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푸른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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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자기가 열렬히 사랑했던 상대자를 쉽사리 잊지 못한다.

그러나 배반당한 심장에서는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아픔이 가셔지지 않는 법이다.

오리공장 기사장 송영숙의 마음이 지금 그러하였다.

방금전에 지배인과 함께 현장을 돌아보고 사무실에 들어선 송영숙은 문가에 우뚝 서며 심호흡을 하였다.

(그를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그가 여기서 일하고있었단 말인가. …)

그것은 너무도 뜻밖의 일이였다. 정녕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다.

송영숙은 출입문을 닫고 창문쪽에 놓인 팔걸이의자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윽고 그는 몸가짐을 흐뜨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푹신한 의자도 그의 마음을 눅잦혀주지 못했다.

송영숙은 한손으로 턱을 고이고앉아 책상앞쪽을 지그시 쏘아보았다. 그의 크고 정기도는 눈가에서 록록치 않은 빛이 발산되였다.

이제는 10년전의 일이여서 기억에조차 희미해졌던 일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곳에서 정의성을 만나고보니 누를길없는 묵었던 감정이 해묵은 덤불을 헤치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올랐다.

그는 모두숨을 내그었다.

심호흡을 할 때마다 보라빛이 나는 밤색잠바옷이 팽팽하게 켕기워졌다.

눈앞에는 청년직장에서 정의성을 만나던 일이 다시금 떠올랐다.

송영숙은 장병식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돌아보았다.

닭공장에서 지배인으로 사업하다가 얼마전에 이곳 오리공장 기사장으로 임명받은 송영숙의 마음은 류다른 흥분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는 장병식지배인과 함께 종금직장과 알깨우기직장들을 차례로 돌아보고 오후에는 생산공정대로 청년직장에 이르렀다.

그들은 연분홍빛살구꽃이 활짝 피여난 청년직장구내에 들어섰다.

한창 먹이시간인지 드넓은 구내는 오리합창단의 울음소리로 들썩하였다.

비육호동을 바라보니 목화송이처럼 털빛이 하얗고 뭉실뭉실 살찐 수천마리의 오리들이 박박갈갈 청높은 소리를 합창하며 먹이그릇과 물호스쪽으로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저켠 새끼오리호동에서도 노란 털이 포시시한 새끼오리들이 노래하듯 정답게 삐용거리며 관리공들의 뒤를 따랐다.

푸른색지붕을 떠이고 렬을 맞추어 들어앉은 수십동의 현대적인 호동마다에서 사뿐히 오가는 관리공들은 오리합창단의 음악에 맞추어 출연한 무용수들은 아닌지. …

(가금도 예술이라더니…)

송영숙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그에게는 화창한 이 봄날의 이채로운 풍경이 마치 자기에게 보내는 따뜻한 인사처럼 생각되였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인민사랑의 력사속에 태여났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손길아래 새 세기의 현대적인 축산기지로 전변된 이 큰 공장의 생산과 기술을 책임진 기사장의 중임이 다시금 느껴졌던것이다.

이 땅에 전쟁의 불구름이 타래쳐오르던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작전대우에서 태여난 공장, 동해를 옆에 끼고 천수백정보의 드넓은 자연호수와 더불어 굴지의 오리고기생산기지로 전변된 이 공장이다.

우리 나라 가금업의 새 력사가 펼쳐진 이 공장은 송영숙이 얼마전까지 지배인으로 사업하고있던 닭공장에 비해 규모는 물론 종업원수에 있어서도 비할바없이 큰 공장이였다.

년간 수천톤의 가금을 생산하여 가공처리한다는 한가지 사실만 놓고보아도 자못 마음이 무거워졌다.

송영숙은 자기와 보폭을 맞추며 나란히 걷는 지배인 장병식의 구리빛얼굴을 슬그머니 건너다보았다. 틀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그의 얼굴에는 시종 흐뭇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새로 온 녀성기사장을 위해 이틀째나 시간을 내여 생산공정대로 안내해주는 지배인이다.

키가 크고 남달리 어깨가 넓은데다 살결이 거무스레하고 목소리까지 석쉼한 장병식지배인은 환갑나이에 이르렀어도 건장하고 기력도 펄펄했다.

도목장관리국산하의 오리공장과 닭공장의 지배인이였던 그들 두사람은 이미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송영숙은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더우기 지배인사업년한이 오랜 장병식을 존경하였고 늘 어렵게 대해왔었다.

하지만 이틀째 그와 함께 생산현장들을 돌아보면서 가까이 지내보니 겉보기와는 달리 무척 친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고작은 설비들과 공정들을 환히 꿰뚫고 수백명의 종업원들 이름까지 다 기억하고 그들과 가정생활에 대해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지배인은 무뚝뚝하고 거칠어보이기까지 하는 외형과는 달리 섬세하고 다감한 사람이였다.

(공장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송영숙은 이 며칠간에 만나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며 걸음을 옮기였다.

생산이자 과학기술이고 과학기술과 생산이 일체화되고있는 오늘의 정보산업시대에 공장의 기술자들은 물론 종업원들과 힘을 합쳐 오리고기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킬 새로운 결심으로 가슴이 뿌듯해지였다.

그의 마음을 헤아려본듯 장병식지배인은 수천톤의 생산능력을 가진 청년직장의 규모와 하루배합먹이소비량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급수탑앞에 이르자 지배인은 마주오는 관리공처녀에게 직장장이 어디 있는가고 물었다.

《직장장동진 방금전에 22호동에 있었습니다.》

처녀의 대답에 머리를 끄덕인 지배인은 왼켠으로 꺾어든 길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해병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어미오리를 형상한 조각옆에 있는 비육호동에 이르렀다.

지배인이 앞서서 출입문을 열고 호동안으로 들어갔다.

호동안에서는 소독냄새가 섞인 가금호동특유의 시큼하면서도 비릿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그들은 관리공들의 휴계실과 먹이조리실, 위생소독실이며 먹이보관실을 차례로 들여다보았다.

송영숙은 사양관리도구들과 위생시설들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어디나 관리공들의 알뜰한 손길이 엿보이는 호동이였다.

이윽고 채광조건이 좋은 축사안으로 곧장 걸음을 옮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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