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8 회)
종
장
우리의 힘
2
(2)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한가지라도 더해주려고 마음쓰시였어요. 우리들의 일정에 대해서까지 하나하나 알아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어요.
《래일은 나와 함께 이곳에 있도록 합시다. 오늘은 연회를 하고 래일은 이곳에 밤이 많은데 밤청대도 합시다. 지금 밤이 잘 익었습니다.》
그러시고는 좌중을 둘러보시며 누구에게라없이 밤을 먹어보았는가고 물으시였어요.
《밤을 먹어보지 못하였습니다.》
향산이가 이렇게 말씀올리자 그이께서는 래일오전에 외국에서 온 손님을 만나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다음에 밤청대를 합시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좀 가벼워집니다.》라고 하시였어요.
《언제인가 류경수동무가 안동수문화부려단장에게 밤청대를 대접하려다가 못했다고 하면서 아쉬워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국땅에서 오래동안 살아온 안동수동무는 밤청대를 못해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조국의 향취를 모르고 살아온 동무인데 다음해엔 밤청대를 꼭 해주자고 하였댔습니다. 그런데 그만 전쟁이 일어나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였습니다.》
《수령님!》
전 또다시 목메여 부르며 눈물을 쏟았어요.
수령님께서는 류경수동무와 안동수동무는 살아생전에 친근한 사이였다고 하시면서 류경수동무의 부인이 안동수유가족이 왔다면 무척 반가와할거라고, 동무들과 함께 지내도록 해주겠다고 말씀하시였어요.
수령님의 사랑은 이뿐이 아니였어요.
수령님께서는 오찬회를 마련하시고 저를 자신의 왼쪽옆에 앉혀주시였어요. 오른쪽옆자리는 비워두게 하시더군요. 저는 어느 큰 간부의 자리인줄로만 알았어요. 이윽하여 수령님께서는 우리를 둘러보시다가 《이렇게 가정적분위기에서 모여앉으니 안동수동무가 살아서 돌아온것 같구만.》하시며 한 일군에게 바로 그 오른쪽옆자리 앞상을 가리키시였어요. 《여기에 안동수동무의 술잔을 하나 가져다놓고 술을 부으시오.》 저는 그만 눈굽이 시큰하고 뜨거운것이 입안에 왈칵 솟구쳐올랐어요. 그러니 바로 그자리는 당신의 자리였군요. 수령님께서는 마치도 당신이 살아있는 사람처럼 자리도 내놓고 술도 붓게 하시고…
《우리 먼저 안동수동무를 추억하여 그리고 안동수동무의 부인과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의 건강을 위하여 잔을 듭시다.》
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수령님, 그러지 말아주십시오. 이 첫잔은 어버이수령님의 건강을 축원하여 들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며 저와 자식들에게도 일일이 잔을 찧어주시고는 한 일군이 빈 술잔을 가져다놓고 술을 붓는 모습을 추연한 눈길로 바라보시였어요.
전사가 금시라도 그 잔을 받는듯 이윽히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갈리신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어요.
《안동수동무를 추억하여 한잔 듭시다. 모두 여기 와서 안동수동무의 술잔에 잔을 찧읍시다.》
어버이수령님을 따라 저와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애가 차례차례 당신의 술잔에 잔을 찧었어요. 여보, 당신은 그때 분명 그 술을 드셨지요? 당신은 분명 그 자리에 계시였지요?
그 술잔의 찰랑거리던 술은 분명 당신의 감격의 눈물이였지요? 위대한 수령님의 그토록 끝없는 사랑과 숭고한 의리에 우리는 모두 울었어요.
수령님께서는 항일유격대에서 유격대원이 희생되면 희생된 유격대원의 술잔에 모두 잔을 찧으며 그를 추모하였다고 하시였어요. 후에 알게 되였지만 그날저녁에도 수령님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무척 마음을 쓰시였어요.
수령님께서는 오래전에 곁을 떠난 전사를 추억하시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안을 거니시다가 갈린 음성으로 안동수영웅의 묘비를 애국렬사릉에 세워주자고,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을 보내고 관계기관들에서도 화환을 가지고가서 조의를 표시하게 하라고 하시였대요. 수령님께서는 가족이 떠나기전에 애국렬사릉에 가보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그날 너무 흥분하지 않게 사전에 안동수영웅의 비석을 애국렬사릉에 세우게 된다는것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대요.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에 도취되여 잠만 잤어요.
수령님께서는 다음날도 오랜 시간 우리들과 함께 계시면서 은정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다가 저의 이름을 조선사람이름으로
고쳐지어야겠다고 말씀하시였어요.
수령님께서는 안동수 부인의 이름을 정 이리나라고 하면 되겠느냐고, 안동수는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고 하시였어요.
《부인의 이름을 정일심이라고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일심이란 한 일자에 마음 심입니다.》
저는 너무도 감격하여 그저 《좋습니다.》 이 한마디밖에 올릴수 없었어요.
이어 수령님께서는 딸들의 이름들도 다시 짓자고 하시면서 맏딸의 이름은 향산이라는 향자에 목란이라는 란자를 따서 안향란, 둘째딸은 진달래꽃이라는 뜻에서 향진이라고 짓자고 하시였어요. 조선의 국화 목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그리도 사랑하시던 진달래…
나는 그만 가슴이 뭉클해왔어요.
언제인가 당신이 편지에서 1949년 설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를 만나뵙던 이야기를 하셨던 일이 생각났던거예요. 그때 녀사께서는 저희들의 이름을 나직이 되뇌여보시며 제 나라 이름도 못가지고있는데 대해 가슴아파하셨다고, 이제 우리들이 조국에 오면 모두 데리고 녀사님께 찾아가서 이름을 지어달래야겠다고 하시였댔지요.
그런데 오늘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이름을 지어주신거예요. 일심, 향산, 향란, 향진.
당신도 수령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시였으니 우린 모두 그분으로부터 이름을 받았군요.
예로부터 부모들이 자식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나요. 그러니 우린 모두 그분의 아들딸이지요.
전 이것이 단순한 이름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조선의 넋을, 위대한 조국을 안겨주신것 아니겠어요.
몸은 비록 이역에 있어도 순간도 잊을수 없는 그것, 진정한 삶의 품, 운명의 품인 어머니조국의 참다운 의미를 가슴벅차게 받아안았어요.
그 어딜가나 조선사람의 넋, 조선사람의 긍지와 자부, 존엄을 안고 살기를 바라는 수령님의 그 숭고한 뜻을 심장에 깊이깊이 새겨안았어요.
수령님께서는 저희들모두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자 만족해서 웃으시며 《내가 부인의 이름을 일심이라고 지은것은 부인이 자기 조국과 수령을 위해서 그리고 안동수의 아들딸들을 위해서 일편단심 살아왔기때문에 그렇게 정일심이라고 지은것입니다.》라고 하시였어요.
수령님께서는 밖에서 비가 내린다고 몹시 아쉬워하시면서 안동수동무에게 해주려던 밤청대는 그때 무슨 일이 갑자기 생겨 못해주었다는데 오늘은 비가 와도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실내에서라도 약속대로 밤청대를 하자고 하시였어요.
그러시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시였어요.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있었어요.
원래 가을비소리는 처량하다고 하였지만 저희들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밤청대를 하게 되였다는 행복감으로 가슴을 들먹이며 앉아있었어요. 한가정처럼 그이를 모시고 오붓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밤청대를 하는 모습을 그려보며 그이를 우러르던 나는 점점 눈이 커졌어요.
비내리는 창밖을 이윽토록 내다보시던 수령님께서는 갑자기 손수건을 꺼내여 눈굽을 닦으시는것이였어요.
웬일일가. 수령님께서 왜?…
《동수가 우누만, 동수가 울어.》
혼자말씀으로 나직이 뇌이시는 푹 갈린 그 음성, 처음엔 혼자 하시는 말씀이여서 말씀의 뜻을 인차 리해하지 못했던 나는 창가에서 돌아서시는 그이의 안광에서 또다시 눈물이 번쩍이는것을 보고는 순간에 숨이 콱 막히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어요.
《아, 수령님!》
불시에 목이 메여오르고 눈물이 끓어올랐어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밖에서 비가 내리는것을 보시고도 당신이 운다고… 그래요. 수령님의 마음속엔 당신이 살아있어요. 그래서 연회때도 옆자리를 내놓으시고 당신의 술잔에 술도 붓게 하시고… 영생이란 바로 이런것이군요.
이제는 당신이 우리곁을 떠난지도 40년이 되여오는데… 수령님께서는 당신을 아직도…
세상에 이처럼 눈물겨운 인정의 세계, 사랑의 세계가 어디에 또 있겠어요.
그이께서는 우리와 헤여지실 때에도 무척 서운하신 음성으로 차마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섭섭해도 이제는 헤여져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조국에 매해 오시오. 다음해에도 오고 또 그 다음해에도 오고…》
《수령님탄생 80돐때 오겠습니다.》
제가 울먹이며 이렇게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고개를 가로저으시였어요.
《80돐이면 1992년인데 좀 먼것 같습니다. 조국에 자주 오시오.》
그이께서는 이러시며 우리들을 오래오래 바래주시였어요.
1989년 9월
당신의 정일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