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9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2 장
5
(2)
그에 일일이 대답해주는데 밖에서 또 《계십니까?》하는 소리가 났다.
《에쿠, 이건 또 뭔가?》
화닥닥 도로 이불을 뒤집어썼던 남식은 또 옆에서 삼촌어머니가 쿡쿡 찌르는 바람에 이불을 빠금히 들었다. 순간 남식은 숨이 꺽 막혔다. 이번엔 뻘건 줄이 쭉 내리간 군관바지부터 눈에 확 비쳐들었다.
(진짜 빨갱이가 왔구나. 아까는 여기 죽일것이 없나 렴탐하러 왔댔구 이번엔 진짜빨갱이가… 아이쿠, 큰일났구나.)
남식은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주인님, 계십니까?》
조금 더 높아진 우렁우렁한 목소리.
삼촌어머니가 또 연방 옆구리를 찌른다. 더 성이 나기전에 빨리 나가보라는 요구이다.
남식은 울상이 되였다. 잡아먹을건 돼지라더니… 이젠 영낙없이 죽게 되였구나. 인정사정 없는 삼촌어머니가 야속했다.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 삼촌은 왜 가만있는가.
남식은 이불을 들치고 도살장에 들어가는 소처럼 엉금엉금 마지못해 기여나갔다. 하지만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와닥닥 기여가서 그 붉은 줄이 쭉 간 바지가랭이를 부여잡았다.
《제발 우릴 살려주세요. 우린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예요. 제발 목숨만…》
《빨갱이》는 남식의 두손을 잡아 와락 일쿼세웠다. 잔뜩 겁에 질린 남식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엄한 어조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이게 무슨 추태요. 우리 인민군대는 인민을 위해 싸우는 군대요. 절대로 인민을 해치지 않는단 말이요. 지금 온 서울시민들이 인민군대를 환영하고있는데 당신네들은 이게 뭐요. 시내에 한번 나가보오. 모두들 이젠 해방이 되였다고 그렇게들 기뻐하는데 당신들은… 부끄럽지도 않소? 걱정말고 마음놓고 생활하시오. 당장은 저 경북중학교운동장으로 나오시오. 알겠소?》
그리고는 삑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남식은 얼친것처럼 멍하니 그의 뒤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서있었다. 뭐가 뭔지 떨떨했다.
마침 담장옆으로 한사람이 지나가는것이 보였다. 반갑게도 그는 다음다음집에서 사는 김모라는 친구였다.
《여, 어딜가나?》
그러자 김모는 남식을 돌아보더니 희색이 만면해서 소리쳤다.
《경북중학교운동장에 간다네. 거기서 무슨 연설을 한대. <빨갱이> 가 말이야.》
《<빨갱이>? 그들이 우릴 다 모여놓고 죽이려는게 아니야?》
김모는 자기 팔을 쳐들어보였다. 놀랍게도 그의 팔엔 빨간 천이 완장처럼 동여져있었다.
《이런 빨간 천을 팔에 감든가 머리에 동이면 <빨갱이> 를 지지하는것으로 되기때문에 죽이지 않는대!》
《그래?》
《빨리 가보자구.》
《응… 알겠네. 인차 따라가겠네.》
김모는 황황히 뛰여갔다. 그들뒤로도 몇명이 뛰여가는것이 보였다. 빨간 천을 두른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었다. 없는 사람은 아마 속에 품고갔다가 운동장에 들어설 때 꺼내여 동여매려는 모양이였다. 남식은 얼른 방안에 들어와 사연을 이야기했다. 삼촌이 이불을 확 제끼며 일어나앉았다. 삼촌어머니며 조카애들도 땀에 떠서 꼭 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들 같았다. 아니, 한증탕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처럼 얼굴들이 빨개졌다.
《그런데 갑자기 빨간 천이 어디 있어야지?》
삼촌어머니가 난감해서 중얼거렸다.
《빨간 천을 팔에 둘러야 죽이지 않는다는데… 무슨 수를 써서도 얻어야지.》
삼촌이 짜증내듯 하는 소리였다.
《아- 이거 …》
맏조카애가 이불을 가리켰다. 아닌게아니라 이불깃이 새빨간 천이였다.
삼촌어머니는 와락 이불을 제앞으로 당겼다.
《까짓거 죽고살고 하는판에 이불이 문제예요?》
삼촌어머니는 이불깃을 와락와락 찢어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여보, 자요. 자, 너희들두 하나씩 가져라.》
남식은 자기도 빨간 천쪼박을 하나 받았다. 그런데 자기의것은 삼촌이나 조카애들의것보다 별로 좁아보였다. 막내조카의것도 수태 넓어보이는데…남식은 한숨이 나갔다. 하지만 빨간 천은 빨간 천이니 죽이지야 않겠지.
경북중학교마당에 나가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빨간 천을 팔에 두른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바로 그때 한사람이 연단에 올라섰다. 남식은 눈을 흡떴다. 아까 자기 집에 왔던 그 군관이였다.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우리는 인민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군대입니다. 미안하지만 팔에 두른 그 빨간 천들은 다 거두십시오. 우리는 절대로 인민을 해치지 않습니다. 빨간 천을 두르면 <빨갱이> 편으로 생각하고 죽이지 않는다는건 나쁜놈들이 퍼뜨린 요언입니다.
우리 민족의 영명한
《만세!》하는 함성소리… 함성소리… 《아까운 이불만 못쓰게 만들었구나.》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삼촌어머니가 기가 막혀 제 팔에 둘렀던 빨간 천을 풀어내고있었다.… 문화부군관들은 어이가 없어 허허허 웃었다.
안동수는 심중한 어조로 말했다.
《웃을 일이 아니요. 지금껏 남조선사람들은 모두 그런 악선전을 받으며 살아왔소. 물론 터무니없는 소리여서 대부분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개중에는 남식이와 같은 사람들도 있는거요. 요언을 퍼뜨리는 놈들도 있고…무슨 놈들인들 없겠소. 원쑤놈들이 준동하고있다는것을 잊지 말고 정치사업을 보다 짜고들어야겠소.
모두가
그리고 승리의 희열에 떠서 해이되지 않도록 해야겠소. 승리에 대한 지나친 열광, 자고자대는 분별을 잃게 할수 있소.
우리에게는 제1차 작전을 결속하고 제2차 작전에로 시급히 진입해야 할 중대한 임무가 나서고있소.
긴장성을 늦추지 말고 저 한강을 어떻게 도하하여 계속 공격하겠는가 하는데 머리들을 쓰도록 정치사상교양을 잘해야겠소.》
안동수는 구체적인 조직사업을 하고 문화부군관들을 구분대들로 내보냈다.
안동수가 35련대쪽으로 향하는데 광화문앞거리에 310호땅크가 서있는것이 보였다. 그 주위에 형형색색의 아이들, 어른들이 오구구 모여있는데 뜻밖에도 서창득이가 노래를 배워주고있었다.
《가사는 이상과 같습니다. 시창으로 먼저 해보면… 가만가만, 노래를 정확히 하려면 악보를 잘 알아야 한단 말이요. 그럼 들어보시오. 쏠미화쏠 도 미화쏠쏠미 레도쏠-》
서창득은 시창으로 먼저 한번 하고는 차근차근 노래를 배워주기 시작했다.
장백산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우에
력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아 그 이름도 빛나는
안동수는 가슴이 뭉클해져서 한참이나 서창득을 쳐다보며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