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 회)
제 3 장
41
가을갈이가 분주한 때에 뜻밖에도 창원이가 원화협동조합의 뜨락또르작업분조에 나타났다.
운전수들이 점심을 먹고 담배를 한대씩 태우고있는데 한쪽어깨에 손풍금을 걸머지고 손에 트렁크를 든 창원이가 불쑥 합숙마당에 들어서며 《잘들 있었습니까? 창원이가 왔습니다.》하고 모두거리로 인사를 했다.
무거운것을 들고지고 오느라 얼굴에서 땀이 철철 흐른다. 그래도 싱글싱글 웃고있으니 과연 창원이답다. 모두 뗑- 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너 이놈, 창원이로구나.》
채재식이 먼저 소리쳤다.
《창원이지요. 창원이 아니면 누구겠어요?》
그는 한쪽눈을 찡긋했다.
《네가 어떻게 여기 다시 나타났니?》
《재식동지, 내 지금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한그릇 먹여주겠어요?》
창원이가 토방에 손풍금과 트렁크를 내려놓으며 천연스럽게 말했다.
《밥이야 먹어야지. 한데 대학에는 안갔니?》
창원이는 피식 웃으며 합숙부엌으로 가서 점심을 내라고 식모에게 졸랐다.
《저놈이 어떻게 된거야?》
모두 동익이를 쳐다보았다.
《보면 모르겠소? 제자리로 온것 같구만. 점심밥이나 먹게 좀 가만히 놔두오.》
동익은 움쭉 일어서서 자기의 뜨락또르가 서있는데로 갔다. 거기서 그의 교대운전수가 기관을 손질하고있었다.
《진호, 오후에 쉬라구.》
동익이 교대운전수에게 말했다.
밤교대를 하고 오전에 쉬고난 동익은 낮교대를 하는 진호를 오후에 쉬게 하고 자기가 오후작업을 대신하려 했다. 한것은 교대운전수 진호가 허리를 좀 상해서 힘들어하기때문이였다.
《괜찮습니다.》
진호의 대답이다.
《내가 하려는게 아니야. 운전수가 한명 오지 않았나?
그놈을 일시키자는거야. 일하려 왔겠으니 일부터 해야지. 먼길을 오느라 피곤하겠지만 어자어자하고싶지 않아.
다시 돌아온것은 잘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지만 우리가 그걸 내색하면 우쭐할거야. 아까 싱글거리면서 마치 다시 왔다고 장한체 하는 꼴을 보았지?》
동익은 창원이가 밥을 먹고있는 합숙쪽을 실눈을 짓고 바라보았다.
(고운 자식 매로 키우라 했지.)
그는 이렇게 각오하고있었다.
다른 뜨락또르들이 들로 나가고 동익이네만 남았다. 창원이를 기다리는것이였다.
밥을 다 먹은 창원이가 합숙을 나와 동익이에게로 어정어정 다가왔다. 그는 동익이에게 다시 꾸벅하고 인사를 했다.
동익이 랭정하게 말했다.
《창원이, 그간 못한걸 봉창해야지. 진호가 허리를 상해서 그러는데 네가 오후작업을 교대해주라.》
뜻밖의 랭대에 당황해할줄 알았는데 웬걸, 창원이는 히쭉 웃었다.
《예, 알았어요. 못한걸 봉창해야지요.》
그가 선선히 대답하자 동익은 속으로 (이게 창원이지.)하며 오히려 그를 부러워했다.
《진호, 인계하라.》
동익이 지시했다.
《예, 창원동무, 미안하오. 수고해주우.》
진호가 인사를 하자 창원이는 《뭘, 낮잠자기보다야 낫지.》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내가 간 후에 이 뜨락또르에 교대운전수로 왔소?》
《그럼.》
《동익동지의 손탁에서 혼이 났겠소.》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동익은 담배를 피우며 서있었다.
동익이 자기에게 다시 오게 된 사연을 묻지 않는것이 이상하고 그 속심을 알수가 없어 창원이는 조급해났다.
그는 동익이에게 다가갔다.
《동익동지, 내가 온것이 반갑지 않습니까?》
동익의 볕에 탄 컴컴한 얼굴이 무쇠같아보였다. 창원이는 대답을 하지 않는 이전 책임운전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위압을 당해 대번에 주눅이 들었으며 그답지 않게 심중해졌다.
《대학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래 다시 유리공장에 가서 일하댔는데 동익동지가 왔다간 후 가슴 한구석에 박힌 가책이 그냥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설전에 뜻밖에도 혜영동무가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혜영동무는 뜨락또르운전수자격증을 받고 순안군으로 가는 길인데 우정 저한테 들렸다면서 자기에게 운전기술을 배워주려고 애쓴 동익동지와 저를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익동지가 자기를 찾아 양성소에 왔다간 사실과 그때 이 창원이때문에 몹시 마음쓰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량심의 가책때문에 쩔쩔맸습니다. 동익동지도 혜영동무도 얼마나 좋은분들입니까. 이 도피분자때문에 그토록 마음쓰니 제가 어떻게 고마운 동지들을 잊을수 있겠습니까.
결정적인 계기는 직장장동지와의 담화였습니다. 어느날 직장장동지가 나를 사무실로 부르더니 〈창원이, 동무는 뜨락또르양성소를 졸업하고 농촌에서 뜨락또르운전수로 일했다지? 그런데 어떻게 되여 우리 공장에 왔나?〉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몸이 완쾌되였으면 다시 자기 초소로 가는것이 옳지 않을가? 지금 당에서는 농촌에서 로력이 자꾸 빠지는것을
막고 농촌로력을 증가시킬데 대한 문제를 긴급하게 제기하고있다.
당위원회에서 선전대를 보는 지도원도 내가 농촌에 다시 가서 농촌기술혁명도 하고 손풍금을 타면서 농촌문화혁명수행에 앞장서는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여
즉시 떠나지 못하고 지금 오게 된것은 앓는 어머니를 돌봐드리느라 지체했습니다.》
동익은 놀라며 소리쳤다.
《어머니 병이 도졌나? 앓는 어머니를 두고 오면 어떻게 해?》
《어머니는 수술을 하고 아주 좋아졌습니다. 나더로 어서 가라고 독촉하기까지 했습니다.》
《음, 그런가.》
동익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다행이구나.》
창원이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다시 온것이 옳았지요?》
《그럼, 잘했다.
우리 사정을 말하며 수리공 한명을 보내달라고 작업소에 제기하려댔는데 창원이가 왔으니까 재식동무를 수리공으로 돌릴수 있게 됐다.》
동익은 다시 온 창원이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그의 손을 힘껏 잡아주었다.
《그런데 손풍금은 어디서 났니?》
《집에서 가져오지요. 원화협동농장에서 농촌문화혁명을 본때있게 하자는겁니다. 좋지요?》
창원이는 신이 났다.
동익은 첫 교대운전수 창원이가 온것이 반가웠다.
(문화혁명을 본때있게 하자는거다?
그렇지, 여기서도 농촌에 파견된 로동계급이 앞에 서서 이끌어야지.)
동익은 창원이를 기특하게 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