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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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정부전투가 시작되기전에 벌써 공산군이 의정부-서울도로를 차단하였댔으니 남쪽엔 지금 인민군정예부대들이 전개하고 서울공격준비를 하고있을것이다.

여기서 견지하다가 기회를 보아 인민군전선부대들의 뒤통수를 치면서 전선을 넘든가 미군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탄약창고는 굴을 파고 그안에 들여앉혔기때문에 입구만 잘 봉쇄하면 그럭저럭 한동안은 견딜수 있었다.

황영걸은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인민군대의 동태를 알아보도록 사병들을 시내에 들여보냈다. 인민군땅크들은 아직 시내에 있을것같았다. 지금껏 전투를 하면서 여기까지 공격해온 땅크들이니 반드시 연유와 포탄들을 보충해야 할것이기때문이였다. 인민군후방차들이 인차 따라설것이다.

인민군유조차만 덮치면 그 무서운 땅크들은 모두 헌 파철덩이보다도 못한 무용지물이 되고마는것이다.

그래서 나갔던 사병들이 체포해온것이 바로 이 애어린 취사원처녀였다. 눈에 달이 뜬 사병들은 계집을 데리고 놀든 취사일을 시키든 쓸모가 있겠기에 잡아왔다는것이였다.

황영걸은 자기의 타산이 옳았다는것을 느꼈다. 저 가마마차가 있으면 틀림없이 포탄차며 유조차도 이 의정부시로 올것이였다. 서울이 가까운곳이니 공산군의 큰 지휘부가 자리잡을수도 있었다. (실지 그날로 인민군전방지휘소가 의정부로 자리를 옮기고있었었다.)

황영걸은 빨리 동굴밖에 참호들을 파고 반땅크지뢰들을 매몰하게 하였다. 방어준비부터 철저히 갖추고 활동을 개시하려는것이였다. 두시간동안 정신나가도록 다그쳐서 공병작업을 끝내자 사병들은 모두 노그라지고말았었다.

낮에 알콜을 마신데다가 하루종일 전투에 시달리고 늦도록 공병작업까지 하다나니 지칠대로 지쳤던것이다.

황영걸이도 팔을 붕대로 감은채 탄약상자우에 앉아 잠간 눈을 붙이였었다. 그러다 갑자기 석유내가 코를 찔러 눈을 떠보니 그 쪼꼬만 애어린 처녀가 탄약상자들에 석유를 치고 자기 신발을 벗어 만든 불뭉치에 불을 달고있었던것이다.

황영걸은 기겁을 하며 황황히 두손을 내저었다.

《이보라구 체네. 그러단 다 죽어. 너 이 굴안에 탄약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알기나 하니. 이 산이 통채로 날아난다. 그러면 다 죽어. 제발 그 불을 꺼라. 응? 그러면 너를 곱게 보낼테다. 정말이다. 내 목숨을 걸고 담보한다.》

그 처녀는 흥- 하고 코소리를 내였다.

《목숨을 걸고 담보한다구? 개수작말아. 네따위 목숨이 몇푼어치나 나간다구. 퉤 더럽다. 뭐 미군이 들어올 때까지 어찌겠다구. 그 유조차들이 오면 어떻게 한다구?… 흥 그렇게 해서 우리를 다시 노예로 만들겠단말이지?》

《아이쿠. 네가 다 들었구나. 이보라구 체네…》

《넉두리는 그만해. 네놈들은 우리를 너무도 모르고있어. 너같은 매국노들이 아무리 날뛰여두 우릴 당하지 못해.》

처녀는 불뭉치를 들고 한걸음 탄약상자쪽으로 다가섰다.

《가만!》

황영걸은 너무도 급해 미친듯이 외마디소리를 내질렀다. 금시 대폭발이 일어날것같아 와들와들 떨었다. 뒤로 무엇이 나갔는지 바지가 축축해졌다. 저건 도대체 어떤 녀자인가. 이 산승냥이들처럼 금시 잡아먹을듯 으르렁대며 펄떡펄떡 뛰는 결사대원들에게 홀로 잡혀와 있으면서도 자기 운명보다 자기네 인민군대를 먼저 생각하며 자그마한 위험이라도 생길세라 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저 처녀.

황영걸에겐 이 순간 불뭉치를 들고 서있는 저 체소하고 아련한 처녀가 이 《한국》의 명줄을 거머쥔 거인처럼 여겨졌다.

그 거인이 문득 황영걸을 돌아보며 또박또박 찍어 말했다.

《네놈들이 미국놈, 일본놈 다 업구 들어와두 절대로 우릴 이기지 못해. 그건 우리에게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기때문이야.

네놈들이 영원히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는것을 죽어도 똑똑히 알고죽어라.》

그제야 잠에서 깨여난 결사대사병들은 사연을 알고 기절초풍해서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한 절반 미쳐버린 황영걸은 정신없이 총을 쏘아댔다. 처녀의 왼쪽가슴에서 피가 솟구쳐올랐다. 처녀는 비칠거리며 목청껏 웨쳤다.

김일성장군 만세!》

처녀는 불뭉치를 탄약상자쪽으로 던졌다.

순간에 불이 확 달렸다. 무섭게 확 퍼져 온 굴안이 불천지로 변했다.

황영걸은 악- 비명을 지르며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이젠 끝장이구나.》

무서운 대폭발이 일어나기 전 짧은 한순간, 문득 그의 눈앞에 떠오른것은 집을 떠나올 때 아버지가 부어주던 그 술이였다. 술잔에 넘쳐나도록 남실거리던 술…

남들이 수원, 대전으로 피난을 간다고, 우리도 빨리 떠나자고 울며 보채는 서울댁에게 황병태는 이렇게 말했었다.

《난 어디에도 안간다. 봐라. 우리 영걸이가 이 서울을 지키자구 결사대로 나가지 않느냐.

영걸아, 자, 전장에 나갈 때는 예로부터 술을 마셨다더라.

이 아비가 너에게 처음으로 부어주는 술이니 부디 공을 세우고 돌아오너라. 이제 너희들이 저 의정부만 막으면… 인차 미국어른들이 들어온다더라. 자, 어서 마셔라!》

그 아버지는 지금 어쩌고있을가?

형보다 나이가 두살이나 아래인 그 이붓어머니 서울댁은…

그러나 황영걸은 미처 그 생각을 이어댈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퍼런 그러면서도 강렬한 섬광이 번쩍 하는 순간 그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처럼 요란한 폭음도 의식하지 못했다. 동굴에 있던 100여놈의 결사대원들과 함께 그 몸뚱이 자체가 산산이 부서져 영원히 묻혀버렸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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