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1 장

3

 

땅크는 성난 사자처럼 돌진하고있었다. 벌써 반공격으로 38°선을 넘어 진격하고있는 보병들을 따라앞서고 이제는 놈들의 꽁무니를 바싹 물었다. 드디여 저앞에 적들이 보인다.

우측은 고지절벽이고 좌측은 강이여서 도망치던 적들이 길에만 몰려 와글거린다. 놈들은 제놈들의 뒤에 땅크가 바싹 따라오는것을 알면서도 제편이 맞을가봐서인지 감히 포사격도 못하고있었다.

《네따위놈들이… 감히 우릴 어째보겠다구… 어림도 없다. 이놈들아…》

전기련은 부득부득 이를 갈며 조종간을 힘껏 내밀었다. 적의 자동차를 와지끈지끈 깔아뭉개며 돌진해나갔다. 적병들이 혼비백산해서 강물로 내리뛰는것이 보인다. 드디여 적들이 포사격을 가해왔다. 제놈들을 죽이더라도 인민군대의 질풍같은 공격을 막아보자는 심산이였다. 땅크의 앞뒤 여기저기에서 불구름이 타래쳐올랐다. 나무들이 불타고 풀이 불타고 바위들도 불타고있었다. 쾅, 콰광- 포탄터지는 소리. 땅 따땅땅땅- 그칠줄 모르는 총소리… 피유 피유- 파편들이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휘파람소리.

전기련은 불이 펄펄 이는 눈길로 시창밖을 쏘아보았다. 입술은 푸들푸들 떨었다.

《용서치 않을테다. 단 한놈도…》

38°선을 넘기전에 안동수문화부려단장이 연설하던 목소리가 가슴을 쾅쾅 울린다. 그래 장군님께선 놈들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다고 하셨다지. 이 얼마나 힘이 생기는 말씀이신가. 아무렴, 우린 조선사람이야.

장군님의 전사이고… 그런데 네놈들은 미국놈의 발바닥이나 핥으면서두 뭐 우리를 노예로 만들겠다구? 이 멍청이들아, 이 미국놈발싸개같은 놈들아, 내가 다시 노예가 될줄아느냐.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어.

《앞릉선 좌측에 적화점 발견!》

땅크지휘관인 중대장의 격한 목소리가 쩡 귀청을 짼다. 좋다. 해볼테면 해보자. 이런 때 어떻게 땅크를 몰아야 사격의 명중률을 높이는지 전기련은 너무도 잘 알고있다. 이제는 땅크도 제 몸의 한부분처럼 자유자재로 몰수 있는 전기련이다. 적들의 총탄들이 땅크철갑을 사정없이 두드려댄다. 포장이 어느새 포신을 돌려 화점을 겨눈다.

《조준 끝!》

《발사!》

땅크가 푸들 몸을 떤다. 적화점이 하늘공중으로 날아나는것이 보이는 순간 또다시 귀청을 두드리는 중대장의 목소리.

《우측에 포진지! 철갑탄 한발!…》

《알았다. 철갑탄 한발!》

장탄수의 열띤 목소리 《장탄끝!》, 《조준 끝!》

《발사!》

《명중!》

마치도 서로 말끝을 이을내기라도 하는것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조준하고 장탄하고 쏘아댄다. 적들의 직사포와 기관포, 기관총들이 엿가락처럼 휘여 폭풍에 날려간다.

땅크는 련속 불을 토하며 전진했다. 적들의 감시소도 박산이 났다.

문득 귀전엔 용숙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러분… 저는 6년전 어렸을 때… 왜놈들에게 잡혀…》

아, 용숙이네가 어쩌면 그렇게…

웃음도 많고 꿈도 곱던 네가 어떻게…

용숙의 그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서 용숙이는 지금껏 자기를 숨겨왔구나. 그런것도 모르고 난 어쨌던가. 어느날엔 식당으로 찾아갔댔지?

《동무, 나좀 보자구. 동무 나 모르겠어? 동무 진짜 서용숙이가 아니야?》

《어마! 그거 무슨 소리예요? 동문… 누구예요?》

잔뜩 겁에 질려있던 서용숙이…

서용숙은 그때를 가슴아프게 돌이켜보며 용서를 빌었었다.

《그때 난 기련오빠가 찾아왔을 때도… 마치도 처음보는 사람처럼… 기련오빠… 절 용서해주세요.》

아니, 아니, 용서 못해. 그게 무슨 용숙이 네탓이야. 나라를 빼앗긴 탓이지… 그런데 넌… 아… 그러면서도 그걸 숨기자니 얼마나 가슴아팠겠어.

《여러분, 전 아직 집에도 못갔습니다. 갈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다는것을 알면서도… 그처럼 아빠엄마가 보고싶어도… 여러분, 나라를 빼앗기면 이렇게 됩니다. 이 원쑤를 갚아주세요. 이 나라를 지켜주세요.》

그래, 나라를 지켜야 해. 우리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이 나라를… 목숨보다 귀중한 이 나라를…

《전방 1km지점, 적 자동차 발견!》

김국기포장의 거쉰듯한 목소리.

전기련은 날카로운 눈길로 앞을 쏘아보았다.

거의 1000여m되는 전방에 숱한 자동차들이 나타났다.

30여대는 되는것 같았다. 자동차들은 꽁무니에 저마다 포들을 달고있었다. 화력지원을 목적으로 방어종심에서부터 기여나오는 적포병들이 분명했다.

적들도 마주오는 땅크들을 발견했는지 황급히 차를 멈춰세우고 포를 떼낸다 방향을 돌린다 하면서 사격준비를 서둘렀다.

《우리뒤에서 보병전우들이 돌진해오고있다. 적포를 깔아뭉개며 계속 전진하자.》

중대장의 단호한 목소리.

전기련은 연료공급답판을 지그시 밟으며 속도를 높였다.

땅크가 맹렬히 돌진하자 달팽이처럼 산릉선에 달라붙어있던 적보병들이 집중사격을 가해왔다. 땅크철갑에 총탄맞는 소리가 우박소리처럼 요란스레 들렸다. 매캐한 화약내가 땅크안으로 휩쓸어들었다.

땅크들은 불비속을 뚫고 계속 전진했다. 적아의 거리는 점점 가까와졌다. 700m, 500m …

급해맞은 적포병들은 황급히 자동차를 오른쪽으로 몰아 도로에서 벗어나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들은 20m도 나가지 못하고 비에 젖은 습한 땅에 빠지고말았다. 적들은 개미새끼처럼 새까맣게 매여달려 포를 돌려세우려고 헤덤벼쳤다.

이런 때 포장이 쏜 첫 포탄이 놈들의 선두차를 박산냈다. 뒤이어 둘째, 셋째 포탄이 놈들의 자동차들을 들부셨다.

《이놈들, 어디 맛 좀 봐라.》

전기련은 속도를 더욱 높였다. 선두차들이 박산나자 뒤차에서 내려 부랴부랴 설치해놓은 적포진지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적들이 포를 쏴대려고 서두르는것이 보인다. 벌써 시뻘건 불덩이들이 눈앞에서 펑끗거렸다.

땅크는 적포진지로 맹렬히 육박했다. 성난 사자처럼 땅크가 덮쳐들자 혼비백산한 놈들이 포를 버리고 풀방구리에서 풍겨난 쥐새끼들처럼 날 살려라 도망친다. 땅크는 와지끈지끈 포진지를 깔아뭉갰다. 그뒤로 도망치려고 부릉거리는 포차를 전속으로 달려나가며 받아넘겼다. 그 포차의 잔해를 깔아뭉개며 넘어서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삼단같은 불길이 땅크안으로 확 쓸어들었다. 적의 포탄에 맞은것이다.

전기련은 쇠몽둥이같은것이 가슴을 후려치는듯한 감을 받으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니, 그것은 한순간이였다. 전기련은 가물가물거리는 의식속에 중대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부운전수는 운전수위치로! 포장동무와 장탄수동문 빨리 운전수를 치료할것!》

아니… 안돼… 전기련은 고개를 흔들었다. 가물거리는 의식을 가까스로 회복했다. 누구인가 뒤에서 량겨드랑이로 팔을 들이밀어 일쿼세우려고 한다. 부운전수자리에 앉았던 김창수가 운전수자리로 바꿔 앉으려고 몸을 일으키는것이 보인다.

전기련은 완강히 도리머리를 했다.

《이걸 놓소. 난… 운전할수 있소.》

중대장이 성난듯 소리쳤다.

《왜그래, 치료를 받아야 하잖겠어?》

《일없습니다. 중대장동지! 난 일없습니다.》

전기련은 겨드랑이로 들어온 팔을 뿌리치고 몸을 앞으로 숙이며 조종간을 잡았다.

《좋소. 앞으로!》 중대장의 격한 목소리.

땅크는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전기련은 입을 앙다물고 땅크를 몰면서 적포탄에 파손된 감시경을 새것과 바꾸었다.

적들의 포진지와 중기관총화점들에서 불줄기가 맹렬히 쏟아져나왔다. 포탄과 총탄들이 우박처럼 주위에 떨어졌다.

중대장은 기민하게 적정을 살피면서 사격을 명령했고 포장은 좌우측에 나타나는 적화점들을 단방에 까부시군 했다. 조준경에 눈을 대고 방향기와 고저기를 틀어잡은 포장의 얼굴에서도 목표가 불타기도 전에 어느새 새 포탄을 장탄해놓는 장탄수의 얼굴에서도 팥죽같은 땀이 좔좔 흘러내렸다.

전기련이 이발을 사려물고 땅크를 몰아나가는데 갑자기 입에 무엇인가 와닿았다. 얼핏 돌아보니 부운전수가 건빵을 입에 밀어넣어주며 빙긋 웃고있었다. 방금전까지도 반전차수류탄과 인화병을 들고 덤벼드는 적들에게 기관총으로 명중사격을 퍼붓던 그였다. 그러고보니 배가 출출한것이 점심을 건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련은 《음-》하며 고갤 끄덕여보였다. 건빵을 씹자니 또다시 서용숙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서용숙이도 전진하는 이 대오의 어디엔가 있을것이다. 땅크병들의 식사를 보장하기 위해 뛰여다닐것이다.

전기련은 이제야 서용숙이가 왜 군대식당에 들어왔는지, 왜 웃음을 잃고 그렇게 용감해졌는지 똑똑히 알게 되는듯싶었다.

언제면 그를 만나게 될가…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가, 문화부려단장동지는 서용숙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잘 알것이다. 그를 만나면 꼭 물어보리라. 아니, 물어보지 않아도 그는 대줄것이다.

이제 포천을 점령하면…

땅크는 포천시가를 향하여 맹렬히 돌진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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