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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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는 엄숙한 고요가 깃들어있었다. 창문들에 묵직한 창가림천들이 빈틈없이 드리워져있어 해빛은 더 말할것 없고 바람소리도, 나무들이 설레임소리도, 그 어떤 잡음도 새여들지 않았다.

방열기에서 증기 흐르는 소리만이 이따금 들린다. 밖은 2월의 추위가 맴돌고있었지만 방안은 훈훈했다.

김일성동지께서 의자에 깊숙이 앉으시여 안경을 쓰시고 집필하신 로작의 교정지를 한장한장 검토하고계시였다. 농업협동화이후 다년간의 사색과 탐구, 실천을 통해 얻어쥐신 사회주의하에서의 농촌건설문제해결의 해답을 정립하신 로작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의 초고를 타자쳐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들, 농업부문 지도일군들, 철학박사, 경제전문가 등에게 륜독을 시켰는데 의견들이 더러 제기되였다.

그 의견들이란 주로 이 로작이 주옥같은 명문장들로 이루어져있지만 너무나도 평이하고 겸손하게 서술한 대목들이 있다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연설을 하거나 론문을 집필하실 때 항상 누구나 리해할수 있도록 평이한 인민적인 언어를 쓰시는데 아마도 그들은 맑스와 레닌처럼 복합문장과 난해한 표현을 써야 그 글의 깊이가 보장되고 격이 올라가는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 로작이 우리 나라는 더 말할것 없고 세계적으로 농촌문제해결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심오하게 천명한 고전적문헌인데 제목에서 《우리 나라》를 빼고 그냥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로 하자는 의견도 제기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였다.

《모든 당과 모든 나라에 다 그대로 들어맞는 그런 처방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일부 큰 나라 당이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저들의 립장과 방식을 내리먹이는것을 받아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나라에서의 사회주의농촌건설과정에서 얻은 진리, 경험과 교훈을 내놓으면 그것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나라들에 참고로 될것이다, 이것이 세계혁명에 기여하는것이며 국제주의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부 의견들을 참작하시고 책상에 나앉으시여 교정지에 수정을 가하여 농촌테제의 서론을 완성해나가시였다.

《맑스-레닌주의창시자들은 농민문제, 농업문제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였으며 이 문제의 해결에 깊은 관심을 돌렸다. 특히 레닌은 농민문제를 혁명의 기본적인 전략적문제로 내세웠으며 농촌문제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건설의 가장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인정하였다.》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한 다음에도 농촌문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건설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농민은 로동계급의 믿음직한 동맹자이며 사회주의건설의 강력한 력량이다. 로동계급의 령도밑에 로농동맹을 부단히 강화하여야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건설을 힘있게 추진시킬수 있다.

농업은 공업과 함께 인민경제의 2대부문의 하나이며 그것은 주민들에게 식량을 보장하고 경공업에 원료를 공급한다. 공업을 발전시키고 그 지도적역할을 부단히 높이는 동시에 농촌경리를 공업의 발전에 따라세워야만 전체 인민경제의 빠른 발전을 바랄수 있으며 인민생활의 체계적인 향상을 보장할수 있다.

농민문제, 농업문제는 도시와 농촌간의 차이, 로동계급과 농민간의 계급적차이를 없애야만 종국적으로 해결된다.》

수령님께서 서기를 찾으시였다.

대기하고있던 서기가 소리나지 않게 사이문을 열고 들어왔다.

《타자에 넘기시오.》

수령님께서 여러번 지우고 쓰신 교정지를 서기에게 내주시였다.

어느덧 22시가 지났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임부관과 함께 컴컴한 어둠속을 승용차로 달려 당중앙위원회청사에 도착하시였다. 그곳에서 사업이 기다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김만금과 당중앙위원회 부장을 부르시여 전국모범뜨락또르운전수대회 준비정형을 료해하시였다.

회의는 래일 오전에 평양대극장에서 시작한다. 김만금농업위원회 위원장이 보고를 하고 토론들을 한다. …

오후회의에 수령님께서 참석하시였다. 두손을 높이 들어 박수를 치며 《만세》를 열광적으로 부르는 대표들의 검실검실한 모습들은 볼수록 대견했다.

오후회의 첫 토론을 벽성군농기계작업소 뜨락또르중대장인 처녀운전수가 했다.

《뜨락또르운전수를 언제 시작했소?》

토론이 끝나자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회의장을 진감하며 울리였다.

《1959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처녀뜨락또르중대장은 열정적으로 토론을 하던 그 기백으로 대답을 드리였다.

《그만하면 오래했소. 운전수들이 벌판에서 춥지 않소?》

《춥지 않습니다.》

《왜 춥지 않겠소. 나는 차를 타고다니다가 세우고 운전수들과 이야기하고싶어도 운전수들은 추워하는데 수상은 뜨뜻한 차를 타고다닌다고 할것같아서 차를 세우지 못했소.》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수령님의 말씀이 가슴을 뜨겁게 했던것이다.

《애로가 있으면 제기하오.》

《작업복을 인민군대 땅크병식으로 해주면 좋겠습니다.》

처녀는 뜨락또르운전수답게 씨원씨원했다.

《경공업상동무 왔습니까?》

경공업상이 앞줄에서 일어섰다.

《경공업성에서 책임지고 겨울작업복, 솜모자, 솜신, 장갑을 해결해주시오.》

《알았습니다.》

수령님께서 처녀중대장에게 또 제기하라고 하자 담이 더 커진 그는 《뜨락또르운전보대를 바람을 막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제기드리였다.

《기양뜨락또르공장 기사장동무 왔소?》

회의장에서 기사장이 일어섰다.

《뜨락또르는 자동차처럼 하기 곤난하지만 춥지 않게 해줍시다.》

다음은 순안농기계작업소 중대장 최동익이 연단에 나섰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토론을 주의깊게 들으시며 몇년전 원화협동농장의 포전에서 그를 만나보신 일이 상기되시였다.

최동익운전수는 어느해 봄날 영광스럽게도 수령님을 만나뵙고 뜨락또르운전수라면 누구나 명심해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은데 대해 격조높이 이야기했다. 나사못 하나때문에 차를 세웠던 부끄러움이 운전수로 일하는 전기간 자신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는 그후 차정비를 어떻게 매일 깐지게 했으며 수백개에 달하는 3개월분의 예비부속품을 어떻게 갖추었는가 하는것을 토론하였다.

수령님께서 뜨락또르운전수들이 농촌기계화의 앞장에 설데 대하여 주신 교시를 받들고 논농사에서 김매기와 벼가을, 탈곡작업을 기계화하는데서 성과를 올리였고 모내기도 기계화하려 한다고 한 그의 토론은 참가자들의 인상속에 깊이 남았다.

그는 포전정리와 새땅을 개간하는 전투를 집단의 힘으로 매해 진행하여 수십정보의 논과 밭을 확장한데 대하여 그리고 중대의 뜨락또르대수가 12대, 운전수들은 24명으로 늘어난 큰 집단을 이끌어 기술학습과 기술전습을 어떻게 하여 기술기능이 아직 어린 운전수들의 수준을 높이였으며 뜨락또르작업이 어려워 대오를 리탈하여 자기 집으로 가버린 운전수, 안해가 있는 고향에 갔다가는 보름이나 한달씩 돌아오지 않은 운전수, 작업에 성실하지 못하고 건달을 부리며 농민들로부터 대접이나 받으려 하는 운전수, 술마시고 걸핏하면 싸움질을 하는 운전수들을 어떻게 교양개조했는가 하는데 대하여 생동한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하였다.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대오를 이끌자니 솔선 모든 면에서 앞장서야 했으므로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논두렁에 쓰러지기를 그 몇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속이 뗑하고 어지러울 때 코피를 쏟으면 오히려 시원했던 일… 실로 그의 토론은 커다란 감동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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