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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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벽에는 꽃을 그린 정물화와 푸른 파도우를 나는 갈매기를 그린 유화가 걸려있었다.

《좀 기다리면 령감이 들어온다구. 점심시간이니까.

나더러 처녀가 심심해하지 않게 잘 돌봐주며 기다리게 하라고 했어. 꼭 할말이 있대…

나는 점심상을 차려야 하겠는데, 처녀는 피아노칠줄 아는가?》

미순이는 손풍금은 잘 탔지만 피아노의 건반은 아직 눌러보지 못했다.

미순이의 대답을 듣고 부인은 《손풍금을 탈줄 알면 피아노도 친다구. 원리는 같으니까. 그럼 그사이에 피아노를 치며 시간을 보내라구.》하고 말했다.

《아니, 저도 같이 부엌일을…》

부인을 따라 미순이도 일어섰다.

《이러지 마오. 별로 하는것두 없다구.》

부인이 극력 말리였다.

미순이는 하는수없이 피아노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씌우개천을 벗기고 번들번들하는 진한 밤색의 피아노를 처음으로 쓰다듬어보고 뚜껑을 열었다. 하얀 건반을 손가락으로 누르니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바로 그때 집마당에 승용차가 들어와 멈추어서는 소리가 울렸다. 미순이는 뚜껑을 재빨리 닫고 돌아섰다.

연한 닭알색 여름양복을 입고 흰 중절모를 쓴 농업상이 현관문을 열며 전실로 들어왔다.

《미순이가 와있구만. 오래 기다렸나?》

상의 표정은 덤덤했으나 목소리에서는 반가움이 느껴졌다. 그는 쉽게 감동되거나 표정의 변화가 다양한 사람이 아니였다.

《좀전에 왔습니다.》

《음, 앉소.》

한룡택은 모자를 벗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실내옷으로 갈아입고 세면장으로 가서 푸푸거리며 땀에 젖은 얼굴과 가슴과 뒤잔등을 씻었다.

부인이 찬물을 끼얹어주고 물기를 닦으라고 수건을 내주었다.

시원하게 씻고난 상은 다시 전실로 나와 미순이에게 어째서 서있기만 하는가고 하면서 식탁으로 데리고 갔다.

선풍기가 돌고있어 한결 서늘했다.

그사이에 음식들이 상우에 차려졌다. 한룡택은 미순이를 자기옆의 걸상에 앉히였다.

《미순이, 그간 공부하느라 수고했다.

전문학교에 붙여놓고 한번도 가보지 못했고 집에도 졸업하게 되여서야 이렇듯 초청했으니 욕을 했겠지.》

《아닙니다. 저는 저를 전문학교에 보내주신것만 해도 과분하게 여기고있습니다.》

미순이가 어려워하며 대답했다.

《오늘이 명절인데 뭐 차린게 없구나.》

《저녁에 명절을 쇱시다.》

부인이 말했다.

《미순이도 저녁때까지 있으라구.》

《아닙니다. 저는 가야 합니다.》

《그래, 시험은 잘 쳤나?》

한룡택이 물었다. 그는 벌써 술기운이 돌아 얼굴이 붉어졌다.

《그저…》

《허, 내 알아보니 전과목 5점이더라.

미순이, 내가 오늘 너를 부른것은 배치지가 확정되였기때문에 알려주자는것이다. 그리고 내 언제 너를 또 보겠니?

그래 원화마을에서 한번 보았을뿐이여서 오늘 다시 한번 만나보고싶어서 데려오라구 했다.》

《고맙습니다.》

《어서 들어라.》

《예, 먹습니다.》

부인이 국수는 좀 있다 들여온다고 했다.

《내가 무슨 자랑은 아닌데 너를 평남도농촌경리위원회에 배치하기로 했다.》

한룡택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평양에서 살아봐라.》

미순이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이것은 상상밖의 소식이였다.

《고맙습니다. 상동지!

그러나 저에게는 너무 과분합니다.》

한룡택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네 마음은 알만하다. 그러나 너의 장래발전을 위해 농전졸업생으로서는 가장 좋은 자리에 앉혀주는것이다.》

《저는 사실 그런 배치까지는…》

《아, 됐다. 나는 이제부터 휴식을 좀 해야 오후 일정을 보장할수 있다. 명절날이여서 행사들이 있기도 하거니와 나는 늘 일이 바빠서 편하게 쉬게 되지 않는구나.

일할줄 모르는 사람이 휴식도 못하고 늘 바삐 뛴다는데 내가 그 꼴이다.

나에게 나라의 농업을 맡겨주신 수상님의 믿음은 크신데 내가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고있다.

나는 어떤 때는 내가 과연 농업상을 계속할수 있을가 하는 위구심에 잠기군 한다. 허허… 내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나.》

《아닙니다. 큰일을 하시는데 왜 걱정이 없으시겠습니까.》

《허허… 네가 나를 위안하는구나. 그럼 나는 먼저 일어서겠다.

미순이, 우리 집을 조금도 어려워하지 말고 식사를 많이 해라. 기숙사식사야 뻔하지…

나는 아들도 딸도 없다. 해방전 서울에서 아들은 굶어죽고 사랑하는 딸은 왜놈들이 불속에 던져죽였다. 그래서 너를 딸처럼 생각하는거다.

원화협동조합에서 너를 보는 첫 순간에 〈내 딸이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더구나. 그래 너를 농전에 넣어준거다.》

그는 눈빛이 흐려지고있었다.

《배치지에 가서 일을 잘하거라. 그리고 이 집에 자주 들려다구.

오늘 와주어서 고맙다.》

그는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자기 방으로 갔다.

그를 자리에 눕히고 돌아오는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해있었다. 미순이도 눈굽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식사를 하며 미순이는 부인으로부터 왜정때에 일가친척이 참화를 겪었던 일이며 어린 딸을 중국인 로인부부에게 맡기고 팔로군에 들어가 싸우던 일, 해방후 조국에 돌아와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하며 행복하게 살던 일 등 가정사를 들었다.

나중에 부인이 지금 부러운것이 없는데 자식이 없어 몹시 적적하다고 하면서 그래서 양딸을 두고싶다고 했더니 령감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원화마을에 갔다가 미순이를 본 후 마음에 들어 전문학교에도 보내주고 오늘 집에도 불러주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부인은 자기도 령감도 미순이를 양딸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순이는 붉어지는 얼굴을 숙이며 《저는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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