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2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3 장

4

(1)

 

라정순은 방철호가 이렇게까지 자기를 속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부상자들을 렬차에 싣고 평양으로 가는 그의 마음은 구름낀 하늘처럼 침침하기만 했다. 중상자들이 있기때문에 상급준의가 가야 한다고 군의소부소장이 말했을 때 처음엔 몹시 당황했었다.

《난 전선에 나가야 하오. 대원들이 저기 로량진에서 피흘리며 싸우는데 분대장이 여기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말이요.》

《저놈들이 내 동무를 죽였소. 난 나가야 하오.》

전방치료대에 실려들어온 부상병들은 정신을 차리는 순간부터 전선으로 다시 나가겠다고 우리안에 갇힌 호랑이들처럼 펄펄 뛰였다. 군관이건 전사건 누구나 같았다.

이런 부상자들이 자기네들을 먼 후방으로 싣고간다는것을 알면 가만 있자고 하지 않을것이다. 자기의 사랑하는 전우들이, 방금까지 함께 담배도 나누어 피우고 우스개소리도 하던 동무들이 옆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것을 본 그들은 좀처럼 흥분을 진정시키지 못했었다.

《너무들 흥분하지 말라구, 마음을 가라앉히라니깐, 불난 강변에 덴 소 날뛰듯 자꾸 펄펄 뛰지만 말구 깊이 생각해보란 말이네. 가령 우리가 강행군으로 하루에 200, 300리 진출해서 적과 육박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세. 과연 동무처럼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병사가 제발로 달릴수 있는가? 동지들에게 부담을 주겠지? 동무처럼 한팔을 부상당한 병사가 육박전을 할수 있는가…》

19시간만에 의식을 회복한 방철호가 급한 위기를 넘기자 배포유해서 옆에서 윽윽대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여유있게 하는 말이였다.

《그럼 부대대장동진 어쩌자는겁니까. 부대대장동지는 복부관통상이니까 움직일수 없다 해도 우린 싸울수 있단 말입니다. 한팔로는 육박전을 못합니까? 난 일없습니다.》

《억지를 쓰지 말라구. 이제 나가야 괜히 전우들과 지휘관들만 더 괴롭힌다니깐…》

방철호가 그렇게 부상자들을 진정시키는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였다.

라정순은 고마운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약간 고개까지 숙여보였었다. 감사의 표시였다.

그런데 그것이 이 라정순이를 얼려넘기기 위한 속임수였을줄이야. 라정순이가 방철호에 대해서는 마음을 놓고 말썽꾸러기들만 관심하는 사이에 그는 편지 한장을 써놓고 감쪽같이 사라진것이다.

부상자들을 후송차에 실을 때에야 그가 없다는것을 안 라정순은 깜짝 놀랐다.

《방철호문화부대대장동지, 부대대장동지!》

라정순이 안타까이 부상자들속을 헤치며 찾는데 한 부상자가 편지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문화부대대장동지가 급한 지시를 받았다면서… 미처 말을 못하고 가는데… 인차 따라서겠다면서…》

놀라서 편지속지를 꺼내보았다.

《미안합니다. 미제와 리승만역도를 남해에 처넣고 인차 따라서겠습니다. 찾을 생각은 마시오. 앞으로 내가 찾아갈테니… 내 손에서 빠질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시오. … 방고집.》

아연해지고말았다.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도 감쪽같이 속일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도 뭐 어쩐다구? 흉칙한 사람…

꽥- 하고 기적소리가 울렸다.

더 지체할수가 없었다. 움씰- 마침내 렬차가 떠났다.

라정순은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신록이 짙은 산과 들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떠날 때 정 어찌할수 없는 부상자들은 진정제를 써서 잠이 들었으니 한동안은 그들의 단련을 받지 않을것이다.

차창가에는 불쑥 방철호의 웃는 얼굴이 나타났다.

《정순동무, 이젠 내가 동무걱정을 안해도 되겠구만.》

《그건 무슨 말씀이예요?》

《난 알고있소. 내 몸엔 동무의 피가 흐르고있다는걸…》

《그게 어쨌단 말이예요?》

《명백하지 않소. 숱한 사람들이 피를 주겠다고 나섰다는데… 동무는 그 모든걸 다 뿌리치고 왜 꼭 자기 피를 나에게 넣어주었겠소.》

《어마어마, 허튼소리 말라요. 동무피가 나의 피와 같은 O형이기때문에 그런거예요.》

《그 숱한 사람중에 O형이 한명도 없었단 말이요?》

라정순은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딱딱 꼬집어 말하는 그가 얄밉기까지 했다. 하긴 그때 O형이라고 웨치는 사람들이 몇명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정순은 자기의 피를 뽑아 철호에게 넣어주었다. 왜 그랬던가?

그것은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정순은 우정 새침해서 말했다.

《그래요. 한명도 없었어요.》

방철호는 만족해서 웃었다.

《그것 보시오. 그 숱한 사람들중에서 우리 둘만이 피가 꼭같지 않나. 그건 무얼 말해주는가.》

《허튼소리 말라요. 자, 주사나 맞자요.》

그렇게 치료를 할 때마다 느물거리던 사람… 그래도 왜서인지 싫지는 않았었다. 그가 느물거릴 때면 새파래져서 주사바늘처럼 꼭꼭 찔러대군 하였지만 그의 호실에서 나왔을적엔 어쩐지 후회비슷한 감정에 잠기군 했었다.

(좀더 따뜻이 대해줄수도 있지 않았을가. 중상자인데…)

라정순은 자석에 쇠붙이 끌리듯 점점 그에게로 마음이 끌리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라정순은 그가 못본척하였을 때에도 사실은 자기의 일거일동을 다 여겨보고있었다는것을 알았다.

그와 말하는 과정에 자연히 알게 되였던것이다. …

라정순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그 동무가… 동통이 보통이 아니겠는데… 과연 참아낼수 있을가?)

문득 팔목에 조금 긁힌걸 가지고도 천연스럽게 군의소로 찾아왔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난 꼭 동무의 치료를 받겠습니다.》 하며 요구하던 그 단호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목소리…

물론 그때는 나를 만나러올 구실로 삼았던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번 부상은 너무도 심하지 않는가.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심한 출혈로 의식을 잃었던 사람… 생명이 위험하여 온 군의소의 시선을 모았던 사람이였다.

이런 그가, 이제 겨우 부상자리가 아물기 시작했는데 어쩌자고 그렇게…

지금 부상자리가 얼마나 아플가. 부상자리가 다시 터지고 내장을 통채로 들어내는듯한 아픔에 배를 그러안고있을지도 모른다. 고통에 이그러진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린다. 예방주사를 놓으러 갔을 땐 주사맞기도 끔찍해서 엄살을 피우던 사람인데…

갑자기 환자들속에서 신음소리들이 커졌다.

라정순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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