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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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룡택은 고무비옷모자를 당겨쓰고 승용차의 문을 열고 나갔다. 비줄기가 그의 고무비옷을 두들겨댔고 바람이 그를 한쪽으로 밀어냈다. 그는 고무장화를 신은 발로 진흙탕물을 첨벙첨벙 밟으며 홰불이 타오르고있는 언덕의 기슭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행정국장은 종팔에게 뜨락또르를 동원하여 승용차를 큰길까지 끌어내다놓고 기다리라는 지시를 주고 첨벙첨벙 흙탕물을 밟으며 상을 따라갔다.

그 등성이의 기슭에는 넓은 강냉이밭이 펼쳐져있었다. 비바람속에서 뚝을 쌓고 도랑을 넓히는 조합원들과 웬 군인들인지 군민이 같이 삽질을 하고있는것이 어둠속에서 언뜻언뜻 보였다.

도랑으로는 물이 콸콸 흘러내리는데 밭가녁이 파헤쳐지면서 넘어진 강냉이대들이 흙물에 섞이여 떠내려오고있었다.

《저쪽부터 막으라구. 밭이 계속 패우면서 깎이고있지 않는가!》

누군가 소리쳤다.

《젠장 흙이 어디 있나?》

《도랑바닥을 파라구, 도랑도 넓히구 좀 좋아?》

《애순이 엄마, 차라리 입으나마나하고 거치장스럽기만한 비옷을 할 벗어버리지.》

《그럼 뭐 홀딱 젖은 꼴을 남정들이 보게?》

《보면 어때?》

《그 알량한 모양을 눈이 퀭해서 보느라구 일손이 떠질가봐 그래.》

《호호호…》

《아이쿠, 미끄러진다!》

첨벙!

《야, 군인동무들이 왔으니 다행이다!》

비바람에 솨-솨- 설레이는 강냉이밭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리는데까지 접근했으나 한룡택은 비물을 함뿍 먹은 진흙탕에 고무장화가 푹 빠져드는 바람에 더 나아갈수 없었다.

《더 가볼 필요가 있을가요? 관리위원회로 찾아갑시다.》

행정국장이 권고했다.

하긴 그 말이 옳아. 더 가본들 무슨 소용이랴. 작업에 지장이나 줄것이다.

《그러기요. 관리위원회에 가서 전반을 료해하자구.》

겨우 장화를 신은 발을 흙탕속에서 뽑아 길을 향해 몇걸음 옮겨가는데 전지불을 켜든 사람 몇이 마주 걸어왔다.

그들은 상과 국장을 전지불로 비치며 《웬 사람들이요? 누구요?》하고 썩썩 갈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농업상동지요.》 행정국장이 불빛속에 들어난 고무비옷을 입은 사람을 가리켰다.

순간 전지불이 꺼졌다. 아마 불을 비치는것이 실례된다고 느낀 모양이다.

다시 캄캄한 어둠속에서 강냉이들이 설렁이는 소리, 비내리는 소리만이 커갔다.

《아, 그렇습니까? 제 여기 관리위원장입니다.

상동지가 이 비바람속에서 어떻게 오십니까?》

《관리위원회로 갑시다.》

행정국장이 말했다.

관리위원장이 비쳐주는 손전지불빛을 따라 일행은 걸어갔다. 저벅저벅 말없이 걸었다. 비옷을 입었어도 속으로 흠뻑 젖었고 장화안에도 물이 들어갔다. 진흙이 달라붙어 천근만근 무거운 장화를 옮겨짚기가 힘들었다. 기진맥진해진 한룡택이 멈추어섰다.

《관리위원회에 가서는 뭘하겠소? 이 꼴로 어디 들어갈데가 있겠소? 여기서 잠간 이야기하고 돌아서겠소.》

《예, 그렇게 합시다.》

관리위원장도 물참봉이 된 상을 몹시 측은하게 보고있었다. 그는 가까이에 있는 작업반선전실로 상을 안내했다.

《동무들이 수고하오. 언제부터 피해방지작업을 하고있소?》

한룡택이 선전실에 선채로 꺼져가는 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장마가 오기때문에 이전부터 조금씩 해오다가 그제부터 총동원했습니다. 조합은 더 말할것 없고 우리 리에 사는 주민은 모두 떨쳐나왔습니다. 그래도 작업량이 많아 쩔쩔 매는데 뜻밖에도 군대동무들이 오늘 도착했습니다.》

《나도 군인동무들을 보았소. 이 부근에 주둔하고있는 부대요?》

《그렇습니다. 수상님께서 전연부대들을 제외한 모든 군부대들에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하달하셨다고 합니다.

시급히 주둔지역의 협동조합에 진출하여 태풍피해를 막는 전투에 진입하도록 긴급출동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아!》

한룡택은 이 탄성밖에 더 말을 못했다.

그는 자기들의 실책을 수령님께서 바로잡아주시는것이라고 가슴아프게 느끼며 자책감에서 헤여나올수 없었다.

행정국장이 관리위원장에게 피해입은 논과 밭면적, 전투정형과 난관, 애로, 필요되는것 등을 알아보고 상과 같이 조합을 떠났다.

큰길에서 차체와 바퀴를 깨끗이 청소한 승용차에 올랐다.

온몸을 우들우들 떨며 한룡택은 겨우 승용차에 올라 뒤좌석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차가 달리자 상은 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야.》

그는 집에 도착하여 안해의 도움으로 옷을 죄다 벗고 깨끗하게 씻은 후 독한 술을 한고뿌 마시고 덜덜 떨리는 몸을 덥힌 후 성에다 전화를 했다.

종합부장이 현상황을 보고했다.

숙천군 창동리 열두삼천협동조합의 간석지논에 쌓은 해안방조제가 터져 바다물이 쓸어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룡택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가 두해전 8월 농업상으로 임명될 당시 지금처럼 들이닥친 태풍을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두해가 지나 그 재난이 지금 반복되고있는것이다. 어떤 심상치 않은 조짐이 느껴졌다.

태풍은 황해남도와 평안남도, 강원도의 일부 지역을 휩쓸며 재난의 흔적을 남기고 동해로 빠져나갔다.

일부 지역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도로가 막히고 농가들이 묻히였으며 철길의 로반이 패워 렬차운행에 지장을 주었다.

변전소사고로 전력공급이 중단되고 일부 공장들에서 생산이 중단되였다. 농경지들이 파괴되고 다 익은 곡식들이 흙물에 잠겼다.

그러나 이러한 심한 피해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민이 태풍피해방지전투에 떨쳐나섰고 특히는 인민군대들이 긴급출동하여 그들을 지원하였기때문에 피해의 확대를 크게 막았다. 이어 피해복구전투가 시작되였다.

농업부문에서의 태풍피해와 피해방지전투정형에 대한 보고가 중앙당 해당부서로부터 김일성동지께 제출되였다.

농업상에 대한 자료를 읽으시며 수령님께서는 김만금에게 물으시였다.

《농업상이 감기에 걸렸다던데 어떻소?》

《치료받고 많이 나았습니다. 나이도 많은 농업상이 앞장서서 피해지역으로 나간 사실은 성일군들에게 좋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침묵하시였다.

《그랬을거요.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는것같소.》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태풍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미리 세우지 않고있다가 태풍이 코앞에 들이닥치니 바빠나서 현장으로 나갔다는거요.》

김만금이 말씀드렸다.

《성의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있으며 농업상 자신도 자기의 실책을 깊이 반성하고있습니다.

그는 농업상으로 임명해주신 수상동지의 믿음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고있다고 당세포회의에서 자기 비판을 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만금이가 집무실에서 나간 후에도 그 문제를 가지고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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