 돌이켜보시듯 뜨거운 시선으로 먼 하늘가를
바라보시다가 로일수쪽으로 돌아서시였다.
해방직후에 경위대 분대장을 하던 로일수도 어머님에 대한 추억을 더듬는지 눈굽이 벌깃해졌다. 로일수를 만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것이 그가 경위대에 들어오던 날 어머님앞에서 꾸지람을 듣던 일이다. 로일수는 팔로군에서 소대장을 하다가 조국으로
나왔는데 경위대에서 맡은 직무는 분대장이였다. 승급도 아니고 한급이나 아래로 떨어진 직무때문에 볼이 부어 돌아가는것을 보신
어머님께서는 로일수를 가까이로 불러 엄하게 타이르시였다.
《일수동무는 아직 자기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직무를 받아안았는지 다 모르는것같아요. 김일성장군님을
호위하는 경위대 분대장의 직무를 어떻게 팔로군의 영장이나 탄장같은 직무에 대겠어요? 이제 정규군이 창건되면 군사칭호도 나오고 어깨에 별도
달겠지만 동무가 나라의 훌륭한 역군이 되자면 직무가 어떻든 자기의 첫째가는 본분이 무엇인가부터 알아야 해요. 동무가 경위대에 들어와 직무타발부터
하는것을 보니 분대장은 고사하고 평대원의 자격도 채 못갖춘것같아요.》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어머님께서는 로일수에게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시며 그가 훌륭한 경위대지휘관으로 자라도록 이끌어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