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푸른 호수
6
(1)
《정의성! 그는 정녕 나에게 충격만을 안겨주는 폭탄같은 존재인가?》
송영숙은 마음속으로 절통하게 웨쳤다. 그럴수록 호흡은 더욱 빨라지고 가슴은 세차게 들뛰였다. 증오랄가, 원망이랄가. …
송영숙은 손톱이 손바닥에 박히도록 아프게 주먹을 틀어쥐고 걸음을 옮겼다.
종잡을수 없는 드세찬 감정의 파도만이 가슴을 치받으며 밀려들었다.
(과연 이것도 우연한 일치인가?…)
그는 머리를 짓수굿하고 공장합숙을 향하여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점심시간이여서 거리는 조용했다.
사무청사앞에 이른 그는 마당에 나와있던 근무성원이 눈인사를 하며 식사를 했는가고 물어서야 점심시간이 지났다는것을 깨달았다.
자기의 실수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 그는 애써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곧장 사무실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선 그는 안으로 문을 닫아걸고 무너지듯 팔걸이의자에 주저앉았다.
한동안 지친듯 눈을 감고있던 그는 합숙에서 자기를 찾을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났다.
사무실을 나선 그는 공장합숙으로 갔다. 공장합숙은 사무청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있었다.
합숙에 도착한 그는 먼저 식당으로 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안에서 오락가락하던 취사원녀인이 그를 반기며 서둘러 점심식사를 챙겼다.
송영숙은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그만두세요. 딴 곳에서 점심을 먹구왔어요.》
그의 말에 녀인은 취사구너머로 찬찬히 올려다보며 정말인가고 물었다.
송영숙은 그저 머리를 끄덕여보인 다음 곧 돌아서서 식당을 나왔다.
그는 3층에 위치한 자기의 호실로 올라갔다. 아담하고 아늑하게 꾸려진 호실이였다.
그 누구의 눈길도 미치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그는 호- 한숨을 내그었다.
천천히 침대로 다가간 그는 지친듯 외출복차림그대로 누워버렸다.
송영숙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모든 생각을 털어버리듯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유상훈박사를 만나던 과정을 돌이켜보았다.
박사가 자랑스럽게 하던 말도 되새겨보았다.
생산성이 높은 새 품종의 오리종자연구며 오리털에 의한 털단백질연구와 새로운 풀절임방법과 보관…
참으로 공장의 기술자, 기능공들모두가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자기 초소, 자기 일터마다에서 혁신을 일으키고있었다.
송영숙에게는 이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과학과 기술의 힘이야말로 공장의 생산과 번영을 담보하는 위력한 추동력이 아닌가.
오리공장에 첫 자욱을 떼던 그때에도 기술자들은 물론이고 종업원들모두의 무궁무진한 창조적힘을 불러일으켜 나라의 가금업발전을 적극 추동해나가리라 굳게 마음다진 그였다.
그리고 기사장인 자기가 첨단돌파전의 맨 앞장에서 기발들고 나가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
송영숙은 념불외우듯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또다시 와짝 가슴이 저려들었다.
(정녕 이것이 우연한 일치인가?…)
그에게는 자기가 연구하고있는 첨가제가 정의성기사의것과 꼭같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고심참담한 노력과 애정을 기울여 연구하고있는 첨가제인가.
얼마나 크나큰 희망과 신심에 넘쳐 연구하고있는 첨가제인가.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정의성기사의것과 꼭같다니…
잠시후 그는 침대우에서 일어났다.
(그를 만나보자! 남의 말을 듣고서는 믿을수 없어. 그를 만나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피하려고 할수록, 멀리하고 무시하려고 할수록 더 부딪치게 되는 사람이니 용감하게 만나보자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열정적이고 진취적이면서도 다분히 즉흥적인 송영숙은 의기소침하거나 전전긍긍하는것과는 애당초 인연이 없었다.
(정녕 피할수 없는 운명이라면 용감하게 만나보자! 그의 연구에 대해 알아보는건 기사장의 의무이기도 하다. …)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일어서서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출입문옆에 걸린 거울앞에 다가섰다. 얼굴이 별로 수척해진듯 했다. 약간 헝클어진 머리모양을 다듬은 그는 인츰 거울앞에서 물러섰다.
방을 나서는 그의 머리속에는 정의성이 정말로 자기와 꼭같은 첨가제를 연구한다면 그리고 자기보다 훨씬 앞섰다면 어쩔가 하는 위구심이 들었다.
송영숙의 얼굴엔 다시금 그늘이 비끼였다. 하지만 곧 머리를 저었다.
(그다음의 일은 그때에 가서 생각해보자. 지금은 우선 그를 만나야 한다. …)
합숙을 나선 그는 곧장 시험호동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