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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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일성동지께서 안경을 쓰시고 농업성당위원회 당원들의 당회의정형에 대한 해당부문의 보고서를 읽어내려가시였다.

그 보고서는 회의를 지도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작성한것인데 회의진행정형을 비교적 정확하고 명백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서술하였다. 보고서에 의하면 이번 당총회도 다른 때와 별반 차이없이 흐름이 순조롭게 진행되였다.

성당위원장이 한 보고에서는 올해농사를 결속짓기 위한 투쟁에서 성일군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평가되였으며 특히 상의 사업에 대한 책임성과 전개력이 성전반사업에 미친 긍정적인 역할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지난 기간 성의 일군들과 당원들속에서 나타난 결함들에 대하여 분석하면서 보고서에서는 한룡택동무는 제초기를 많이 생산하여 논김매기를 쉽고 능률적으로 해야 하겠으나 여기서도 인해전술에 의거하려 하였으며 농촌경리의 기계화에 실제적인 대책이 없고 관료주의적작풍을 고치지 못하고있다, 이번의 태풍피해도 사업을 치밀하게 조직하고 미리 대책을 세웠더라면 피해가 훨씬 적었을것이다, 쏘련에서의 집단경리의 파국적실태와 관련하여 당에서 우리의 립장을 명백하게 밝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집단경리의 전도에 대하여 신심을 가지지 못하고있는 일부 《리론가》들이 협동화를 거치지 않고도 공산주의사회에로 넘어갈수 있다고 한 견해에 공감하고있다 등의 내용이 지적되여있었다.

이런 때에 회의에 참가한 김창민부위원장이 성당위원장의 보고가 일반적이며 두리뭉실하고 한룡택의 사상적병집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고 지적한 다음 일장 연설을 하여 회의분위기를 일시에 돌변시켰다.

그는 수술칼을 들이대듯 상의 사상적결함의 《본질》을 파고들었다. 한룡택은 사대주의와 선진대국의 경제력에 대한 환상, 숭배심이 머리에 꽉 차있으며 그러한 사상적병집이 우리 나라 농촌경리의 기계화의 현실태와 그 전망에 대한 허무주의, 패배주의로 표현되였다. 그는 농업성안에 관료주의와 문건놀음을 조장시켰으며 농사를 모르고 기계를 모르니 농촌에 내려가는 경우에도 유람식으로 돌아다니는데 그쳤다. 그는 우리 농촌이 너무 빈약하고 락후하다고 하면서 1961년도에 알곡 100만t증수에 심한 의혹을 나타냈었다. 그는 당의 조직사업과 간부사업에 대하여 불평을 부리였는바 이것은 분명 종파적행위이다. 그를 농업상자리는 물론 당내에도 둘수 없다. 출당철직시켜 저 산골 멀리에 보내서 호미를 쥐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도록 해야 마땅할것이다. …

김창민의 분석과 주장은 농업성 당회의 범위를 벗어나 한 당원의 부정적이고 타협할수 없는 《전체적인 면모》를 발가놓는것으로서 누구보다도 한룡택을 아연케 했고 회의에 참가한 전체 당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원들은 상급당에서 한룡택을 출당철직시키기로 이미 결정짓고 김창민이 파견되여 내려온줄로 알았다. 그리하여 일부 당원들이, 주로 상으로부터 욕을 많이 먹은 당원들이 이때다 하고 호상비판에 뛰여들어 주먹을 흔들며 웨쳤다.

《한룡택동무는 어느한 농촌의 조합원처녀가 똑똑하다고 선발하여 그를 농업전문학교에 입학시켰는데 그것은 좋았지만 졸업을 한 후 평안남도농촌경리위원회에 그 처녀를 받으라고 내리먹인것은 옳지 않다. 농촌로력을 고착시키고 증가할데 대한 당의 정책적의도를 농업을 책임진 농업상부터가 모범적으로 받들고 관철해야 하겠는데 그는 오히려 역행하였다.》

《농업상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상자신부터 농촌에 진출하라.》

이러한 비판내용들만 보아도 말마디들이 선들선들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창민이가 모든 문제를 지나치게 예리화하여 과오를 범한 당원들에 대한 처리에서 언제나 혹독하다는것을 알고계시였다. 혁명적원칙성이 강한것으로 하여 그는 나쁜 놈들을 많이 잡아내기도 하였으나 애매한 사람들에게까지 가혹한 처벌을 내리군 하였다. 《치안대》가담자, 월남자가족들을 일률적으로 취급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 후과를 가시고 당대렬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당의 계급로선과 군중로선에 철저히 의거하여 바로 진행해나가도록 하기 위해 수령님께서는 참으로 힘겨운 걸음을 많이 하시였고 큰 로고를 기울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김창민이가 한룡택을 왜 그렇게 혹독히 비판하고 범죄시하는지 리해가 가지 않으시였다.

김창민자신이 그 어떤 숨겨온 행위가 드러날것같은 위구심을 느끼고 이 기회를 통해 자기의 견결성, 충실성을 시위하자는것이 아닌지?

김일1부수상이 의논할 일이 있다며 찾아왔다.

《마침 잘 왔소.》

수령님께서는 늘 가까이하시며 가장 믿으시는 항일혁명투사의 한 사람인 김일과 한룡택문제를 토론하면 저으기 무거운 마음이 얼마간이라도 가벼워질것이라고 기대하며 반갑게 맞이하시였다.

《이걸 보오.》

그이께서 보고서를 김일에게 주시고 송수화기를 드시고 교환수에게 김만금부장을 찾으라고 하시였다.

《김만금이 전화받습니다.》

《어디 있소?》

《농업상의 방에 와있습니다.》

《그와 담화하던중이요?》

《그렇습니다.》

《나한테로 오시오.》

《알았습니다.》

좀 지나 김만금이 집무실에 나타났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자리에 앉히고 농업상과 무슨 담화를 했는가, 그가 지금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김만금이 말씀드리였다.

《그는 당의 농업정책을 집행하는데서 자기에게 주먹치기, 주관주의가 많았다고, 불리한 자연조건에서도 올해에 풍년을 내다볼수 있게 된것은 수상동지께서 세워주신 새로운 농업지도체계가 은을 낸것과 관련되는것이지 상으로서는 한일이 너무 적다고 하면서 당원들의 비판을 다 접수한다고 했습니다.

단지 김창민부위원장이 위험한 인물이니 경계하도록 수상동지께 꼭 말씀드려달라고 했을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지나간 하나의 사실을 회상하시였다. 허헌이 그이께 박헌영이 나쁜 놈이니 주의하시라고 권고드리였었다.

허헌은 남로당에 있을 때부터 박헌영을 잘 알고있었다.

김만금이 그이의 안색을 살피다가 문의하였다.

《수상동지, 무슨 여의찮은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수령님께서는 김일이 의자에 앉아서 다 읽고 탁자우에 올려놓은 보고서를 김만금에게 주시였다.

김일이 말씀드리였다.

《농업이 힘듭니다.》

《그런데 말이요…》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어떤 사람들은 누구를 비판하는 회의라고 하면 주먹을 내흔들면서 소리를 지르며 웨쳐대고 출당시키라, 내쫒으라 하기를 잘하는데 왜 그렇소?》

《사상투쟁이니까 날카롭게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비판이야 날카롭게 해야지요. 그러나 원칙적이여야 하고 과장하지 말아야 하며 동지를 구원하는 방향에서 해야지요.》

김일성동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김일은 그 말씀을 따랐다.

《옳은 말씀입니다. 한룡택동무가 김창민이한테 걸려들었습니다. 그전에는 그들이 가까웠는데…》

김만금이 보고서에서 눈길을 들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룡택동무가 쏘련에 갔다와서 그 나라의 기계화수준을 굉장하게 떠들어댄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날 저는 그에게 언제가면 큰 나라에 대한 숭배심을 버리겠는가고 다불러댔습니다. 그러자 그는 선진국의 발전상을 숭배하고 말하는것이 뭐가 나쁜가 하면서 〈그래 내가 준 최신전기면도기를 써보니 어떻던가?〉하고 웃었습니다. 그 면도기는 그가 쏘련에서 사가지고 와선 저한테 기념으로 준것이였습니다.

한룡택동무는 리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입니다. 방금 저와 한 담화에서 그는 행정사업이 더 힘들다는것과 특히 농업을 지도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사업인가를 통절히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상동지의 신임에 보답하려고 가능한껏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욕망에 비해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이 엄청나게 많고 능력은 딸리지 하니까 욕설밖에 더 나가겠습니까?》

수령님께서는 김일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였다.

《김만금동무와 한룡택동무는 만나면 싸우는 사람들인데 내앞에서는 늘 만금동무가 룡택동무를 옹호한단 말이요. 편견이 아니요? 만금동무.》

《저는 김창민부위원장의 발언을 접수할수 없습니다.》

김만금이 즉시에 대답드리였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것을 용서하십시오. 한룡택동무는 결함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있지만 한두해사이에는 어렵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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