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눈내리는 겨울

3

(1)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창으로 멀어져가는 최진성의 모습을 점도록 바라보시다가 승용차가 큰길로 꺾어든 다음에야 바로 돌아앉으시였다.

앞좌석에 앉아 침묵을 지키고있던 젊은 해군장령이 그이께 조심히 물었다.

《저 동문 누굽니까?》

《최광동지의 아들이요. 전쟁때 최고사령부에서 얼마간 함께 지냈소.》

장령의 먹붓같은 두눈섭이 미간쪽으로 움씻 조여들었다. 그는 최광의 명령으로 해임철직되였던 리철봉이였다. 이틀전에 평양에 올라와 해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임명받은 철봉은 어제 하루동안 민족보위성과 총정치국 일군들에게 두루 인사를 한 다음 아침차로 떠나려던 찰나에 그이의 부르심을 받고 동행하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앞좌석에 앉은 리철봉의 표정을 보지 않고도 그의 심중을 짐작하시였으나 내처 말씀을 이으시였다.

《철봉동무는 이자 그 동무가 하는 말을 듣구 생각되는게 없소?》

《저… 제 보기엔 정치일군들에 대한 그 동무의 견해가 좀 어린것 같습니다.》

《어린것이 아니라… 백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끓어오르는 의분을 삭이시려는듯 의자등받이에 가벼이 등을 기대시였다.

《군벌관료주의자들이 저렇게 만들어놨소. …》

리철봉은 그이의 심각한 말씀에 등이 서늘해졌다. 그러지 않아도 《발라스트사건》때 군벌관료주의에 단단히 넌덜머리가 난 리철봉이였다.

《발라스트사건》이란 리철봉이 서해의 한 해군기지에서 기지장으로 복무하던 어느해 겨울에 있은 일이다.

그날은 아침부터 바다바람이 무던히도 맵짰다.

부두의 콩크리트바닥은 파도에 휘뿌려진 물이 얼어붙어 거의 10여m폭으로 번들번들한 얼음투성이가 되였고 항구에 계류한 함정들의 마스트우에서는 안테나같이 솟구친 빈 기발대가 아츠럽게 쟁쟁거렸다. 그런 추위속에서 리철봉은 비편제 군악소대원들과 함께 한겻이나 발을 동동 구르며 떨지 않으면 안되였다. 9시에 민족보위상이 내려오니 영접군악대를 준비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11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것이다.

정오때가 되여 해는 좀 퍼졌으나 댕댕하게 얼어든 금관악기의 취구를 이쪽겨드랑이에서 저쪽겨드랑이로 옮겨끼우며 발을 구르는 군악소대원들은 모자끝부터 발끝까지 하얀 서리투성이가 되였다.

정치부기지장이나 참모장 같은 지휘관들은 그렇다치고 저렇게 얼어든 악사들과 악기들이 영접곡을 제대로 울릴것같지도 않은데다 모두 감기에라도 걸릴가봐 리철봉은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밤새껏 전화통에 불이 달리게 내려온 지시들을 상기하며 꾹 참고말았다.

12시가 지나서야 부두끝에 군용승용차 한대가 부르렁거리며 나타났다.

군악소대가 일제히 얼어든 나팔들에 취구를 끼우느라 부산을 피웠다.

지휘를 맡은 군인의 오른손이 머리우로 올라가고 리철봉이 꿋꿋해진 두볼을 실룩거리며 차렷구령을 내리려 하는 순간 뜻밖에도 중좌견장을 단 민족보위상의 부관이 차에서 혼자 내렸다.

《해군은 역시 맵시가 있어. 이 추위속에 군악대를 다 세우구…》

취구에 입술을 붙이고 한껏 호흡을 들이그었던 군인들이 저건 또 무엇인가 하고 눈들을 뚜부럭거렸다.

리철봉의 곁에 섰던 정치부기지장은 찜가마에서 금방 꺼낸 효모빵처럼 김이라도 문문 날것 같은 건방진 중좌를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그러나 중좌는 정치부기지장의 눈길을 흘려버리고 리철봉을 향해 장갑을 낀 손을 쑥 내밀었다. 리철봉은 억지로 인사는 했으나 사람의 손이 아니라 뻣뻣한 가죽을 만지고났을뿐이였다.

《기지장동무, 보위상동지의 건강이 여의칠 않아서 내가 대신 왔소. 얼마전 총정치국에서 함선경량화문제때문에 지시를 내려보낸게 있었지?》

시작부터 반말들이를 하는것이 거슬려 인차 대답을 못하고있는데 중좌는 리철봉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보란 말이요. 함선장비를 경량화하라니까 정치일군들이 앞장서서 회상기책이랑 다 걷어내가지 않는가? 다 모아두 몇십키로 되나마나한 책까지 부리우는데 기지장동문 생각되는게 없소?》

리철봉은 기가 막히였다. 사실 해병침실에 있던 그 회상기책을 부리운것으로 말하면 정치부기지장은 절대로 내려놓을수 없다고 하는것을 해군사령관이 저울까지 가지고 내려와 총정치국의 지시라고 하면서 억지공사를 벌린것인데 그것을 정치일군들의 소행이라고 하니 이 사람이 모르고 그러는지 알고도 모른체 하는지 가늠할수 없었다.

《…총정치국이 이쯤 일을 하고보니 민족보위상동지의 체면이 딱하게 됐단 말이요. 그래서 성에서두 함선경량화문제를 놓구 많이 론의하다가 방도를 찾았소. 모든 함선들에서 발라스트를 들어내자는거요.》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를 수료하고 10년나마 해군에서 바다생활을 해온 리철봉은 함선에서 발라스트를 떼라는 말이 제정신을 가지고 하는 말같지 않았다. 리철봉은 쓰겁게 대꾸했다.

《발라스트는 마스트와 축을 이루고 함선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량물이요. 오또기로 말하면 밑바닥의 철뎅이와 같다고 할수 있단 말이요. 누가 그런 무식한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떼내면 배는 넘어지오!》

외투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찌글써한 눈으로 리철봉의 입을 지켜보던 중좌가 가죽장갑을 낀 한손을 획 뽑아들더니 그를 향해 집게손가락을 꾹 내질렀다.

《동무! 우에는 다 머저리들만 앉아있는줄 아오? 이건 과학적으로 다 계산해본거란 말이요. 그래 발라스트를 뗀 배가 넘어지는걸 동무 눈으로 봤소? 책에서 읽은거겠지? 낡은 책에 씌여있는 퀴퀴한 리론을 실천으로 부정하며 전진하는게 혁명이란 말이요, 혁명! 무식한건 바로 기지장동무요! 군말말구 그대로 집행하시오. 이건 보위상동지의 명령이니까!》

덜퍽진 중좌는 자기 체통에 비해 쥐구멍만큼이나 작아보이는 차문으로 힘겹게 비집고들어가더니 기침소리 한번 없이 달아나버렸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곁에 섰던 정치부기지장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보위상동지 명령이라면… 집행해야 하지 않을가요?》

대답은 그뒤에 섰던 참모장이 하였다. 리철봉은 대답대신 멀찌감치서 우들우들 떨고있는 군악대원들을 향해 어서 들어가라고 손을 휙 저어보이고나서 병영쪽으로 뿌등뿌등 걸어갔다.

다음날 아침 보위성에서 내려보냈다는 기중기차들이 부두에 들이닥쳤다. 리철봉은 정치부기지장과 함께 부두에 버티고서서 정 해체를 하겠으면 해군사령관의 명령서를 내놓으라, 명령서가 없이 함선에 손을 대면 기지군인들을 비상소집시키겠다고 들이댔다.

현지지휘관의 서슬푸른 기상에 해체조성원들은 일단 뒤로 물러섰다.

리철봉은 급히 해군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사령관을 찾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교환수는 전화가 련결되지 않는다는 애매한 소리만 반복하였다. 김창봉의 암시를 받은 사령관이 일부러 전화를 거절하는줄 꿈에도 알수 없었던 리철봉은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해체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참모장에게 주고 그달음으로 사령부를 향해 떠났다.

그러나 리철봉이 떠나자마자 해체작업은 끝내 시작되였다.

맨 먼저 수술대에 오른것은 경비함 《3011》호였다. 아침부터 발라스트를 뜯어내기 시작했는데 저녁무렵에는 배가 기우뚱거리기 시작하더니 부두에 계류한 상태에서 모재비로 넘어졌다. 선체가 부두턱에 부딪치면서 마스트가 꺾어져나가고 유리창들이 박산났다. 갑판에 서있던 몇명의 군인들과 종업원들은 바다물에 떨어져 다행히 인명피해를 내지 않았으나 사고는 엄중하였다.

리철봉이 그 기막힌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 기중기차들은 어느새 달아나버리고 기다리기라도 한듯 총참모장의 전화가 내려왔다.

《기지장이 뭐길래 전투함선에서 발라스트를 막 뜯어내? 경량화라는게 그따위루 하는거요? 보위상동지가 자기 부관까지 내려보내서 그만두라구 말렸다는데 어째서 고집했는가?》

리철봉은 너무도 아연하여 말문이 막혔다. 엄청난 허위앞에서는 진실이 입을 다무는 법이다. 항변하려 했으나 최광은 두말 못하게 잘라던졌다.

《철봉이 너, 자기는 유자녀이구 아버지가 이 총참모장의 옛 정치위원이기때문에 누구도 다치지 못한다고 했다는데… 그래, 최광이가 원칙을 양보할것같애? 내가 용서하구싶어두 혁명이 용서하지 않아! 무장장비파괴죄에 명령불복죄! 철봉이, 넌 군사재판감이야! 군사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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