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5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1 장

5

(1)

 

저녁이면 서용숙이와 만날수 있으리라는 문화부려단장의 말을 듣고 흥분된 마음으로 상봉의 시각을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대대가 포천시내를 먼저 떠나는 바람에 전기련은 기회를 마련할수가 없었다.

적들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말고 공격을 해야 했던것이다. 용숙의 원한을 천배로 만배로 풀어주고 떳떳이 만나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다.

포탄과 각종 총탄들, 연료를 보충하고 땅크정비를 끝낸 전기련이네는 또다시 남진의 길에 올랐다.

비온 뒤여서 날씨는 몹시도 무더웠다. 무쇠철갑안은 마치도 찌는 가마속처럼 확확 달아올랐다. 조종간을 틀어쥔 전기련은 목덜미로, 등골로 땀이 도랑물처럼 흘러내리는것을 느꼈지만 언제 수건으로 땀을 훔쳐낼 사이도 없었다.

제7사 9련대 보병들과의 협동작전으로 의정부를 점령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빨리 저 멀리 보이는 축성령을 넘어야 하는것이다.

빨리… 좀더 빨리…

송우리를 지나고 무봉리도 지났다. 길바닥은 물론 그 좌우에서 쾅쾅 포탄이 터져오르고 불먼지가 타래쳐올랐다. 적의 수도사단이 종심 15리에 걸쳐 완강히 방어하고있었다. 곳곳에 반땅크포들이 도사리고앉아 미친듯이 불을 토하고 도로에서는 지뢰들이 탕탕 튀여올랐다. 그속으로 땅크들은 시꺼먼 배기가스를 맹렬히 내뿜으며 기세차게 돌진해나갔다. 화끈 달아오른 길바닥을 마구 물어뜯으며 축성령기슭에 가붙었다. 선두에서 내달리던 전기련이네 땅크가 갑자기 멈춰섰다.

령길로 들어서는 적자동차를 발견하고 포탄을 한방 먹였는데 자동차적재함에서 불길이 연거퍼 일어나고 폭음도 련달아 들려왔기때문이였다.

중대장은 무선으로 급히 련대지휘부를 찾았다.

《적자동차에서 지뢰들이 계속 터지고있다. 령길에도 지뢰를 매설한것같다. 어떻게 하라는가?》

공병정찰조를 보내겠으니 대기하라는 지시가 왔다.

전기련은 속이 끓어올라 안절부절하며 시창으로 앞도로를 쏘아보았다. 령길의 여기저기에 포탄이며 기총탄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져내리고있었다.

전기련은 아래입술을 꽉 깨물며 오른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북 훔쳤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는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꽝꽝- 따르륵, 따르륵-

령길의 좌우 릉선들에서 적의 포들과 기관총들이 더욱 미친듯이 불을 뿜어댔다. 축성령이 통채로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적들은 서울의 관문이라고도 할수 있는 의정부를 지키기 위해 직사포들과 중무기들을 집중배치해놓고 피를 물고 발악하고있는것이다.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검붉은 화염이 하늘을 덮었다. 해마저 뿌옇게 보였다.

《중대장동지, 공병정찰조가 도착했습니다.》

앞을 쏘아보던 전기련이 땅크앞에 와 엎드리는 공병정찰조를 알아보고 반색해서 소리쳤다.

《알겠소. 땅크포, 좌측릉선의 포진지들을 소멸할것. 나는 기관총으로 우측의 적들을 제압하겠다. 운전수는 지뢰를 해제하는데 따라 전진을 계속할것!》

땅크포가 성나서 요동을 치고 기관총이 울부짖었다.

적들도 기련이네 땅크쪽에 화력을 집중하고있었다. 아군의 기도를 눈치챈것 같았다. 적의 화력이 너무 세서 공병정찰조가 도저히 전진을 못했다.

전기련은 속에서 불이 일어 견딜수가 없었다.

중대장이 안타까이 보고했다.

《공병정찰조가 전진을 못하고있다. 적의 화력이 너무 심하다.》

땅크통신모에서 잠시 징-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 류경수의 웅근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나왔다.

《기관총사격으로 지뢰를 터치며 전진하라!》

그러자 중대장의 입에서 거의 환성에 가까운 소리가 튀여나왔다.

《알았다. 기관총사격으로 지뢰를 터치며 전진하겠다.》

전기련은 가슴이 터질듯 벅차올랐다.

그것이다. 이놈들 어디 한번 본때를 봐라.

전기련은 연료공급답판을 힘있게 밟았다.

부르릉-

땅크가 용을 쓰며 자욱을 뗐다. 기관총탄이 뚜루룩 뚜루룩 쉴새없이 령길을 누볐다. 쾅쾅쾅 지뢰들이 연방 터져올랐다. 땅크는 시뻘건 화염과 뽀얀 먼지구름을 헤치며 령길을 치달아올랐다. 한굽이 또 한굽이…

땅크가 네번째 굽이에 올랐을 때 갑자기 발밑에서 쾅하는 소리가 났다. 매캐한 연기가 땅크안으로 확 밀려들었다. 지뢰가 폭발한것 같았다. 기총탄이 맞히지 못한 지뢰가 있었던 모양이다.

기련은 숨이 꺽 막혀와 맹렬히 기침을 깇어대면서도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땅크가 움직이지 않는것이다. 조종간을 재차 내밀었으나 여전히 움직일줄 모른다. 발동기소리는 여전한데…

기련은 황황히 계기들을 살폈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아- 하는 소리가 튀여나갔다. 변속간이 지뢰파편에 끊어져나간것이다. 기련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을 느꼈다. 옆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기련은 고개를 획 돌렸다.

《창수, 어떻게 됐소?》

부운전수가 두손으로 무릎을 꽉 쥔채 얼굴을 이그러뜨리며 아픔을 참는듯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지뢰가 터지면서 파편들이 땅크밑에 있는 비상문을 뚫고들어와 부운전수의 다리와 변속간을 쳤던것이다.

《중대장동지! 창수동무가 부상입니다.》

중대장이 기침을 짖으며 명령했다.

《포장동무, 빨리 창수를 치료하시오.》

《알았습니다. 》

《땅크는 왜 섰소?》

《…》

기련은 미처 대답을 못했다. 고장났다는 말이 차마 나가지 않았다. 중대장이 모든것을 헤아려본듯 빠른 어조로 명령했다.

《시간이 급하오. 빠른 시간내에 땅크의 고장을 무조건 퇴치하시오. 나와 장탄수동무는 동무들을 엄호하겠소.》

중대장이 경기관총을 빼들고 땅크밖으로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전기련이 미처 대답할새도 없었다.

《장탄수는 날 따랏!》

적들이 쏘아대는 총탄이 땅크철갑에 와서 맞는 소리가 뚜루룩뚜루룩 들려왔다. 적들이 땅크에 대고 화력을 집중하는 모양이였다. 기련은 당황했다. 어떻게 땅크고장을 퇴치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운전수의 다리에 붕대를 감아주던 포장이 어쩔바를 몰라하는 기련을 쳐다보며 물었다.

《고칠 방도가 생각 안나?》

기련은 왼손으로 턱을 마구 문다지며 울상을 지었다.

포장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덤비지 말구… 잘 생각해보라구.…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니…》

기련은 활랑거리는 가슴을 붙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침착하자. 어떻게 하든 방도를 찾아야 해.

주력종대의 선두땅크가 주저앉으면 그야말로 야단이다. 부대의 진격로를 개척해야 할 우리가 아닌가. 더우기 우리가 전투진입시간을 보장 못하면…의정부해방전투가 힘들어지고… 침착하자. 우리를 선두땅크로 내세워준 문화부려단장이 이렇게 주저앉은 나를 보면 얼마나 실망할텐가.

문득 안동수문화부려단장의 웃는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동무가 덤베북청이라지? 허허허, 덤빈다구 구대원이 빨리 되는건 아니지… 그렇지 않나. 왜 덤비는가? 그건 땅크한테 기련이가 끌려다니기때문이야. 조금만 어떻게 되여도 이크, 이거 야단났구나 하면 자기도 모르게 덤비게 되거던, 내가 이 땅크의 주인이다 하구 배심을 부리면서 턱 틀고앉아 모든걸 내려다보면서 운전해보라구. 내가 이쯤한것에 쩔쩔 맨단 말이야 하구 생각해보라니깐.…》

땅크를 굴려먹고 후방부로 쫓겨갔을 때 화목장에까지 찾아와 힘을 주면서 하던 말이다. 그날밤에는 함께 자면서 그림을 그릴데 대한 과업을 주었댔지. 덤비는 이 성미를 고쳐주려고…

《이건 단순히 덤비는 성미를 고치기 위한것만은 아니야. 훌륭한 땅크병이 되기 위한거야. 조국앞에 지닌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거구…

그 사명이란 뭔가. 이 조국을 지키는것이 아닌가.… 기련이는 철공소에서 소년로동을 할 때 아침마다 <황국신민서사> 를 외우지 않는다구 왜놈공장주한테서 죽도록 매만 맞구 석달씩이나 임금도 못받았다면서?… 조선사람이라구 얼마나 천대와 멸시를 받았어. 다시는 그렇게 살수야 없지 않아. 그러자면 훌륭한 땅크병이 되여야 하구… 그러자면 덤비는 성미도 고쳐야 하오.… 알겠소?》

그래, 다시는 그렇게 살수가 없어.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