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6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1 장
5
(2)
해방전에 정말 일제놈들이 얼마나 못살게 굴었어.
언젠가 어머닌 앓는 외할아버지에게 약을 가지고 가다가 하얀 옷에 온통 얼룩덜룩 검은 물감칠만 해가지고 도로 왔댔지. 일본순사놈들이 깨끗한 흰옷차림을 했다고 다리목에 검은 물감통을 쥐고서서 마구 물감칠을 해주더라고… 그 얼룩덜룩 보기 흉하게 된 옷을 입고는 차마 외할아버지에게 갈수가 없어 그냥 돌아와 얼마나 분해하였던가.
저 쪽발이놈들의 씨를 말리기 전에는 죽어두 눈을 감지 못하겠다구.…
아침마다 왜왕놈의 궁성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을 안했다구 왜놈감독한테서 매맞은건 또 몇번인가. 쩍하면 때리고 발로 차고 쇠꼬챙이로 마구 찌르고 군도를 휘두르고… 하지만 어디에 하소할데도 없었다. 서용숙일 잡아다가는 또 어떻게 했는가.
정말이야. 절대로 다시는 그렇게 살수 없어. 그래서 나는 더욱 이를 사려물고 훈련해온거야. 힘들 때마다 그 모든게 다 나라를 지키는 일과 련관되여있다는것을 생각하군 했지.
사실 그때는 짬시간마다 그림을 그리느라 진짜 진땀을 흘렸댔어. 그림을 그린다는게 그렇게 힘든줄이야.
하지만 끝내 해냈었지. 중대에 가서 생활하면서도 문화부려단장동지가 준 학습장을 그림으로 꽉 채웠댔어. 부려단장동지는 그 학습장을 한장한장 펼쳐보면서 얼마나 좋아했던가!
《덤비는 성미가 좀 나아졌는가? 땅크기관에 대해선 눈감고도 펄 날겠지?》
그래, 부려단장동진 이 덤비는 성미를 고쳐주면서 동시에 땅크기관에 대해 더 정확히 파악하라고 그런 과업을 주었던거야.
그래 좀 생각해보자. 변속간이 안에서 어떤 치차들과 맞물렸던가.… 가만가만… 그렇지, 그걸 고정시키면…
아, 부려단장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기련은 황황히 발동을 껐다. 땅크밖으로 막 뛰쳐나가려는데 포장이 눈이 둥그래서 물었다.
《여, 발동은 왜 꺼?》
기련은 그제야 자기가 또 덤빈다는것을 느끼고 허- 하고 웃었다. 지레대와 망치를 찾아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생각이 났네.… 땅크를 변속이 없이 몰자는거야. 변속장치를 2단에 고정시켜서 말이네.…》
《제길, 그만큼 덤비지 말라는데… 또 덤볐다치는군.…》
포장이 기련이를 따라나왔다. 따따따따- 귀청을 째는 기관총소리가 순간에 그들을 덮쳤다. 쾅- 쾅- 포소리도 울린다.
중대장과 장탄수는 땅크옆에 엎드려 적들에게 맹렬하게 사격하고있었다. 적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져내렸다.
기련은 땅크뒤로 돌아가 상면철갑을 열어제꼈다.
뜨거운 열기가 확 풍겨올라왔다. 디젤유냄새, 모빌유냄새…
기련은 포장과 함께 변속장치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빨리… 좀더 빨리… 손등이 무엇에 긁혔는지 피가 흐른다. 그러나 언제 그걸 돌볼새도 없다. 적탄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도 손을 멈출수가 없다. 빨리… 더 빨리… 조금만 더…
변속장치를 3단에 놓고 고정시키면 빠르긴 하나 가파로운 고개나 장애물을 만나면 곤난할것이다. 1단에 고정시키면 기운이 세서 언덕이나 습지를 가기는 좋으나 속도가 뜰것이다.
전기련은 그 중간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망치와 지레대로 변속장치를 2단에 고정시켰다.
《됐어. 빨리 안으로!》
그들은 땅크안으로 뛰여들어왔다.
부르릉 발동이 걸렸다.
전기련은 환성을 올렸다.
《됐네. 또 본때를 보여주자구!》
국기가 기련을 돌아보며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북청! 괜찮아. 이거야, 이거…》
발동소리가 울리자 밖에서 엄호하던 중대장과 장탄수가 땅크안으로 들어왔다.
《땅크 앞으롯!》
중대장의 힘찬 구령소리.
땅크는 성난 사자마냥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령마루에 올라서자 적자동차와 포들이 갈팡질팡하는것이 보였다.
기련은 조종간을 틀어쥔채 놈들속으로 육박해들어갔다.
자동차들이며 포들이며 적병놈들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개며 돌진했다.
이놈들아, 어디 죽어봐라. 용서치 않을테다. 뭐, 우리 나라를 또 어떻게 해보겠다구?… 어림도 없다. 다시는 서용숙이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을것이다.
용숙이 날 믿으라구. 내 용숙의 원한을 다 풀 때까지 이 땅크에서 내리지 않을테야.
전기련은 자기의 결심대로 한생을 땅크와 함께 살았다.
포천과 의정부해방전투, 서울을 해방하기 위한 전투에서 각종 포 11문과 적화점 10개, 수많은 적병을 소멸함으로써 1950년 7월 15일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
그후에도 그는 금강도하전투와 수원해방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들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웠고 소대장, 중대장을 거쳐 땅크부대장, 땅크국장으로까지 자라났다. 어제날의 평범한 철공소소년로동자가 나라의 기둥으로 거인으로 자란것이다.
하지만 그는 서용숙이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