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푸른 호수
3
(3)
아들에게 밥을 먹여주던 서정옥이 이때라는듯 새 기사장을 옹호하여 한마디 더 했다.
《그러문요. 그래서 인간생활이 아니나요?》
그는 자기로서도 그 말이 무척 마음에 드는지 방긋이 웃었다.
서정옥은 사람들과 생활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그 누구의 뒤생활에 대한 말을 들을 때마다 결론삼아 《인간생활인데요 뭐.》, 《인간생활이 아니나요?》라는 말을 곧잘했다.
가정의 막내딸로 태여나 부모형제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별로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정옥이였으나 이렇게 말할 때에는 인간생활에 도통한 년장자같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리해력과 식견이 넓어보였다.
《자, 이젠 어서 식사나 하자구. 일군들의 뒤소린 그만하구.》
지금껏 집안녀자들이 주고받는 말을 잠자코 듣고있던 서정관이 가장답게 한마디 하였다.
집안식구들의 기분과 감정은 다소 평정되였다.
한동안 방안에는 음식을 씹는 운전사의 입소리만 크게 들리였다.
서정관은 거드름스러운 손짓으로 정의성에게 맥주를 권하고는 자기도 술을 한모금 마시였다.
벌깃해진 그의 얼굴은 무척 례사롭고 평온해보였다.
그러나 지금 서정관의 마음은 누구보다 불쾌하고 순편치 못했다.
(하필 이 자리에서 기사장말을 꺼낼건 뭐람. …)
그는 얼핏 안해쪽을 흘겨보았다.
(말을 해두 때와 장소를 보며 말할것이지. 그저 아무때나…)
그는 마음속으로 안해를 주책머리없다고 나무람했다. 하지만 안해가 터놓은 말들은 모두 새로 온 기사장에 대한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대변한것이였다.
서정관은 사실 마음이 고약하거나 흑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였다.
그러나 자기의 직속상급인 기사장이 자기보다 나이가 퍽 아래인데다가 더우기는 치마두른 녀자라는것이 여간 자존심 상하지 않았다.
서정관은 지금껏 호수가진펄에 오리사를 일떠세운 공장의 첫 세대이며 20여년간 지배인으로 사업했던 아버지처럼 큰 일군이 되리라는 남모르는 야심을 간직하고 살아왔었다.
이런 마음을 안고 군사복무를 마치는 길로 대학으로 달려갔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희망대로 공장에 배치되여왔을 때에는 이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은 그의 앞길을 밝게 채색해주군 하였다.
그는 생산과 부원으로부터 판매과장, 생산과장을 거쳐 생산부기사장이 되였다.
그에게 있어서 판매과장시절은 그의 남다른 실력을 과시한 성공적인 날과 날들이였다.
실무적자질은 어리지만 상급에 대한 태도가 남달리 정중하고 헌신적이여서 웃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어색하거나 비굴해보이지 않는 그럴듯한 표정과 의젓한 자세를 가질줄 아는것이 그의 남다른 재간이였다.
하지만 그는 판매과장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생산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얼마후 공장의 생산을 좌우지하는 생산과장이 되였고 인츰 생산부기사장으로 임명되였다.
타고난 처세술을 가지고 착실하게 한계단 또 한계단 높은 직무에 오른 그는 얼마전부터 자기
그가 기사장의 직무를 바라본것은 그닥 주제넘은 일이 아니였다.
자기의 켠은 물론 처가켠을 둘러보아도 공장에 자기처럼 훌륭한 배경을 가진 사람도 없었고 또 자기처럼 기사장의 직무와 가까운 사람도 없었다.
생산부기사장이 기사장으로 승급되는것은 너무도 응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껏 서정관의 《인생렬차》는 《급행》은 아니였어도 탈선되거나 연착되는 일이 없이 바라는대로 순조롭게 내달려왔었다. 그런데… 송영숙의 출현으로 하여 기분좋게 내달리던 그의 《인생렬차》는 드디여 정지된것이다.
그는 송영숙이 처음 임명되여왔을 때 다리맥이 탁 풀리는것을 느끼였다. 그뿐 아니라 자기의 삶을 추동하던 모든 의욕이 싹 가셔지는것을 직감하였다. 얄궂은 운명이였다.
그러나 생활은 역시 생활이였다. 포기할수도 외면할수도 없는 생활…
서정관은 이미 정해진 생활의 길을 따라 그저 묵묵히 걸어갈수밖에 없었다.
송영숙의 존재로 하여 뼈아픈 패배감과 좌절감을 느끼군 하였지만 이제는 별수없이 자기 자리나 착실히 유지하는것이 상책이였다. 그러다가도 이따금 가슴노리를 허비는 상실감에 역증이 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새로 온 기사장 송영숙이 집안식구들의 말밥에 오르는것을 두고 기분이 상한 사람은 서정관만이 아니였다.
정의성의 마음은 지금 그 누구보다 옹색하고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요즈음은 가는 곳마다 기사장에 대한 소리구나. …)
그는 말없이 방송화를 쳐다보았다.
(헌데 저 녀자는 언제 벌써 기사장의 가정생활까지 세세히 알아냈을가? 과연 《안테나》가 높기도 하구나. 신기할 정도라니까. …)
언제나 남들의 뒤생활에 호기심이 많아서 《안테나》로 불리우는 방송화였다.
그의 말은 들을수록 기분이 잡치였다.
방송화가 내뱉는 말이 마치도 자기에게 하는 말같아서 여간 옹색하고 따분하지 않았다.
정의성은 방송화와 입장단을 맞추는 안해까지도 민망스러웠다.
물론 처남댁과 안해의 말은 그 성격이 완전 다른것이지만 어떻든 화제는 송영숙에 대한것이였다.
그는 송영숙의 존재를 잊고싶었다.
말없는 비난은 비난의 말보다 더 쓰리다고 한다.
그에게는 말없이 자기를 비난하고 무시하던 송영숙의 랭담한 눈빛이 자꾸만 떠올라 괴롭기 그지없었다.
10년만에 처음으로 송영숙을 만나던 그 순간부터 정의성은 야릇한 운명을 저주하면서 괴로움에 몸부림쳤었다.
새로 온 기사장이라는것을 알았을 때에는 놀라움 또한 컸었다.
확실히 송영숙은 그 시절에 벌써 예감했듯이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비할바없이 높고 우월하였다. 그의 존재는 정의성으로 하여금 자기
일생을 통하여 송영숙을 경쟁대상으로 정했던 그였지만 매번 일인자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였다.
그의 모진 괴로움은 후회와 죄의식, 서글픔과 위구, 불안과 이름모를 초조감 등 규정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혼탁되여버렸다.
지금도 그는 자꾸만 되새겨지는 송영숙의 얼굴을 털어버리려고 모지름을 썼다. 하지만 생활은 좋은것은 좋은것대로 되새겨주면서 기쁨과 슬픔, 그 모든것을 더욱더 상기시켜주면서 자기의 궤도를 따라 흘러가는것이였다. 기억하고 명심하라고, 깊이 또 깊이 느끼며 오래도록 추억하고 잊지 말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