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백두산우뢰

(1)

 

1968년 여름.

례년에 없는 열풍이 들이닥친 지구는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기후의 변화까지도 돈으로 세여보는 서방의 통신들은 미구에 닥쳐올 폭염을 대대적으로 예고하는것과 함께 하와이의 해수욕장이나 주물랑마봉기슭의 피서관광지들에 대한 광고에 겨끔내기로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경쟁이 얼마나 열을 띠였던지 오스트랄리아에서 발간한 어떤 잡지에는 지구의 적도선 한복판에 꽂아놓은 온도계보다 TV에 꽂아놓은 온도계의 눈금이 훨씬 더 높이 올라간 만화까지 실리였다.

국제기상학자들은 11년만에 한번씩 돌아오는 태양활동주기와 새로 늘어난 흑점들에서 내뿜는 강한 열파에 대한 해석으로 례년에 없는 무더위의 원인을 루루이 설명하였지만 이해의 폭열은 결코 자연이 가져다준것만이 아닌듯싶었다. 온 세계가, 온 인류가 정치적인 작열을 일으키고있었다.

불과 한달전, 세칭 《쁘라하의 봄》이라고 일컫는 체스꼬슬로벤스꼬에서의 반정부시위에 대처하여 와르샤와조약기구의 땅크들이 이 나라의 국경선을 넘어서자 제국주의렬강들은 일시에 《자유와 민주를 짓밝는 군화발》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크레믈리의 지붕우에 들씌웠다. 쏘련(당시)은 이에 반발하여 《사회주의형제국가에서 일어난 비정상적인 사태앞에서의 국제주의적의무》라는 방패를 내들었다. 야멸찬 비난의 활촉들이 이 무쇠방패에 부딪쳐 불꽃을 튕기고 내부적으로 격화되여오던 사회주의진영안에서의 정치적론전도 급진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지면상에 일어난 불길에 불과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은 이러한 리념적인 불꽃방전보다 물리적인 화염에 더 쏠려있었다.

그 첫번째 관심사는 두말할것없이 온 세계가 가슴을 조이며 제발 새로운 세계대전의 발화점으로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있는 《푸에블로》호사건이였다. 올해 년초에 조선동해에서 정탐행위를 하다가 나포된 무장간첩선문제를 둘러싸고 벌써 몇달째 조미사이에 벌어지고있는 공방전은 점차 평화적담판의 《레드라인》을 넘어 전쟁접경에로 치닫고있었다.

조선인민의 투철한 반제의식과 불굴의 투쟁정신에 고무된 윁남인민도 이해 1월 꾸에썬미군기지에 대한 공격을 신호로 대규모적인 공세에 들어섰다. 후에와 사이공에서의 전투과정에 윁남의 애국력량은 《남부윁남민족민주평화애호력량동맹》이라는 조직으로 확대강화되여 해방지구들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한편 지방정권기관선거까지 진행하였다. 당황망조한 미국은 무려 60여만의 병력과 80여만의 남부윁남괴뢰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벌려놓았다. 윁남인민해방군이 은거하고있는 천연수림들에 살인적인 고엽제가 뿌려지고 이르는 곳마다에서 하늘을 찌를듯한 산불이 일어났으나 그 화염속에서도 윁남인민은 굴함없는 항전을 벌리고있었다. 거세차게 타오르는 반제의 열풍이 이 행성을 더 뜨겁게 달구고있는것은 아닌지.

아시아에서 중동쪽으로 좀더 눈길을 돌리면 거기서도 세찬 불길이 일어나고있다. 지난해 6월에 시작된 아랍나라들과 이스라엘사이의 전쟁에 자기 나라가 단 한명의 병사도 파견하지 못한것이 서방나라들의 압력때문이라는것을 알게 된 리비아인민들은 수도 타라불스에서 대규모적인 시위를 벌리고 유태복고주의자들을 비호두둔하는 영국과 미국을 단호히 규탄하였으며 자국에 주재하고있는 서방렬강들의 원유회사들을 습격하고 사정없이 불을 질렀다. 나라의 험악한 사태를 더이상 수습할수 없게 된 리비아국왕은 이 여름의 찌는듯한 무더위를 구실로 수백개의 짐짝을 싸들고 그리스쪽에 피서휴가를 가버렸다. 그러나 표면뒤에 숨은 리면을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는 정세분석가들이 이 요란스러운 행차를 두고 자연의 더위가 아니라 분노한 국민의 열기를 피해간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평한것은 두말할것도 없었다.

어디서 일어난 불길이건 어떻게 타번지는 불길이건 그 열원에는 공통적인 한가지- 낡은것을 뒤집어엎으려는 새것의 지향과 새것을 막아보려는 낡은것의 단말마적인 저항이 있었다. 그 불길이 사그라진 후에 어떤 슬라크덩어리가 남게 될지는 누구도 알수 없었지만 숨막힐듯한 그 열풍만은 누구나 지겹고 숨가쁘게 호흡하고있었다. 핵융합반응으로 끝없이 타번지는 거대한 항성의 열기와 복잡다단한 행성의 정치적열기가 부딪쳐서인지 이 여름에는 어디에 가나 훅훅한 열풍에 맥없이 늘어진 나무잎새들이 뭇매미들의 귀청따가운 울음소리를 시들해서 듣고있었다.

하지만 여기 백두산기슭에는 금방 청신한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7월 보름이 지났지만 커다란 바위의 음달진 밑구석들을 뚱기쳐보면 아직도 칼부스레기같은 얼음가루가 서걱거리는데 그것은 거목의 아지들사이로 억척같이 뚫고들어온 해빛에 야금야금 녹으면서 숲속의 서늘하고 맑은 기운을 한껏 돋구어주는듯싶었다.

무봉쪽에서 늦은 아침해가 떠오르자 태고의 력사를 적어넣은 갈피인듯 껍질이 쩍쩍 터갈라진 이깔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들과 꿀물같은 진이 누렇게 흘러내린 봇나무, 자작나무의 흰 줄기들까지 온통 금빛일색으로 변하고 호박잎모양의 병풍나물과 더부룩한 잡풀이 콱 뒤덮인 습지에는 자주꽃방망이며 부채붓꽃, 손바닥란, 동의나물, 분홍노루발풀의 자름자름한 꽃송이들이 푸른 비단에 박힌 청보석, 홍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신비하고 청청한 기운이 감도는 이 천고밀림을 헤치고 문득 굵직한 고로쇠나무가지를 지팽이처럼 짚으신 김정일동지께서 연회색치마저고리차림의 두 녀인과 함께 훤하게 트인 숲언저리에 나서시였다. 이 두 녀인으로 말하면 며칠전에 평양에서부터 그이와 함께 동행해온 항일투사 김명화와 최현의 부인 김철호였다. 녀투사들은 그이께서 백두산창작단의 촬영후보지일로 삼지연지구로 가신다고 하기때문에 아마도 이번 걸음에 자기들의 조언이 필요하신가보다 하고만 생각하였을뿐 옛 빨찌산대원들과 함께 백두산지구로 떠나신 그이의 진의도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사연은 아직 김정일동지자신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하얀 반팔샤쯔를 가뜬하게 입으신 김정일동지의 온몸에는 새벽기운과도 같은 젊음이 눈부시게 발산하는데 그 신비한 기운이 비껴서인지 잔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녀투사들의 이마전에도 싱싱한 열기가 확확 내풍기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쁘게 헐썩거리는 숨소리를 느끼며 뒤를 돌아보시였다. 그이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 어깨가 쭉 뻐그러지고 몸이 실팍한 량강도당 책임비서(당시)와 산골늙은이처럼 강마른 도인민위원장이 이마전에 흥건히 돋은 땀을 연방 훔치며 밀림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땀에 푹 젖은 옷섶을 손에 모두어쥐고 풀썩풀썩 풍구질을 해가며 김정일동지의 곁에 태연하게 서있는 투사들을 향해 혀를 내둘렀다.

《투사동지들은 예순고개가 눈앞이라면서 펄펄나는군요.》

《정말 보통기운이 아닙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딘가 변명비슷한 어조가 비낀 그들의 탄사를 들으시고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이시였다.

《허, 아무리 세월이 흘렀기로서니 왕년의 빨찌산녀대원들이 산길타는 법을 그렇게야 쉽사리 잊었겠습니까? 모두들 우리 투사어머니들을 너무 얕잡아보는것 같습니다?》

《아, 아닙니다.》

도인민위원장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어깨를 약간 뒤로 젖히였다.

《사실 영화촬영에 필요한 후보지같은것은 이 고장의 주인인 우리가 나서서 찾아드려야겠는데 이렇게 직접 투사동지들과 함께 험한 걸음을 하시니 죄송스러워서 해본 소립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위원장의 송구스러운 눈길이 자신께서 지팽이처럼 손에 쥐신 고로쇠나무가지며 앞코숭이가 흙탕물에 축축히 젖은 운동화에 와닿는것을 느끼며 《이건 단순히 영화창작문제가 아닙니다.》하고 그루를 박으시였다. 자신께서 영화촬영때문에 현지답사를 하고있는줄로만 알고있는 이들에게 꼭 하고싶으신 말씀이 있었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내가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 문학예술부문사업을 추켜세울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습니다. 나는 이 영예로운 과업을 어떻게 관철하겠는가 하고 깊이 연구한 끝에 문학예술부문의 주타격방향은 영화부문이며 이 사업의 중심은 혁명적문학예술의 전통을 찾아내고 계승발전시키는데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뿌리가 약한 나무가 센바람에 견딜수 없듯이 무슨 일에서나 기준이 없고 전통이 없으면 흔들리기마련이 아닙니까. 한마디로 말하여 우리는 사상정신생활령역에서의 절대적기준, 조선혁명의 본태를 찾자는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자 김철호가 얼른 그이의 뒤를 따라서며 두 일군에게 고개를 돌리고 나지막하게 이야기하였다.

《조선혁명의 본태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을 잘 새겨야 해요. 장군은 10여년전에 벌써 이 백두산지구에 답사행군대오를 이끌고 오셨댔다우. 이를테면 백두산혁명전적지답사의 첫 개척자가 되셨지요.》

등뒤에서 울리는 김철호의 목소리를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감개가 무량하신듯 방금 헤치고나온 밀림속을 다시한번 돌아보고나서 두 일군에게 시선을 보내시였다.

《그때가 1956년 6월초였으니까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에서 흐루쑈브의 비밀보고가 있은지 넉달이 채 못되였을 때였습니다. 당안에서는 최창익, 박창옥과 같은 반당종파분자들이 대국들을 등에 업고 우리 당에 정면으로 도전해나섰던 때이고…》

김정일동지께서는 길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손에 든 굵직한 지팽이로 빽빽하게 자란 새초들을 툭툭 후려치기도 하고 군데군데 물이 고인 밑바닥을 꾹꾹 찔러보기도 하시였다. 도당책임비서와 인민위원장이 그이의 손에서 지팽이를 넘겨받으려고 몇번이나 바투 다가들었지만 그때마다 매번 그이의 만류에 떠밀리워 빈손으로 물러났다. 지팽이질에 후리운 새초밭은 가리마를 탄것처럼 골이 패였는데 일행은 이번에도 밀림속을 헤치고나올 때처럼 그이께서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설수밖에 없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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