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9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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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서운 폭양이 대지를 지져대고있었다. 전쟁의 불구름이 휩쓰는 이 땅을 내려다보던 태양이 뜨겁다는것이 어떤것인가 맛을 한번 보라는듯 때를 놓칠세라 뙤약볕을 냅다 쏟아붓는것같았다.

리영복은 자기의 지휘땅크에 이르자 땅크문을 열다가 살며시 다시 닫고말았다. 철덩어리가 손을 대기만 해도 당장 녹아버릴듯 달아올라서가 아니였다. 한증칸안에 들어선듯 열기가 확확 풍기는 땅크안에서 지금 땅크병들이 굳잠에 들어있어서였다.

가슴이 쩌릿해왔다. 오죽했으면 이 불가마속같은데서도 저렇게 곯아떨어졌겠는가, 식사보다도 잠이 더 귀중한 전사들이다. 벌써 며칠째 잠을 못잤다.

영복은 자기도 피곤이 엄습해옴을 느끼며 슬그머니 땅크에서 내려섰다.

갑자기 어디선가 감자가 익는 구수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옆에 서있는 337호땅크포탑뒤 상면철갑우에서 검은 승무복을 입은 한 땅크병이 쇠그물 달린 묵직한 철문을 쿵소리나게 닫고 땅바닥에 뛰여내렸다. 그의 한손에는 밥통 두개가 들려있었다.

어제 여기 대대후방참모가 올감자를 땅크별로 한배낭씩 내주었다더니 그 감자를 땅크기관의 열로 익힌 모양이다. 그 발동기열로는 강냉이도 찌고 감자와 고구마도 익히고 밥도 지어낸다.

《참모장동지, 감자맛을 좀 보십시오.》

밥통을 든 땅크병이 가까이 다가왔다. 길쑴한 얼굴, 억실억실한 눈, 날이 선 코, 두툼한 입술…

그 운전수였다.

지난해에 경사지극복훈련을 하다 땅크를 굴리고 처벌을 받았던 한계천이였다. 운전수들모두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야겠다면서 처벌제대까지 상정시켰다가 사단장과 문화부사단장의 반대로 끝내 교육용땅크에 보내여 운전교육부터 다시 시키는것으로 락착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하여 그는 단거리 저단운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였다.

운전수에게는 그 역시 참을수 없는 모욕일것이다. 하지만 문화부사단장의 말에 의하면 그는 이 모욕을 기꺼이 감수하고 교육용땅크를 자기 눈동자처럼 애지중지 다루었다. 발동기수명기한이 훨씬 지났지만 저 땅크를 타고 이 불비속을 헤쳐왔다.

문화부사단장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저 한계천이가 소학교에 입학한 첫날 바가지란 조선말 한마디 한것때문에 월사금의 절반이나 되는 10전 벌금을 물게 되였는데 그 10전을 미처 못내여 왜놈교장놈에게서 억울한 매까지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조선사람이 제 나라 말을 해도 벌금을 물고 매를 맞아야 했던 그 나라없던 비극의 력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총대를 들고 일떠선 사람들…

그들은 이 전쟁에서도 실로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고있다. 저 한계천이도 그렇다.

서울로 진격하던 길에서만도 숱한 토목화점들과 자동차들을 파괴하고 한개 중대이상의 유생력량을 소멸하였다. 마포륙군형무소를 해방하고 1 000명의 애국자들을 구원해냈으며 헌병사령부를 점령하였다.

바로 저 땅크를 타고 60° 급경사를 날아내려 한강도하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한 위훈은 땅크력사에 길이길이 전해갈것이다.

(이런 그를 난 어떻게 생각했던가?)

얼굴에 어줍은 표정을 지으며 서있는 순박하기 그지없는 한계천에게 한손을 들었다놓은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리영복은 어쩐지 그에게 죄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방향이 없이 터벅터벅 걸어갔다. 30분간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리영복은 얼마쯤 걸어가다가 반나마 타버린 소나무아래에 털썩 주저앉았다.

생각이 깊었다. 저 한계천이를 잘못 본것처럼 리영복은 자기의 모든 사고방식이 지금껏 류경수를 비롯한 다른 지휘관들과 불협화음을 가져오군 했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문득 부총참모장의 말이 고막을 아프게 때렸다.

《동문 참 이상한 사람이구만. 동무에겐 저 실태가 가슴아프게 생각되지 않소?》

처음 땅크부대가 조직되였을 때였다. 그의 앞에는 다 분해해놓은 땅크부속품들과 얼굴과 손과 군복에 온통 기름칠을 한 두명의 전사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서있었다.

땅크를 배우겠다고 다 뜯었다가 제대로 조립을 못해 쩔쩔매며 돌아갔을 그 광경이 눈에 선했다.

리영복은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들이 이런 엄청난 행동을 하고있을 때 자기는 집에 들어가 장작도 패고 울바자도 손질하면서 안해와 함께 집일을 하고있었던것이다. 엊그제 새집으로 이사를 왔기때문에 남자가 할 일이 많았다. 류경수는 오늘도 하루훈련이 끝나기 바쁘게 어서 들어가 집일을 하라고 등을 떠밀었었다. 부총참모장이 찾는다고 련락이 왔을 때 그는 안해와 함께 저녁상을 마주하고앉아 즐겁게 웃으며 방금 수저를 들려던 참이였다. 밥상옆에는 안해가 소비조합상점에서 특별히 받아온 소주도 한병 있었다.

《지금 저 38°선 이남에선 미제와 리승만괴뢰가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소. 그런데 동무네 부대형편은 어떤가. 부대도 신설이지만 땅크병이 되겠다는 저 동무들은 어제날 망치나 호미를 주무르던 로동자, 농민출신들이요. 땅크는 구경도 못해본 사람들이란 말이요. 게다가 부대장 류경수동무자체가 빨찌산출신이다보니 땅크에선 문외한이나 같소.

땅크에 경험이 있는 사람은 오직 참모장, 동무뿐이요.

믿을 사람은 동무밖에 없단 말이요. 그런데 이건 뭐요.

전사들은 배우겠다고 자기들끼리 이런 일까지 벌려놓고있는데 동무는 한가하게 집에 들어가 집일이나 하고있단 말이요? 실태가 이런데 집으로 발이 떨어지던가. 전문 부대에 나와 산대도 마음을 못놓겠는데…

안타깝지도 않소?

저 땅크병들속에는 사랑하는 처자를 고향에 두고온 동무들도 있소. 그런데도 동무는… 매일…

자기 위치를 지키시오. 참모장동무!》

리영복은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부총참모장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땅크전문가인 나만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량심이 없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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