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 회)
서 장
백두산우뢰
(5)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지 3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 우리
당내에 돋아난 독버섯들을 뿌리채 들어내시는 과정에 수령의 믿음을 배반하는자들은 위불없이 반당, 반혁명의 길로
굴러떨어진다는 혁명의 원리를 다시한번 체득하시였다.
그것은 어지러운 당파싸움으로 피멍든 이 나라의 운명을 반만년민족사에 처음으로 맞이한 대성인께 통채로 맡긴 새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조선의
별》이라는 노래와 《김일성》이라는 태양의 존함으로 조선혁명의 첫
페지에 부각한 성전이며 《개인미신》 반대로 유일을 부정한 그 순간부터 존엄도 국력도 정신도 여지없이 쇠퇴하기 시작한 나라들의 운명이 주는 심각한
교훈이다.
그것은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의 군상과 같이 수령님만을 우러르는 투사들의 흠모어린 눈길이 가르치는 진리이고 백두산을
천겹만겹으로 둘러싼 천고밀림의 거목들이 부르는 영원한 노래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노래를 다시 듣고싶으시였다. 하여 그이께서는
영화촬영에 필요한 후보지를 확정하는 사업때문이라기보다 선렬들의 령이 깃든 백두산마루에 올라 이제 더는 방관할수 없는 배신자들을 징벌할 신념과
의지를 가다듬고싶어 백두산으로 떠나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망연한 눈빛으로 자신을 우러르고있는
리오송과 저쯤 앞에 몰켜서서 이쪽을 바라보며 앞으로 더 나가야 할것인지, 이제는 돌아서야 할것인지 망설이고있는 일행을 향하여 큰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오늘행군의 종착점은 백두산마루입니다. 백두산으로 올라갑시다!》
×
건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사계가 탁 트이였다.
어느사이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우에 올라서신것이였다.
한걸음 먼저 올라온 군인들이 여기저기에 널린 하얀 부석돌을 주어들고 희한하게 들여다보는가 하면 아득한 비탈아래로 바라보이는 파아란 천지를
넋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리오송도 허리에 두주먹을 고이고 말짱 개인 하늘아래 신비스럽게 펼쳐진 절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각별모양의 빨간 좀참꽃들이 주단처럼 한벌 쭉 뒤덮인 아래쪽을 빙
둘러보시였다. 일명 《백두산진달래》라고도 불리우는 이 떨기나무는 이 일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만병초처럼 나무가지가 손가락 한마디만큼이나 낮게
자라지만 꽃송이는 무척 소담하고 아름다왔다.
어디서 꺾었는지 빨간 좀참꽃송이를 손에 들고 달음쳐온 김철호가 그이의 팔을 감싸안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장군, 무슨 일이시오? 오래간만에 고향산에 오셨는데 어째 기뻐하시는 기색은 없구…》
이마전에 손채양을 하고 기암절벽에 눈을 팔던 리오송도 김정일동지의 무거운 안색을
알아보고 부석자갈을 저벅저벅 밟으며 급히 다가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연줄연줄 굽이쳐간 백두의 련봉들너머 하늘가를 바라보시다가
누구에게라없이 물으시였다.
《안도가… 어디쯤입니까?》
김철호와 리오송은 무춤 굳어져버렸다. 여기 백두산마루에서 안도땅이 눈에 보일리 없음을 모르실 그이가
아니시였기때문이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대답을 바라서 물으신것이 아니였다.
우리 군대가 첫 자욱을 뗀 력사의 성지로 달려가는 마음이, 그 소사하의 봄으로부터 흘러온 수십년의 준엄했던 력사를 아득히 거슬러보는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울려나온것이였다.
《리오송동지는 안도에 가보셨습니까?》
리오송은 뜻밖의 물으심에 당황한듯 귀뿌리를 썩썩 비비였다.
《난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될 때 겨우 7살 코흘리개였습니다. 39년도 무산지구진공작전때 제 나라 땅을 한번 보고싶어
수령님께 떼를 쓰다싶이 해서 따라나선것이 겨우 14살이였으니…》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렇겠군요. …》하고 말끝을 흐리시며 그윽한 시선으로 리오송을
바라보시였다.
《그렇게 어렸던 소년중대원도 오늘은 한개 대련합부대의 지휘관이 되고 중년의 장령이 되였습니다. 구식보총과 륙혈포를 차고 떠났던 우리의
청소한 무장대오는 또 얼마나 몰라보게 장성강화되였습니까!》
그제서야 김정일동지의 사색을 안도의 밀림으로 이끌어간것이 무엇이였는가를 어렴풋이
깨달은듯 투사들의 감개무량한 눈길도 그이를 따라 아득한 백두련봉너머로 날아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철호의 손에 아직도 들려있는 빨간 좀참꽃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바라보시였다. 어찌보면 항일무장대오가 태여나던 그날에 푸른 군모마다 빛나던 오각별과도 같은 별모양의 빨간 꽃송이…
과연 무엇이 태여났고 무엇이 시작된 봄이였던가.
그이의 광채로운 시선과 깊은 사색은 멀리 안도쪽으로 펼쳐진 천리수해를 더듬어나갔다. 아슴푸레하게 바라보이는 그
지리적공간이 어쩌면 아득한 세월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시였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세상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멈춤없이 운동한다. 저 밀림을 이루는 개개의 나무들을 보더라도 어떤것은 더 푸르싱싱하게
자라며 어떤것은 부패사멸한다.
어떤것이 발전하고 어떤것이 쇠퇴하는가?
그것은 두말할것없이 뿌리가 살아있는 나무와 뿌리가 끊기운 나무일것이다. 조선인민군이라는 하나의 유기적생명체에 있어서 뿌리는 백두에서 시작된
혁명전통이다. 김창봉은 바로 이 뿌리를 끊어버리려고 한것이다. 안도의 그 봄이 소중히 자래운 혁명의 뿌리를…
그이께서는
녀투사의 손에 들린 꽃송이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신채 말씀을 이으시였다.
《안도의 그 봄으로부터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몇해만 있으면 벌써 마흔번째 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해마다 봄이
오면 같은 나무에 같은 모양의 꽃이 같은 색갈로 피여나듯이 우리 인민군대는 수령님을 따라 자기의 첫 자욱을 내딛던 그
봄날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며 싸워야 할것입니다. 그 모습이 변하면 그것은 벌써 수령님의 군대가 아닙니다.》
리오송은 그이의 말씀에서 우뢰와 같은것을 저릿하게 예감하였다.
문득 김정일동지께서 영화부문사업을 위해서만 여기에 오신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리오송은 무엇인가 의미깊고 커다란것이 그이의 심장속에서 용암처럼 끓어오르고있음을 분명히 느끼였다.
이 시각 그이께서는 우리 군대가 떠나온 력사의 첫 기슭을 더듬어보고계시였다. 그날의 빨찌산대원들의 모습에 오늘을
비추어보고계시였다.
그때… 그 대오속에 주관주의, 관료주의, 독단과 세도가 있었는가? 호령과 욕설, 영창제도가 있었는가?
부하와 하급에 대한 무시, 상관과 상급에 대한 공포가 있었는가?
없었다!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수도 없었다!
하늘땅이 변해도 우리 군대는 그때처럼 살며 싸워야 한다. 오직 수령님 한분만을 우러러따르며 수령님을
옹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수령님의 뜻대로만 싸우던 그때처럼!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지에서 피여오른 물안개가 회오리바람에 말려 희끗희끗 솟구치는 모양을
바라보시며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나는 이 백두산에 태를 묻은 조선의 아들로서 우리 인민군대의 본태가 흐려지는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습니다.》
어디선가 멀리서 울리는 포소리와 같이 궁근 뢰성이 울었다.
멀찌감치서 부석돌을 줏고있던 병사들이 그 소리에 놀라서 하늘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