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9 회)
종
장
우리의 힘
3
여보!
당신과 또 이렇게 마주서고보니 못잊을 추억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는군요.
애국렬사들이 오르는 이 영생의 언덕에서 4년전 9월의 그날 당신과 만날 때 어버이수령님께서 친히 화환을 보내주시고
그처럼 많은 일군들이 깊은 애도속에 숙연히 머리숙이고 조의를 표시하는 모습을 보고 우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떨리는 손으로 화환의 진귀한 꽃송이며 댕기도 쓸어보고 《공화국영웅 안동수동지》라고 정성스레 쪼아박은 백옥색묘비도 쓰다듬어보고…
이렇게 또다시 당신앞에 서고보니 당신은 정녕 가지 않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 심장을 설레이게 하는군요.
젊은시절의 당신의 모습을 보느라니 마음은 어느덧 그 시절로 달려가는것 같아요.
우리들의 사랑을 꽃피우던 그 시절…
당신이 조국으로 떠나시던 그 정력에 넘치던 청춘시절…
당신은 여전히 그 시절에 살고있군요. 영원히 젊은 모습으로…
여보, 나도 지금 나날이 젊어지는것만 같아요.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사랑속에 세상에 다시없는 행복을 누리며 사는데 왜 안그러겠어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에도 저를 불러 오찬회를 마련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정일심동무를 만나니 매우 기쁩니다. 나는 정일심동무가 조국에 왔다는 말을 듣고 너무 반가와 다른 일을 미루고 오늘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
수령님께서는 제가 재로동포들속에서 조국을 위하여 활동하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건강에 대해
물어주시였어요. 전 그 치하의 말씀에 송구스럽고 황송하여 얼굴을 붉히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사랑속에 정말 건강해졌다고 말씀드렸어요.
두해전 8월 제2차 범민족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왔던 저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각별한 사랑속에 훌륭한 병원에서 유능한 의사들의 건강검진을 받고 늙으면 의례히 생길수 있는 그런 병을 집중치료 받게 되였어요.
어버이수령님께서 저의 건강을 특별히 잘 돌봐주라고 하시였다고 하시면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가장 현대적인 병원에 입원시키고 가장 좋은 약으로 치료해주라고, 식사도 주기에 맞게 잘 보장해주라고 일일이 가르쳐주시고 매일같이 저의 치료정형과
건강회복상태를 알아보시였어요. 그러시면서 여름옷차림으로 조국에 온 나에게 가을에는 가을옷, 겨울에는 겨울옷, 그것도 속내의와 외투까지 받쳐서 다
안겨주시였어요. 제가 건강을 말끔히 회복하고 퇴원하였을 때는 또다시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해주시였어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를 만나시자마자 건강은 어떠한가고, 사람이 나이먹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고, 신경질환은 치료를 잘 받으면 고칠수 있다고 하시였어요.
오찬회때는 자식들이 걱정하지 않으면 더 있다가도록 하라고, 나이를 먹은 다음에 생긴 병은 고치기 힘들고 다 고쳤다 해도 안심할수 없는것만큼
앞으로는 자주 조국에 와서 치료를 받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어요. 그러시면서 정일심동무는 1년에 한번씩 조국을 방문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렇게 식사도 한끼 같이 나누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굴만 봐도 좋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하시였어요.
수령님께서는 감격해서 눈물흘리는 저에게 나이를 물으시더니 래년이 생일 일흔돐이면 자신께서
일흔돐상을 차려주겠다고 하시였어요. 쏘련에서 일흔돐생일을 쇠겠다고 하면 우리 나라 대사를 통하여 쏘련으로 일흔돐상을 보내주고 조국에 나와서
쇠겠다고 하면 조국에서 일흔돐생일상을 차려주겠다고 하시였어요.
그러시고는 아들딸들을 다 데리고 조국에 나와서 일흔돐생일상을 받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국땅에서 생일상을 받는것보다 조국땅에서 받는것이
아무래도 나을것입니다라고 하시였어요.
글쎄 저같은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마음쓰실가요. 저야말로 조국에 벽돌 한장, 돈한푼도 보탬 못하고 오히려 부담만 끼쳐왔는데…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난해에 정말 저에게 생일 일흔돐상을 차려주시였어요. 조국땅에서 8. 15범민족대회와 《아시아의 평화와 녀성의 역할에 관한 제3차
평양국제토론회》에 참가하였다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생일상을 받던 일이 어제런듯 선해요. …
그런 세상에 다시없을 축복을 받던 일이 어제같은데 이번에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저를 불러주시고 이렇게 은정깊은 사랑을
안겨주시였어요.
수령님께서는 앞으론 조국에 와서 병치료를 받으라고 하시면서 나이도 많은데 조국에 오면 자기 집에 온것으로 생각하고
한 여섯달씩 놀다가 가라고,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이 보고싶으니 다음해 4월 15일에 그들을 다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시였어요.
여보.
난 래일 로씨야로 떠나요. 래년 4월 15일에 다시 오겠어요. 그때는 어버이수령님께 만수축원의 노래를 안고오겠어요.
노래이야기를 꺼내고보니 당신과 함께 달밝은 그밤 오리나무숲가에 앉아 부르던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우리 그때는 《고향생각》을 불렀지만 오늘은 수령님품을 노래부르자요.
어버이수령님 김일성대원수님
영광의 나날을 지내옵니다.
지난날 갖은 천대받던 이 몸이
오늘은 영웅으로 되였습니다.
아 자애로워라 수령님품이여
1993년 3월…
당신의 정일심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