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 회)

종 장

우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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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이 우리에게 빨리 조국으로 오라고 쓴 편지를 받고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던 일이 33년이 다된 오늘까지도 눈앞에 선하군요.

그때 당신은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가족을 빨리 데려와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고 쓰시였지요.

류경수려단장과 그의 부인도 당신이 가족을 데려오지 않는다고 막 야단들을 한다고 했었지요.

사택마을 자기네 집옆에 우리가 살 집을 지어놓고 가구들과 부엌세간들까지 다 갖추어놓았다면서 말이예요. 가마도 걸어놓고 땔감까지 준비해놓고…

그때 받은 편지가 마지막토 한자까지도 다 생각나요.

…이리나, 조국으로 떠날 때 전보를 치고 떠나오. 국경지대인 우쑤리스크까지 오면 우리 일군들이 마중나가 안내할것이요.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내곁에 오는 날을 손꼽아기다리겠소.

 상봉의 그날까지 안녕히…

 동수로부터

 1950년 5월 8일 평양에서

 

당신의 그 편지를 받고 우리들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답니다.

큰애와 아들애는 동네방네 뛰여다니면서 《우린 평양에 간다. 아버지한테 간다.》 하고 자랑을 했답니다. 막냉이도 《아빠, 평양… 나두 간다.》 하면서 생글거리고…

저녁이면 아들딸 3형제가 평상우에 올라서서 노래를 불렀답니다. 당신에게 불러주자고요.

지금도 그 노래소리가 귀에 선해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우리 막냉이는 목청이 얼마나 고운지 몰라요. 세살잡이가 노래는 또 어찌나 잘하는지…

우리는 조국으로 갈 준비를 서둘렀어요.

꼴호즈에서 오래동안 회계원을 해온 저로서는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좀 있었어요. 재정문제이니 인계할것들도 많고…

낮에는 꼴호즈에 나가 인계사업을 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가산들을 정리하고 터밭의 올감자도 다 파서 친정에랑 옆집에랑 나누어주었어요. 집에서 기르던 돼지는 수매하고… 닭들과 염소, 양들도 나누어주고…

모스크바에서 대학에 다니는 둘째오빠가 집에 왔다갈 때 따슈껜뜨에 들려 당신에게 인차 조국으로 떠난다는 전보를 치라고 했어요. 떠날 때 전보를 치면 당신이 혹시 출장지에 갔다가 미처 못받을가봐 미리부터 알고계시라는 전보였지요.

6월 20일 따슈껜뜨에 가서 입국사증을 받아가지고 온 날 우리는 온밤을 밝히였답니다.

이제 상반년도결산총회를 하고는 떠나자고 결심했어요.

결산준비는 다 해놓았으니 서두를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6월 25일 그날 아침도 새로 회계원이 된 처녀와 한담이나 하고있는데 글쎄 라지오에서 《미제와 리승만괴뢰역도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일으켰다》는 보도가 나오는게 아니겠어요.

전쟁이라니… 어쩌면 그놈들이…

나는 가슴이 활랑거려 견딜수가 없었어요.

당신일이 걱정되기도 했어요.

당장이라도 조국으로 달려가고싶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전쟁이 일어났다는 보도를 들은 다음날, 따슈껜뜨에서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겠어요. 그 입국사증을 주며… 《이젠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였구만요. 축하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친절하게 인사까지 하던 그 사람이예요. 그 사람이 글쎄 입국사증을 회수하겠다는거예요.

난 입국사증을 꽉 붙안고 안내놓겠다고 도리머리를 했어요.

《아주머니, 그러지 마십시오. 조국에서 전쟁을 하고있는데 그 란리판에 어떻게 이사짐을 싣고간단말입니까. 안됩니다. 이건 규정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못내놓겠다고 떼를 썼지만 할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은 이제 전쟁이 끝나면 다음날로 제일먼저 입국사증을 돌려주겠으니 그때 떠나라고 하더군요.

입국사증을 바치고보니 가슴이 허전한게 심장이 통채로 떨어져나간것만 같았어요. 너무도 맥이 풀려 그만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울었어요.

그날부터 난 라지오 보도시간만 기다렸어요.

우리 조선인민군대가 적들의 공격을 물리치고 반격으로 넘어갔다는 반가운 소식들이 울려나왔어요. 6월 28일에는 서울을 해방했다는 놀라운 소식도 울려나왔어요. 난 기뻤어요. 인민군대와 함께 당신과 함께 남으로 남으로 진격하는 심정이였어요. 수원, 대전… 조선지도를 얻어다놓고 인민군대가 해방하는 지역들을 하나하나 표시하면서 나는 속으로 환성을 올렸어요. 됐구나. 전쟁이 인차 끝나겠구나. 조국으로 갈 날도 멀지 않았구나. 그러던 어느날 회계실에서 새 회계원처녀와 목화수매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있는데 맏이가 뛰여와서 우편통신원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왔다갔다고 알려주었어요. 아버지한테서 온 편지라면서… 편지를 주고갔다나요.

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드디여 기다리던 소식이 왔구나.

가슴이 막 설레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맏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달려갔어요.

무슨 소식일가. 왜 아직 오지 않는가 하는 나무람이 아닐가. 당장 떠나라는것이 아닐가. 아이참… 그런데 그 입국사증을 회수당했으니 어쩌면 좋아…

집에 나는듯이 들어서는데 왜서인지 마당가에 아들애가 막내의 손을 잡고 우두커니 서있었어요.

《왜 그러느냐. 왜 여기 나와있니?》

아들애가 겁에 질린 소리로 떠듬거렸어요.

《할머니가… 무서워요. 막 울어요.》

《왜?》

난 의아해서 물었어요.

《엄마, 전사했다는게 뭐가? 아버지가 전사했대. 그래서 할머니가 울어.》

《뭐?》

난 깜짝 놀랐어요. 뭐, 전… 사? 어마, 이 애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무슨 끔찍한 소리를…

난 황황히 문앞으로 다가갔어요.

순간 안에서는 심장을 잡아비트는듯한 애끊는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눈앞이 캄캄했어요. 하늘이 통채로 무너지는것만 같았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말인가. 아니, 절대로 그럴수는 없어. 이건 거짓말이야. 언제인가 당신이 사진과 함께 써보낸 편지가 떠올랐어요. 대좌의 군복차림으로 찍은 름름한 사진과 《내 생이 진하는 마지막순간까지 어버이장군님의 그 고귀한 믿음과 은정을 지켜 끝까지 빛나게 살것이요.》라고 썼던 편지 말이예요. 그런데 그런 당신이 어떻게 벌써…

난 문을 벌컥 열었어요. 모든걸 내 눈으로 확인하기전엔 믿을수가 없었어요.

뼈짬을 에여내는것만 같은 울음을 삼키고있던 어머님이 황황히 손에 들었던 종이를 감추었어요. 아마 갑자기 내가 나타났으니 당황해서 그랬겠지요.

난 말없이 들어가서 어머님이 치마밑에 감추었던 그 종이장을 달래보았어요. 손이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에서 별찌가 막 떠돌았어요.

그건 당신의 전사통지서와 당신이 어떻게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전사했는가에 대한 내용을 적은 사단장의 편지였어요. 난 그대로 무너져앉고말았어요. 그다음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애들이 모두 한꺼번에 내 품에 안기며 왕왕 울음을 터뜨리던것밖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 같았어요.

믿어지지 않아 그 전사통지서와 편지를 보고보고 또 보고…

아니야, 이럴수가 없어. 이건 죄다 거짓말이야.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당신의 모습을 직접 보고 확인하기전에는 믿을수가 없었어요.

난 일어섰어요. 당장이라도 떠나려고 결심했어요. 조국에 나가자, 내 눈으로 직접 그이의 모습을 보고… 이게, 이 모든게 사실이라면… 내 손으로 눈을 감겨드리고… 내 손으로… 사증이 없으면 뭐래? 그냥이라도 갈테다. 갈테야…

말없이 와락와락 차비를 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어머님이 목갈린 소리로 말했어요.

《애에미야, 조선에서 전쟁이 한창이라는데 어떻게 거길 가겠다고 그러느냐. 애아버지도 없는데 가선 어떻게 한단말이냐. 이 숱한 식솔들을 끌구 그 란리판엘 어떻게…》

나는 그만 주저앉고말았어요. 그제야 목놓아울었어요.

그렇게 되여 우린 물러앉았어요.

회계원을 다시 시키더군요. 어머님은 그만 그때부터 몸져누워 일어나지 못했어요.

앓는 시어머님과 세자식을 거느리고 살아가자니 헐치 않았어요. 그러나 이를 사려물고 생활을 꾸려나갔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점점 크고 어머님의 병환은 더욱 심해지고… 살아가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러한 때인 섣달그믐때 우리는 뜻밖에도 조국으로부터 보내온 두툼한 봉투를 받게 되였어요. 난 정말 놀랐어요. 글쎄 그 봉투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생활보조금이 들어있었던거예요. 그처럼 생활이 어렵던 때에 그처럼 많은 보조금을 받고보니 울음이 나왔어요.

조국에선 지금 전쟁이 한창인데…신문, 방송에서는 그처럼 어려운 전쟁을 하고있다고 매일같이 전하고있는데 그야말로 한푼두푼을 쪼개쓰고있을 조국에서 전사한지 오랜 사람의 집에까지 그것도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역땅에까지 생활보조금을 보내다니…

꿈만같았어요. 난 후에야 가슴뜨거운 사연을 알게 되였어요.

당신이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으시였을 때에도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여 며칠째 끼니도 변변히 드시지 못했대요. 아주 똑똑하고 싸움도 잘하던 동무였는데 그를 잃었으니 이제 어데 가서 그런 사람을 구할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자주 창가에 서시여 먼 남쪽하늘을 바라보군 하시였대요. 당신의 전투공로를 길이 빛내주자고 하시며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할데 대하여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대요. 미제와 그놈들이 그러모은 15개 추종국가침략군들과 준엄한 판가리싸움을 하는 그 어려운 날과 날들을 이어가시던 그이께서는 며칠전에도 최고사령부작전대앞에서 밤을 새우시다가 《안동수영웅의 부인이 지금 해외에서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몹시 걱정이 된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전쟁을 겪고있더라도 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영웅의 유가족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대요. 그러시면서 우선 쏘련돈으로 많은 액수의 생활보조금을 보내주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대요.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그때부터 우리는 매달 조국에서 보내오는 생활보조금을 정상적으로 받게 되였어요.

정말 저도 제일 어려운 때에 그 보조금이 있어 가정살림도 유지하고 아이들에게 공부도 시키고 어머님의 병도 치료하고… 그 생명수와도 같은 생활보조금을 받아쥘 때마다 어버이수령님의 고마운 은정에 가슴이 뜨거워올라 눈물을 흘리군 했어요. 자식들에게도 이 고마운 은정을 잊지 않고 공부를 잘하도록 엄하게 신칙을 하군 했어요. 어버이수령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키워 내세우는것이 그이의 고마운 은정에 보답하는 길이고 당신에게도 떳떳한 일이 아니겠어요.

 

어버이수령님의 대해같은 사랑을 받으며 어언 33년을 살아왔어요. 이제는 내 나이도 예순고개에 올라섰어요. 아이들도 다 크고 나이도 이렇게 들고보니 갈수록 그리운것이 조국산천이군요.

당신이 청춘을 바쳐 지켜낸 내 나라, 내 조국을 죽기전에 한번만이라도 밟아보는것이 저의 소원이예요. 하지만 왜서인지 선뜻 용단을 내릴수가 없군요. 무엇인가 조국앞에 아직 다하지 못한것이 있는것만 같아서…

오늘 아들이 나에게 와서 졸랐어요.

《어머니, 우리도 조국에 가보자요. 다른 사람들도 다 가는데… 난 아버지가 보고싶어요.》

맏딸과 막내도…손자, 손녀들도 다 간절히 조르는군요. 난 차마 막을수가 없었어요.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 우리모두 조국에 가자. 하지만 애들아, 우리가 이제 가면… 아니, 아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를 그처럼 극진히 돌봐주시는데… 무엇인가 보답할것을 안고가야 할게 아니냐. 난… 수령님뜻대로 조국통일을 위한 일을 더하구… 윅또르 너는 지금껏 연구하던것을 성공해서 지구물리학박사가 되구… 리빠와 클라라는… 너희네 직장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기자, 연구사가 되였을 때 그때 가자꾸나. 그때 가서 <수령님, 저희들이 왔습니다. 제가 안동수의 안해이고, 이 애들이 아들과 딸들입니다. >라고 떳떳이 인사드리자꾸나.

그러기전엔 못가. 정말이야.》

여보, 내가 잘못 말한게 아니지요?

당신이 기다릴줄 알면서도 내가 왜 아직 조국으로 가지 못했는지… 당신은 리해하겠지요?

기다리세요. 나의 마음은 지금도 당신께로 달리고있어요. …

198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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