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2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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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저무는 동지섣달의 추위속에서 땅이 얼어붙고 흰눈가루를 걷어안은 하늬바람이 불어쳤다. 전주대가 울고 길가의 뽀뿌라나무들이 우- 우- 소리를 내고있었다.

열두삼천리벌의 이 로상에서 피창린은 이상하게 머리가 뜨거워오고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려 어느 농가에라도 들어가 안정하려고 차를 세우고 얼어붙은 길우에 내려섰다.

넓은 들에 거침없이 불어오는 찬바람에 그는 온몸이 오싹해지며 전률했다. 그 순간 그는 코와 입으로 검붉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바람부는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이 웬일인가. 동행했던 도농촌경리위원회 국장과 운전사는 놀라 소리치며 즉시에 피창린을 차안에 끌어들이고 수건과 급히 찢어낸 내복천쪼박으로 코를 틀어막고 입으로 쏟아지는 피를 씻어내며 출혈을 멈추어보려고 애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좋습니까?》

운전사가 울며 사색이 되여 국장을 쳐다보았다. 국장이 나이도 있고 역시 시야가 넓은 일군인지라 정황처리를 했다.

《빨리 돌아서서 읍병원으로! 제때에 가닿지 못하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전속으로 달려!》

차가 벌써 전속을 놓았는데도 그는 그냥 소리를 쳤다. 후에 운전사가 고백한데 의하면 그는 일생에 이날처럼 차를 고속으로 달려본적이 없었다고 했다. 더우기 그러한 속도로 달리면서 어떻게 되여 아무런 사고도 내지 않았는지, 마주오는 소달구지와 화물차와 어떻게 무난하게 어기였는지 알수 없다고 했다.

군인민병원에서 응급처치를 하여 출혈을 멈추었다. 피가 나올만큼 다 나와서 자연적으로 멎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출혈이 멎었으니 됐다. 원장은 이제는 빨리 평양에 있는 중앙병원으로 이송하는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승용차는 평양으로 달렸다. 군병원 의사가 한명 같이 타고 환자의 머리를 무릎우에 올려놓고 순간순간 상태를 관찰했다. …

김일성동지께서 송수화기를 들고 중앙병원 원장을 찾아 갈리신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출혈이 멎었습니까?》

《출혈은 숙천군병원에서 이미 멎었습니다. 재발방지대책을 취했습니다. 평남도당위원장동지가 최근에 혈압이 높았는데 출혈이후 혈압이 내려갔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비(코)출혈을 함으로써 뇌출혈을 예방했습니다. 물론 비출혈은 심했습니다.》

《의식이 있습니까?》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위기는 지나갔습니다. 아직 혈압이 불안정하고 맥박이 특히 불안정하며 재출혈의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으므로 최선을 다하고있습니다.》

《수고많았습니다. 원상회복이 가능하겠는지 나는 걱정됩니다. 부탁합니다.》

수상님, 할수 있는 모든 대책을 취하겠습니다.》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신 수령님께서는 그사이 압박상태에 있던 가슴이 좀 열리시는듯 큰숨을 내쉬시였다.

사회주의농촌건설을 위한 투쟁에 정력과 지혜를 다하여 자기의 몸을 돌보지 않고 뛰여다니며 헌신적으로 일하던 동지가 한명 쓰러졌다.

지난해말 어느날 그와 사업토의를 하시다가 얼굴색이 좋지 않으니 병원에 가보라고 엄하게 타이르시였건만 그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다.

그가 왜 자기의 병에 대해 등한히 했겠는가. 앓을 짬이 없었을것이다.

서른일곱살에 도당위원장으로 사업을 시작한 젊은 당일군이다. 숙천군당위원장으로서 농업협동화를 위한 투쟁에서 성과를 올린 그를 수령님께서 직접 도당위원장으로 임명해주시였다.

그는 그 믿음과 은덕에 보답하여 드센 손탁으로 사업을 틀어쥐고 완강하게 평남도를 이끌었다. 젊은 탓에 그리고 일욕심이 지나쳐 과격하고 관료주의를 부리는 오유도 여러번 범했다. 세련되지 못하고 세부적인 측면에서 놓치는것이 많았다. 이로부터 수령님으로부터 자주 비판을 받았고 그러는 속에서 부족점을 고치여나갔다.

그는 조건타발을 몰랐고 자기의 건강을 믿었으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수령님께서 주시는 과업을 수행하기 전에는 초소를 떠나지 않았고 잠도 몰랐다. 당의 결정과 지시를 흥정하는 법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진실하고 허심했으며 속을 탁 터놓고 사는 시원스러운 사나이의 성격이 마음에 드시였다. 평남도가 중요하여 수령님께서는 자주 불러 만나시였고 현지지도를 가실 때면 거의 매번 데리고 다니시였다. 그가 아래일군들에게 앞에서는 칭찬이 아니라 요구성을 높여 욕을 해대군 했으나 뒤에서는 그들을 믿었고 평가를 잘해주어 누구도 피창린을 싫다는 사람이 없었다. 벗이 많았다.

(나도 그와 벗이지. 그와는 만날 재미가 있었고 말하기가 좋았다. 우리는 서로 허물없는 사이였지. 이것이 얼마나 좋은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피창린과 자신의 관계를 평가하시였다.

심장활동이 꾸준하고 육체가 젊고 단단한 피창린은 빨리 회복되여갔다. 이제 료양까지 하고나면 다시 사업에 착수할것이다. 이렇게 그는 자신심에 넘쳐있었다. 그러나 의학적판단에 의하여 그는 도당위원장으로 더 사업할수 없다는 선언을 받았다.

당에서는 그가 농업과학원(당시)에 가서 일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러면 이제는 물러서는것인가? 이 피창린의 당일군활동이 너무도 일찌기 끝나고마는군!…

피창린이 퇴원을 하루 앞둔 추운 날에 뜻밖에도 열두삼천협동농장 박기석관리위원장과 농산1작업반 기술지도원 박미순이 찾아왔다.

《아니, 동무들이 어떻게?》

피창린이 놀랐다. 평남도의 일군들이 병문안 왔었고 중앙기관일군들이 왔었고 군당, 군인민위원회, 경영위원회들에서도 왔었지만 농장벌에서, 그것도 먼곳에서 찾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더구나 박기석이는 도당위원장한테서 싫은소리를 제일 많이 들은 사람이다. 그리고 미순이는 또 어떻게 왔는지.

《도당위원장동지, 지금 어떻습니까? 얼굴에서 살이 다 빠지였구만요.》

목메여 말하는 박기석의 눈귀에 물기가 번쩍이였다.

《다 나았소.》

피창린이도 코가 찡해났다. 그는 훌쭉해진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수상동지께서 료양을 가서 몸을 추세우라고 말씀하셨소. 농업과학원 명예부원장으로 가있으라고, 자신의 곁에 가까이 앉혀주셨소.》

병중에 마음이 약해진 그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병문안 온 두사람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쩐지 서글퍼졌다.

《내가 이젠 도당위원장이 아닌데 동무들이 먼곳에 이렇게 찾아와주니 고맙소. 그런데 할일이 많은데 뭣때문에 여기까지 왔소?》

박기석이 대답했다.

《우리는 도당위원장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피창린동지라고 하는 벗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먼곳에서 온것은 아닙니다.

도농촌경영위원회에서 받아갈 물자가 있어서 병문안도 할겸 반화물자동차를 몰고왔는데 미순동무가 이걸 알고 따라왔습니다. 그래 둘이 이렇게 왔습니다. 늦게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어떻든 고맙소.》

그는 박기석이도 고마웠지만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앉아있는 귀엽고 아름다운 처녀가 더 고마웠다.

《미순동무, 이제는 창동리에 뿌리를 깊이 내리였겠지?》

미소를 짓고 미순을 바라보는데 박기석이가 손벽을 딱 쳤다.

《아직 모르십니까? 기계공업성에서 일하던 기계공학전문가가 미순동무에게 편지를 보내여 농촌에 진출할 결심을 말했고 그후 곧 숙천군경영위원회 부장으로 임명되여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미순동무를 찾아왔습니다. 그래 그 유명짜한 인물을 나도 보았는데… 어떻게 그런 뛰여난 지식과 재능을 소유한 미남자를 끌어당겼는지 지금도 의문이 풀리지 않고있습니다.》

귀뿌리까지 빨개진 미순이가 어쩔줄 몰라하는데 피창린의 노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뭐가 의문이란 말이요? 미순이만한 처녀가 어디 있을라구, 엉?》

《찾아보면 더 있겠지요.》

《더 없어!》

이렇게 떠들며 그들은 한바탕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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