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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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금덕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조용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어머니와 오빠가 할수없이 나를 중국에 남겨두고 원동에 들어갔을 때래요. 그때 아버지는 독립군에 들어가 왜놈들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한 머리와 허리때문에 자주 앓군 했는데 글쎄 원동의 그 추위에 얼어서 귀까지 멀기 시작했대요. 그래서 성격이 좀 거칠어졌는데… 엄마는 중국땅에 두고온 이 딸때문에 밤마다 울군 했대요. 잠자리에 누워서는 혼자 눈물을 삼키다가 끝내 소리를 내여 흐느끼군 했대요.
아버지는 술만 한잔 마시면… 어머니의 그 눈물이 보기 싫다면서 화를 내군 했대요.
<당장 눈물을 거두지 못하겠소? 궁상스럽게 울긴 왜 자꾸 울어. 그럴바엔 왜 데리고 오지 못했어?> 하면서 말이예요. 아버지는
가뜩이나 속이 상했던 어머니는 울면서 항변하군 했대요. 아버지가 잘못 들으니 어머니도 목소리를 높였지요.
<난 뭐 오죽하면 그러겠수. 젖먹이를 떼두고온 어미마음이 오죽하겠는가 말이우다.> 하면서…
그러면 아버지는 더 목소리를 높였대요.
<오죽하면 어쨌단 말이요. 울어야 무슨 필요가 있소, 데려오지도 못할바엔…>
<왜 데려오지 못한단 말이우, 난 그 앨 꼭 데려오고야 말겠수다.>
<어떻게 데려온단 말이요?>
<내가 가서 데려오면 되지 않수.>
<못가. 거기가 어디라구… 그따위 생각 싹 걷어치우라구.…>
정말 집안에선 매일 싸움싸우듯 했대요. 그러던 어느날 어머닌 드디여 떠날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어요.》
어머니가 자그마한 보꾸레미를 들고 집을 나서자 아버지가 노발대발을 했다.
《정신나가지 않았어? 거기 가면 일본놈들이 가만둘것같애? 여기 사람들은 가만있구?》
그래도 어머니가 말을 듣지 않고 무작정 대문밖으로 나가려 하자 아버지는 두팔을 벌리고 장승처럼 막아섰다.
《못간다는데…》
어머니는 옆으로 빠져나가려고 애쓰며 고집스레 말했다.
《난 갈래요. 가서 금덕일 데려오겠어요.》
《못데려온다는데… 괜히 가다 죽을라 그래?》
아버지가 앞을 막고 고래고래 소리치자 어머니는 오히려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왜 못가게 해요? 내 딸을 내가 데려오겠다는데 왜 막아요. 이 어미가 가슴터지는걸 보자구 그래요?》
아버지는 울며 대드는 어머니를 성이 나서 쏘아보다가 마침내 옆으로 물러서며 한손으로 밖을 가리켰다.
《좋다. 갈테면 가라. 하지만… 금덕일 데려오지 못하면 이 대문안에 들어서지 못할줄 알라.》
《알겠수다. 나두 금덕일 못데려오면 이 대문안에 들어서질 않겠수다.》
어머니는 휭하니 대문밖으로 빠져나갔다. 안동수가 황황히 따라갔다.
《엄마, 나두 같이 갈래. 같이 가자.》
어머니는 못들은듯 쫓기듯 한참 걸어가다가 산굽인돌이에서 멈춰섰다. 돌아서서 와락 아들을 그러안았다. 울면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애야, 너까지 가면 아버진 어떻게 하니. 아버지가 자꾸 앓으시는데… 너라도 같이 있으면서 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할게 아니냐. 내 인차 갔다오마, 응? 그러지?》
이렇게 되여 그들도 울면서 헤여졌다.
그날 떠나간 어머니는 한달이 가고 두달이 가고…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 돌아오지 못했다.
군부대에서 마사원을 하던 아버지는 화김에 술을 마시고는 애궂은 가슴을 두드리고 그러다가는 머리가 쑤신다면서 자주 자리에 눕기도 했다. 대신 가정의 모든 일은 애어린 안동수가 도맡아해야 하였다. 밥을 하고 땔나무를 해오고… 찬거리를 사오고… 아버지 병시중을 하고…
그렇게 고생하는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날 멀리 하바롭스크쪽에서 사는 외삼촌이 찾아와 아버지에게 권했다.
《애어머닌 잘못된게 분명하우다. 벌써 3년이 되지 않았수. 이제라도 이애에게 새 어머니를 맞아주는게…》
안동수는 울면서 도리질을 했다.
《싫어, 싫어. 난 새어머니 싫어.》
아버지도 노발대발했다.
《그런 말이나 하겠거든 아예 우리 집에 발길을 하지 말게.》
외삼촌은 안동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난 이애가 고생하는게 너무 가슴아파 그러웨다.》
《일없어요. 난 일없어요.》
안동수는 성이 나서 소리쳤다. 더 열성껏 아버지를 간호했다. 강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다 생선국을 끓여올리기도 했다. 남들이 측은해하고 동정하는것이 싫어 늘 웃으며 다녔다. 소학교에도 들어가고 기타도 배웠다.
하지만 저녁이 되여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지을 때면 못견디게 어머니가 그리워 속으로 울군하였다. 아버지와 자기를 두고 떠나간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안동수네가 중앙아시아의 따슈껜뜨주로 이주할 때까지도 돌아오지 못했다. 따슈껜뜨에 터를 잡고 치르치크구역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날 안동수는 얀 기을시에 있는 한 중학교 공청비서로부터 뜻밖의 편지를 받게 되였다. 원동의 뽀뽀고중학교에 다닐 때 한학급에서 공부하던 박꼴랴라는 동무인데 따슈껜뜨로 이주해오면서 헤여졌다가 얼마전에 있은 공청비서강습(그때 안동수도 중학교 공청비서로 선거받았었다.)에 가서 만났었다. 그때 상봉의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었는데 바로 자기네 옆집에 사는 한 어머니가 마을돌이왔다가 그 사진을 보고 이 학생이름이 무엇인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가 구체적으로 묻더라는것이였다.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는것을 보니 심상치 않더라고 했다. 원래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성은 박가이고 이름은 마리아라고 부른다고 했다.
안동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다. 우리 어머니다. 어머니가 어쩌면 그 먼곳에 가있는가. 안동수는 그길로 뻐스를 타고 얀 기을로 달려갔다. 치르치크에서 따슈껜뜨까지 200리, 다시 얀 기을까지 300여리, 거의 500리를 단숨에 달려간 그는 박꼴랴와 함께 그 박마리아가 산다는 집으로 갔다.
그 집터밭에서 한 중년남자가 김을 매고있었다. 박꼴랴가 집주인인 박쎄르게이라고 귀뜀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좀 물어볼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안동수가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한걸음 나서며 인사를 했다.
그 중년남자가 피끗 머리를 돌렸다.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다가 화뜰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 너 초산이가 아니냐?》
그 사람은 뜻밖에도 외삼촌이였다.
외삼촌은 호미를 집어던지고 허둥지둥 달려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