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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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나날에 만나보시고 낯을 익히였던 농민들이 수령님께서 가꾸시는 시험포전을 지나 지금 그이께로 오고있는것이다.

농민들은 새 옷들을 깨끗히 입고있었지만 그것에 대조되여 옹이 박히고 흙물이 밴 손들과 볕에 타고 들바람에 튼 얼굴들이 더 거칠고 컴컴해보이였다.

조국의 대지를 가꾸는 거칠고 투박한 농민들이 어려워하며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 소박한 모습이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우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그들의 못박힌 손들을 일일이 잡아주시였다.

리규성관리위원장, 전쟁시기 전선에 나가 싸우며 미국놈들도 많이 소멸했고 그 과정에 심한 부상도 입었다.

전후 제대되여 오니 아버지는 모범농민이라고 적들이 학살했고 어머니는 미국놈비행기의 야만적인 폭격으로 석암저수지가 파괴되면서 물난리를 겪을 때 집과 함께 떠내려갔다.

그를 조합에서 따뜻히 보살펴주고 색시까지 얻어주었다. 그는 김덕준의 후임으로 관리위원장이 되였다.

김덕준아바이는 원화마을의 로세대, 실농군이며 토지개혁후 애국미를 많이 나라에 바친 애국농민이다.

전쟁시기 마을의 첫 세포위원장이 놈들에게 학살당한 후 세포위원장사업을 이어받아 했으며 전후 원화협동조합의 첫 관리위원장으로 선거되였다. 지금도 년로한 몸이지만 집에 들어가 앉아있지 않고 리규성을 도와 일하고있다. 농사일에 밝고 근면하고 유순하며 덕이 있어 사람들이 따른다.

농산3작업반장 박영준이는 농사를 자기식으로 지으려 하는 고집이 세고 성실하고 책임적인 실농군이다.

농산1작업반장 전창옥이는 원화리의 첫 세포위원장의 안해이며 전시에 소겨리, 품앗이반을 조직하는데 앞장섰고 녀성보잡이로 위훈을 떨쳤다.

수령님께서 그를 여러번 만나주시였고 그의 아들은 만경대혁명학원에, 딸들은 유자녀학원에 보내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을 긴 나무걸상으로 친히 이끄시여 한사람한사람 앉혀주시였다. 그이의 오른쪽에는 리규성이와 박영준이, 왼쪽에는 김덕준, 전창옥이 앉았다.

그이께서는 시종 반가움을 금치 못해하시며 건강은 어떤가, 탁순화동무는 무엇을 하는가 하고 농민들의 안부를 물어보시고 이어 랭상모판씨뿌리기가 어떻게 되였고 모내기는 언제 시작하려 하는가 등 봄철영농실태를 알아보기도 하시고 지난해에 알곡은 얼마나 생산했고 분배는 얼마했으며 나라에 진 빚은 다 물었는가 등 지난해의 성과도 물어보시였다.

《영준반장동무, 군경영위원회가 나온 다음 어떻소? 달라진것이 있소?》

수령님께서 한뉘를 들에서 일하느라 흙물이 깊이 배인 온몸이 꽛꽛한 영준반장에게 물으시였다.

《그전에는 군인민위원회 지도원들이 내려와서는 저보고 날자를 지키지 않는다고 〈령감은 아직 개인농때 버릇을 못뗐단 말이요.〉하고 꽥꽥 소리쳤는데 지금은 군경영위원회 지도원들이 제가 내놓은 주장을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 그저 싱글싱글 웃기만 합니다.》

수령님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실농군의 창발성을 발휘하도록 하는것입니다.》

김덕준이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농장원들이 좋은 의견을 많이 내여 군경영위원회사업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부관이 원화협동농장 농민들이 수령님께서 잡숫도록 찹쌀과 온실에서 재배한 오이절임도 가져왔다고 말씀드리였다.

《고맙소, 내 그 찹쌀로 떡을 치고 오이절임을 찬으로 해서 잘 먹겠소. 덕준아바이, 고맙습니다.》

《아니올시다. 수상님께서는 저희들 원화협동농장의 농장원이 아니십니까. 응당 받으셔야 할 분배몫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여전히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별로 도와준게 없는데 무슨 분배몫이요?》

《아니올시다. 수상님께서 온 나라의 농사일을 돌보고계시니 사실은 모든 협동농장에서 분배몫을 드려야 하는데 우리 원화협동농장이 과분하게도 모두를 대표하는 영광을 지녔습니다. 수상님께서 우리 협동농장의 명예농장원이 되신 후 매해 가을이면 수상님께 드리는 분배를 돈으로 계산하여 저금했습니다. 작년까지 저금한 저금통장을 오늘 관리위원장이 가지고왔습니다.》

리규성이 벌써 저금통장을 꺼내들고있다가 드리였다.

《보아주십시오.》

수령님께서는 저금통장을 받아보시였다.

《이 많은 돈이 내가 번것이요? 허!… 분배몫을 어떻게 계산했소?》

《우리 농장에서 그해에 제일 많이 분배받은 농장원수준에 맞추었습니다.》

리규성이 대답드리였다.

수령님께서 손을 가로 저으시였다.

《앞으로도 계속 나한테 분배를 주겠으면 농장의 평균수준에서 하시오. 그리고 이 저축금으로는 뜨락또르와 자동차를 사서 농장에서 쓰도록 하시오.》

또다시 수령님의 배려를 받아안게 된 원화마을의 농민들이 일시에 인사를 드리였다.

수상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돈을 좀 남겼다가 부모들을 다 잃은 고아들에게 속옷과 신발을 사주오. 학생복은 다 타입었을테니까…》

남편을 원쑤놈들에게 잃고 세 자식을 힘들게 키워온 전창옥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었다.

수령님께서 그 세 자식들을 모두 학원에 보내주셨는데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두고 지금도 마음쓰시니 눈물이 나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점심식사에 그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같이하시였다.

《진수성찬은 없소.》

그이께서 식탁에 오른 국수그릇을 가리키시였다.

《이것은 언감자국수인데 내가 산에서 싸울 때 유격구의 어머니들이 눌러주었댔소. 그때 너무 맛나게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나는 이 언감자국수를 특식으로 먹소. 자, 듭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수를 맛있게 먹는 농민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였다.

《천천히 많이 드시오.》

《예, 많이 들겠습니다. 국수맛이 별맛입니다.》

《한그릇씩 더 잡수시오.》

《예, 더 먹겠습니다.》

박영준이 서슴없이 대답드리는데 리규성이는 버릇없이 그런다고 좋지 않게 그를 흘끔 쏘아보았다.

수령님께서 빙그레 웃으시였다.

《농장에서 축적은 얼마나 했소?》

리규성이에게 물으시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공동축적금과 사회문화기금, 종자를 내놓고 국가에 농업현물세와 기타 사용료는 얼마나 냈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리규성이 뜨락또르작업료, 관개사용료, 기본건설비(살림집, 탈곡장, 창고 등의 건설비), 비료값을 얼마씩 물었다고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 잠시 생각하시였다.

그러니 농장들에서 쌀을 많이 생산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농장원들에게 돌아가는 분배몫이 적어질수밖에 있는가,

《지난해에 농장이 번 돈에서 분배를 얼마큼 했소?》

《절반정도 분배했습니다.》

수령님께서 안색을 흐리시였다.

《우리 국가가 아직 농촌에 지나친 부담을 주고있소.》

그이께서 볕에 탄 농민들의 얼굴을 측은하게 바라보시였다.

《개인들도 마찬가지요. 누구나 농촌에 갔다가 올 때면 쌀이든 콩이든 하여튼 무엇이든 들고오지 빈손으로 오지 않소. 이것이 다 농촌을 허술하게 보는 관점이요. 농민들을 업신여긴단 말이요.》

그이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제부터는 도시사람들이 농촌에 갈 때 무엇이든 들고나가게 해야 하오. 우리 국가가 농촌을 지원하고 방조하는 사업을 정책화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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