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서 장
백두산우뢰
(2)
《…아마 종파분자들의 여독이 여기까지 흘러들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그때 여기 량강도의 일부 책임일군들은 우리가 방학기간을 리용해서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를 왔다고 하니 어린 학생들이 한창 배울 나이에 묘향산이나 금강산같은데 갈것이지 이런 산골에는 무슨 구경거리가 있어서 찾아왔는가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도당에 앉아있었으니 혁명전적지를 보존관리하는 사업이야 더 말해 뭘하겠습니까?》
《새벽에 여기로 떠나면서도 이야기했지만 량강도안의 모든 사업은 혁명전적지들을 더 잘 꾸리고 보존관리하며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널리 선전하기
위한 사업에 집중되여야 합니다. 통속적으로 말해서 도당책임비서동지나 인민
두 일군이
어떤 육중한 산짐승이 잡관목을 헤치고 돌진하는듯한 소리였다.
일군들은 바싹 긴장해지고 산생활에 어지간히 미립이 텄다는 녀투사들도
가늘게 두눈을 쪼프린 도인민
정작 범이 나타난다고 하면 당장 손에 쥘만한것은 그 지팽이 하나뿐이고 귀하신분을 한몸으로 막아나서야 할 사람들이래야 예순고개의 녀인들과
강대처럼 바싹 마른 인민
도당책임비서는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고 주먹땀만 흘리게 되였다.
한편
기껏 메돼지가 아니면 큼직한 노루가 뛰여드는것이라고 짐작하셨는데 키높이 자란 새초가 무대막처럼 젖혀지더니 뜻밖에도 하얀 장령복을 목단추까지 꼭 채워입은 단단한 체구가 튀여나왔다.
《무두봉의 범구경을 하는가 했더니 리오송동지였구만요!》
《아니, 덕흥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어요?》
리오송이 부
《말도 마십시오. 최현동지가 로친걱정을 어떻게나 하는지 어제밤 우리 부대에 전화가 두번이나 왔댔수다.》
김철호는 리오송의 퉁명스러운 말을 듣다가 손바닥으로 입을 감싸쥐며 사내들처럼 걸싸게 웃어제꼈다.
《그 령감이 그런 전화를 다 할줄 알면! 바른대로 말하라요, 우리가 여기 오는걸 어떻게 알았어요?》
턱밑에 고인 땀을 손등으로 뻑 씻고난 리오송은 철호의 뎅그래진 눈을 시물시물 웃으며 마주보았다.
《최현동지가 로친걱정을 했다는건 해본 소리고… 하지만 나한테 전화가 온건 사실입니다. 〈청년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멀지 않은 곳에서 애티나는 중위와 수염터가 꺼먼 상사 한명 그리고 날파람있어보이는 군인 두엇이 자동보총을 메고 다가왔다. 리오송이 달고온 호위병들이 분명하였다. 땀에 흠뻑 젖은 군복어깨에는 해묵은 이깔나무이파리들이 듬성듬성 달라붙었다. 아까부터 이런 무인지경에서 정말로 산짐승이라도 맞다들리면 어쩌나 하고 은근한 걱정을 하고있던 두 일군은 어깨에 총까지 멘 군인들이 나타나자 대번에 활기를 띠였다. 김철호의 심정도 그들과 다를바 없었으나 부러 언짢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리오송을 나무랐다.
《에그나, 그런 엄명을 받았으면 좀 빨리 올것이지. …》
《그러길래 이 리오송의 별명이 원래 〈지각대장〉이 아닙니까?》
언제인가
소년중대시절 리오송은 다른것은 몰라도 늄주전자와 법랑고뿌만은 늘 자기가 가지고다니다가 행군의 쉴참이면
그런 일이 몇번 반복되여 《지각대장》이라는 별칭이 붙게 되였는데 해방이 되여서도 그 별칭은 리오송의 꽁무니에 늘 붙어다녔다. 빨찌산출신들중에서 제일 나이가 어리다보니 장가를 들 때도 《지각대장》, 첫아이를 낳았을 때도 《지각대장》이 될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부름속에는 어제날의 소년중대 전사에 대한 투사들의 엇구수한 애정이 깃들어있었고 본인도 그것을 별로 싫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그만 호랑이로 소문난 최현의 비위를 거슬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정규군이 창건된지 한해가 지난 1949년도에 리오송이 어느한 통신구분대의 지휘관으로 배치받았을 때였다.
해방직후에 베잠뱅이바람으로 보안간부훈련소에 들어왔던 어수룩한 청년들까지도 중대장이며 련대참모며 하는 직무에 올라서던 때라 투사들속에서는 뒤늦게야 통신구분대장이 된 리오송을 두고 자연히 《지각대장》소리가 나오지 않을수 없었다. 그 소리가 어떻게 38°선경비대에까지 흘러갔는지 어느날인가 민족보위성에 회의로 올라왔던 최현이 한밤중에 옛 전우들을 보위성숙소마당으로 불러냈다.
《오늘부터 리오송이보구 〈지각대장〉이니 뭐니 하는 싱거운 말들을 하지 말아야겠소.》
아닌밤중에 홍두깨같은 최현의 꾸중에 모두들 입이 얼어붙었지만 익살스럽기로 소문난 김자린이 《그거야 롱담인데…》 하고 변명삼아 한마디 했다가 범의 코수염을 건드려놓은 격이 되고말았다.
《우린 모두 롱질할 자격들이 없소!》
최현은 도끼로 찍듯이 김자린의 변명을 잘라버렸다. 평시에 말이 없고 과묵한 최현이였지만 그날은 몹시 흥분하여 일장 훈시를 하였다.
동무들, 생각해보라. 리오송이 늦게야 구분대지휘관이 된것이 나이탓인가, 아니면 그 동무의 준비정도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