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 회)

제 3 장

39

(2)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다시 물으시였다.

《농업상이 전문학교에 입학시켰다는 농촌처녀는 어떻게 된 사연이요?》

김만금이 말씀드리였다.

《제가 그 사연을 좀 알고있는데 왜정때 두 자식을 다 잃은 한룡택이 그 처녀를 보는 순간에 왜놈들에게 잘못된 딸을 생각했고 담화를 해보니 똑똑하고 발전성이 보여 전문학교에 보냈습니다. 이것은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 처녀의 친척되는 사람이 기계공업성에 있는데 그가 저에게 앞으로 처녀가 전문학교를 졸업하면 배치를 잘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는데 농업상은 평남도농촌경리위원회에 그 처녀를 배치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 사실을 현재 농촌로력을 증가시킬데 대한 당정책과 어긋난다고 토론자가 비판한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만. 나도 상동무의 가정형편을 아오.》

수령님께서는 농업전문학교에 입학한 농촌처녀에 대한 이야기는 더 하지 않으시고 김일에게 물으시였다.

《1부수상동무는 한룡택농업상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보오?》

《일을 잘하자고 노력했고 성과도 올렸다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공부는 좀 시켜야 할것 같습니다.》

여름에 김만금과 담화하시면서 한룡택을 당학교에 보내여 공부하고 오도록 해야 될것 같다고 말씀하신바있어 김일성동지께서는 공감의 뜻을 표하시였다.

《최근 농업부문에서 성과가 눈에 뜨이게 나타나고있습니다. 올해에도 혹심한 자연피해를 이겨내고 또다시 대풍작을 이룩하여 알곡 500만t고지를 점령할데 대한 전투적과업을 수행할 확고한 전망을 내다보고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당의 농업정책이 정당했고 당의 로선을 받들고 협동농민들이 전체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원밑에 달성한 빛나는 승리입니다. 또한 농업부문의 일군들이 이 승리에 기여한데 대하여 응당 평가해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한룡택에 대하여 결론을 주시였다.

《농업상은 주관적으로는 일을 잘하려 하지만 현대농업을 지도하는데서는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오. 사람은 자기가 준비된것만큼 능력을 내지.

오늘 사회주의농촌경리에 대한 새로운 농업지도체계가 선 환경에서 농업성의 역할과 책임을 한층 더 높이기 위해서 농업성을 농업위원회로 개편하려고 하는데 그러자면 주체가 확고히 서고 보다 능력있는 일군이 필요하오.

한룡택동무를 당학교에 보내여 공부시키자는 내각 1부수상동무의 의견에 동감이요.》

수령님께서는 보고서의 앞장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중앙당학교에 보내여 공부시킬것, 반일투사에 해당한 대우를 해줄것. 김일성

그이께서 쓰신 글을 읽는 김만금은 눈굽이 화끈해졌다. 두해동안 농업을 지도하면서 애는 썼으나 발전하는 현실에 따라서지 못하는 한룡택을 그이께서는 학습을 통해 사대주의사상, 선진대국에 대한 환상 등을 머리속에서 가셔내고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당정책을 새겨넣도록 해주시려는것이였다.

그렇게 하여 진짜 우리 당이 바라는 그런 일군으로 키우시려는 의도이시였다. 그리고 그가 중국땅에서 일제를 반대하여 장기간 싸운 공적을 평가해주신것이다.

한룡택문제를 결속지으신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지금 로동자, 사무원들에게 흰쌀 절반에 강낭쌀 절반을 공급하고있는데 이것도 지난날보다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요. 지난날에는 수수죽과 피죽이 아니면 보리밥이나 먹고살았소.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만족할수 없소. …

다음해에 농업생산에 계속 력량을 집중하고 농업부문에 대한 국가투자를 더 늘이자고 하오. 그래야 알곡수확고도 더 높일수 있고 올해처럼 모두가 떨쳐나서 악전고투하여 농사하는 현상도 없앨수 있소. 앞으로도 계속 이런 방법으로 농사를 지을수는 없소.》

 

×

 

군협동조합경영위원회가 조직되여 은을 내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뒤따라 도농촌경리위원회를 내오도록 하시였으며 농업성을 농업위원회로 개편하시였다.

어느날 그이께서는 김만금을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만금을 기다리시는동안 집무실안을 거니시면서 생각하시였다.

(지금 지도일군들은 기관, 기업소로력은 다치지 못하고 쩍하면 농촌로력을 동원하고있다.

그들은 공장에서는 생산계획때문에 한사람도 낼수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하지만 농촌로력을 동원하는것은 응당한것으로 여기고 그 바쁜 농사철에도 농촌청년들을 동원하여 길도 닦고 집도 짓는다.

국가계획위원회와 로동성을 비롯한 적지 않은 국가경제기관 지도일군들가운데는 개인농경리를 대하던 버릇이 있다보니 농촌을 발전시키는데 관심이 적으며 농촌을 업수이 여기는 경향이 적지 않다.

농촌경리에 대한 투자도 공업에 비하여 매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있다. 국가계획위원회 일군들은 도시나 공업에 투자하는것은 조금도 아끼지 않으나 농촌에는 길 하나 변변히 닦아주지 않았고 다리도 놓아주지 않았다. 집을 지어주어도 날림식으로 허술하게 지어주고있다.

그러면서도 농민들에게 나라의 식량사정이 어려우니 알곡을 얼마 더 내라, 남새와 과일, 담배를 얼마 더 내라고 내리먹인다. 농민들은 그들이 하란대로 다했다.

여기에 또 농민들에 대한 옳바른 관점을 가지지 못한 일부 수매일군들때문에 농민들은 말썽이 많은 농작물은 잘 심지 않는다. 목화가 그렇다.

농민들을 업수이 여기는 현상은 물자공급에서도 나타나고있다.

로동자들에게는 작업복, 신발을 거저 공급해주고 집도 거저 지어주지만 농민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있다.

농촌에는 영화도 잘 보내주지 않으며 학습할 시간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생각하실수록 가슴이 끓어오르시였다.

김만금이 도착하였다.

《만금동무, 농촌을 홀시하고 업수이 여기는 현상과 투쟁해야 하겠소. 그래서 농촌에 대한 투자도 늘이고 로력을 보충해주는 사업도 진행해야 하겠소.》

수령님께서는 방금 상념속에서 헤아려보시던 문제를 격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그와 관련한 당 및 국가적인 대책이 세워지겠지만 농업부문 지도일군들의 책임과 역할이 더 중해진것만큼 농업성을 개편하여 내온 농업위원회 위원장에 능력있고 경험이 풍부하며 책임성이 높은 일군을 앉혀야 할것이라고 하시였다.

이번에 나라의 경제발전의 요구에 맞게 내각의 기구를 갱신하고 내각성원들을 새로 임명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내각의 부수상들과 상들이 류임하거나 새로 임명되였는데 농업부문에서는 농업위원회 위원장이 아직 결정되지 않고있었다.

《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김만금을 미더웁게 바라보시였다. 《농업위원회 위원장으로 동무를 추천하려 하오.》

김만금이 일어서려는것을 수령님께서 그대로 앉으라고 하시였다.

《아무리 둘러보아야 동무말고 적임자로 될 일군이 없소.

농업위원회 위원장은 우선 농사를 잘 알아야 하는데 만금동무는 안주농업학교 출신이고 다년간 평남도당위원장, 중앙당 부장을 하면서 풍부한 경험도 쌓았고 전개력도 있소.

우리가 래년에도 확고하게 알곡 500만t을 생산하고 나아가서 당 제4차대회가 제시한 높은 목표를 달성하자면 농업위원회의 책임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오.

만금동무를 또다시 농업위원장으로 어려운 일을 맡기는데 조동이 잦아서 미안하지만 어쨌든 다 농업이요.》

김만금이 재차 일어서서 결의를 다지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업위원회의 임무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우선 나라의 농업기술을 발전시킬 대책을 연구하는것이다.

농기계에 대한 연구, 종자와 토지개량, 채종체계, 부침땅면적을 늘이기 위한 자연개조의 전망, 비료와 농약생산의 제고 등의 문제들에 대한 연구사업을 하며 그 성과를 제때에 생산에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 자재와 농기계의 보장대책을 세우며 계획작성에 대한 마지막안을 내고 그 실행에 대한 감독을 해야 한다.

기술자들을 양성하고 과학자들을 길러내는 일을 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농업성은 관리국의 역할을 하여왔는데 생산지도사업은 도농촌경리위원회가 맡아하는것이 좋겠다, 도농촌경리위원회는 지금까지 농업성이 하던 일을 하면 된다.

이렇게 중앙으로부터 도, 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농업지도체계가 정연하게 서고 이 시기부터 농업협동조합을 협동농장으로 부르게 되였다.

…이채로운것은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창민이 내각 부수상으로 임명된것이다. 그가 한룡택을 비판할 때 한 혹독한 내용들은 그자신이 뒤에서 했던 비당적인 말을 한룡택이에게 들씌운것이라는것이 판명되였다. 그는 일군들중에서 약간한 결함이라도 나타나면 그것을 확대하여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자기의 사업상 및 작풍상의 과오를 가리우고 자기의 《결백성》과 《당성》을 시위하려 했으며 력사에 이름을 남기려고 했다. 이러한 정치적야심과 본성은 결코 가리워질수 없었다. 몇년후 그는 부수상에서도 해임되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