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8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2 장
5
(1)
《우리는 지금 서울 한복판에 들어와있소. 서울시민들은 이때껏 우리에 대한 악선전만을 들어온 사람들이요.》
안동수는 방안에 둘러앉은 문화부군관들을 둘러보며 신중한 어조로 이야기하고있었다. 시내에서 진행할 정치사업방향을 토의하고있는중이였다. 방안에 모여앉은 군관들은 아직 서울을 해방했다는 승리의 열광이 가라앉지 않아 얼굴들이 불깃불깃했다.
《원쑤놈들이 우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악선전을 했는가. 내 철교복구장에 나갔다가 들은건데 어느한 집에서 순간에 아까운 이불을 못쓰게 만든 이야기를 하나 하겠소.》
문화부군관들은 부려단장이 뜻밖에도 이불을 못쓰게 만든 이야기를 하겠다는 바람에 의아해져서 눈들을 껌벅거렸다.
《영등포기관구에 다닌다는 사람의 이야기요. 림남식이라고… 집은 대구에 있는데 삼촌네 집에 올라와 산다는 동무요. 그의 말에 의하면 놈들은 <빨갱이>들은 머리에 뿔이 났다는것, 얼굴이 원숭이밑의 그것처럼 빨갛다는것, 총은 총대옆으로도 구멍이 숭숭 뚫린 별난 총, 기관단총을 말하는거요. 그런 총을 가지고다니는데 방아쇠를 당기면 그옆으로 뚫린 구멍으로도 총탄이 마구 튀여나와 옆에 있는 사람도 막 죽인다는것, <빨갱이>들은 우둔하고 미욱해서 도끼를 차고다니다가 보이는족족 도끼산장해 죽인다는것… 뭐 별의별 소리를 다 했다는거요.
전쟁이 일어나고 어제까지만도 평양으로 돌격해들어간다고 요란스레 떠들어대던 놈들이 포성이 점점 가까와지자 대번에 <빨갱이>들이 쳐나온다. 여기 있다가는 다 죽는다. 빨리 도망치라 하고 떠들어댔소. 남식이네는 황황히 짐을 꾸려들고 한강다리쪽으로 나갔는데 다리가 꽉 메여 건너갈수가 없었다는거요. 총든 놈들은 제놈들이 먼저 건너가겠다고 총을 탕탕 쏘아대고 차탄 놈들은 그놈들대로 먼저 건느겠다고 빵빵 경적을 울려대고… 힘센자들은 그들대로 막 사람을 타고넘고… 아비규환이였소. 그러다가 한강다리가 폭파되는 바람에 할수없이 도로 집으로 들어왔소. 이 무더운 여름철에도 방안에 이불을 들쓰고 숨어있었소. 련탄을 때는 집안에 이불을 쓰고있자니 오죽 땀이 났겠소. 그래도 죽는것보다는 까무라치는게 낫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냥 숨어있었지. 문밖에서 총소리가 빵빵 나는데 밖에만 나갔다간 영낙없이 죽겠으니 말이요.》
문화부군관들은 그 광경이 눈앞에 방불히 떠올라 벙긋벙긋 웃기 시작했다. 한편 그들이 들쓰고있던 이불을 왜 순간에 제손으로 못쓰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한참 총소리가 나고 멎을만 하는데 밖에서 《계십니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림남식은 누군가 해서 이불짬으로 살며시 내다보았다.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인민군보병전사가 보총을 들고 서있었던것이다.
(이크, 우리를 죽이러 왔구나.)
림남식은 자라목이 되여 얼른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다. 가슴이 쿵당쿵당 널뛰듯했다.
《계십니까?》
다시 들리는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
(이크, 성이 났구나.)
옆에서 누구인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삼촌어머니였다. 자기보고 어서 나가보라는 소리였다. 기가 막혔다. 평소부터 자기가 집에 들어와 사는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던 삼촌어머니인데 자꾸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걸 보니 이런 때나 한몫 나가 막으라는것같았다. 할수 없었다. 삼촌네 집에 들어와 얹혀사는 주제에… 게다가 제일 젊지 않았는가. 또 옆구리를 찌른다.
남식은 울상이 되여 벌렁벌렁 기여나갔다. 다행히도 인민군전사가 든 총은 옆으로 구멍이 숭숭 난 따발총(기관단총)이 아니였다. 남식은 문턱을 넘어서면서부터 벌벌 기여가며 머리를 조아렸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우린 아무 죄도 없어요.》
인민군전사는 아연해진 눈길로 남식을 내려다보더니 보총을 어깨에 둘러메였다.
《우린 인민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우린 인민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군대입니다. 미안하지만 물을 좀… 한모금 마실가 해서… 찾아왔습니다.》
례절바른 사람 같았다. 그러고보니 군복은 온통 땀에 젖었고 얼굴과 목덜미도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여있었다.
남식은 그제야 《빨갱이》가 물을 마시려 한다는것을 알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예예, 물을 떠다드립지요. 그저 목숨만 살려주시면 뭐든지 다 드리겠어요.》
남식은 황황히 부엌으로 달려가 사발에 물을 떠가지고 왔다. 그런데 얼마나 손이 후들후들 떨리는지 사발에 물이 절반도 안남았다. 물사발을 올리고 다시 무릎을 꿇고 간절히 올려다보니 전사는 단숨에 물을 쭉 마시고는 벌씬 웃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