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7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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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밉다면 깨꼬한다고 방철호는 흡족해서 치료받다가 웃으며 이런 희떠운 소리를 했다.

《동무한테서 치료받으니 순간에 다 낫는구만. 됐소. 동무는 내 손에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는걸 잊지 마시오.》 …

그후에는 일체 군의소에 얼씬을 안했다. 군관모임때도 얼핏 만날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방철호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가 찾아올가봐 은근히 두려워하며 슬슬 피해다니던 정순은 정작 그가 본척만척하자 안도의 숨과 함께 그 어떤 반발심같은것이 일어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왜서일가. 왜 그가 본척만척 할가.

이상했다. 그때부터 때없이 그의 얼굴이 불쑥불쑥 떠오르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는 두달이 넘도록 군의소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옛말에 매도 맞으려다 안맞으면 섭섭하다더니 라정순은 오히려 마음이 허전해졌다.

왜 그럴가, 그런 사람과는 대상을 하지 않으려 지금껏 멀리해왔는데… 그렇다면 지금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야겠는데 왜 자꾸 이럴가.…

문득 애육원에서 춘희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총각은 녀자가 피해 달아나려하면 할수록 더 달라붙는다.》던…

정말 그는 내가 멀리하려 하면 할수록 지궂게 달라붙었었다.

헌데 지금은 잠잠하다. 돌아서버린것같다. 그럼 나는 지금 그를 멀리하려 하지 않는단 말인가?

도무지 마음을 가늠할수가 없었다. 밤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잠을 자지 못했다. 자신을 랭철하게 돌이켜보고 심장을 들여다보고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아니다. 난 그를 절대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도 역시 말뿐이였지 진심은 아니였다. 더 생각지 말자.

전쟁이 일어났다.

라정순은 전진하는 부대를 따라 전방치료대로 활동하면서도 1대대소식에 자연 귀를 기울이게 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방철호네 대대에서 선견대로 다섯대가 먼저 서울시내를 뚫고들어갔는데 그들중에 문화부대대장도 있다는것을 알았을 때 왜서인지 코허리가 쩡해지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다섯개사단이 방어한다는데 땅크 다섯대만 들어가다니? 위험하지 않을가? 그 사람은 제가 자진해서 들어갔다지? 하긴 그 고집이야 누가 꺾을라구.…)

문득 그는 자기 생각에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누구도 꺾지 못하는 그 고집을 자기들의 관계와도 련결시켜보게 되였던것이다.

(아이, 내가 왜 이럴가. 그 사람이 뭐라구 주대없이…)

주대없다는것도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그 사람에게 했던 말이였다.

라정순은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왜 자꾸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지 리해가 되지 않았다. 박영욱이와 련결된 그 사람…

불쑥 박영욱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첨기가 어린 징그러운 얼굴… 뭐 내가 허가이조직부위원장의 뭐가 되라고? 생각할수록 역겹고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지금껏 방철호를 멀리해왔던 자기였다.

하지만 전진하는 부대를 따라 라정순이네 전방치료대가 서울에 들어와 세브란스대학부속병원에 자리를 잡았을 때 처음으로 땅크에 실려온 중환자가 방철호이고 자신이 직접 그를 담당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방철호는 치명상이였다.

공화국기를 휘날리며 괴뢰서울《중앙청》으로 돌격하는 고현빈이를 엄호하다가 놈들의 총에 맞았다고 한다. 아니, 방패가 되여 고현빈이 《중앙청》 게양대에 공화국기를 띄울 때까지 놈들을 막고 싸우다 쓰러졌다고 한다.

《고현빈이 장해.… 동문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어.》

고현빈이 달려왔을 때 방철호는 이 한마디를 하고는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괴뢰서울《중앙청》에 공화국기를 휘날리는 력사에 길이 남을 영예로운 자리에 전사를 내세우고 자기는 방패가 되여 그를 지켜준 방철호…

자기네 문화부대대장을 땅크에 싣고 달려와 빨리 우리 부대대장동지를 살려달라고 가슴을 치며 우는 병사들을 보면서 라정순은 눈물이 나오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억대우같이 배짱이 세고 통이 큰 땅크병들이 자기네 문화부대대장의 중상을 두고 그리도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는걸 보니 저절로 눈이 쓰려왔다. 더구나 전방치료대로 땅크까지 와릉와릉 몰고 달려들어올줄이야. …

《준의동지, 무조건 살려주십시오. 무엇이 요구됩니까. 예? 피가 요구되지 않습니까. 자 제걸 뽑아주십시오. 피면 피, 살이면 살… 아무거나 요구하십시오.》

《부대대장동진 우리 형님같은분입니다. 제 피를 넣어주십시오.》

《제 피를 뽑아주십시오.》

수술장앞에서 저저마다 팔을 내대는 땅크병들을 보면서 라정순은 뜨거운것을 삼켰다.

방철호의 피는 O형이였다.

라정순은 서슴없이 자기의 팔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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