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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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실은 자기도 오늘은 무대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제일 앞줄에 서야 한다. 아무리 노래를 못한다고 해도 막무가내이다. 후방참모가 제먼저 노래를 하면서 따라부르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합창대렬에 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늘은 정녕 사람들앞에 나서야 한단 말인가. 다른 방법은 없을가?

금실은 또 한숨을 내쉬였다.

이때 갑자기 지휘부쪽에서 비상소집나팔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일가하며 문을 열어본 로복실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낮에 노래판정하자니까 일찍 훈련을 하려는가봐. 우린 빨리 밥이나 짓자구. 훈련하고 와서 푸짐히 식사를 하게…》

그는 흥얼흥얼 코노래를 하며 고사리볶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금실은 배추를 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소금물에 담그었다.

다 다듬은 배추뿌리며 떡잎들을 삼태기에 담아들고 부엌문을 나서려는데 후방참모가 뛰여왔다.

《어딜 가오?》

《저, 이걸 버리려고…》

금실은 삼태기를 들어보였다.

《가만있소. 전쟁이요, 전쟁이 일어났소.》

《예?》

금실은 와뜰 놀라며 삼태기를 든채 그대로 굳어졌다. 뻥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전쟁… 이라니요?》

《미제가 전쟁을 일으켰단말이요. 이 새벽에… 빨리 밥을 서둘러야겠소. 인차 부대가 출동한다는데… 이동식사라도 시켜야지.…》

금실은 자기도 모르게 으시시 몸을 떨었다. 속에서 주먹같은것이 불쑥 목구멍을 치받치며 일떠섰다.

전쟁이라니… 그럼 끝내 놈들이?…

지금까지 강연회며 회의때마다 미국놈들이 우리 나라를 먹어보려고 미쳐날뛴다는 말들을 많이 들어온 금실이였다. 여기에 왜놈들이 합세해나선다고 했었다.

불쑥 눈앞에는 갈팡질팡 들판으로 달려가던 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우로 기관총을 쏘아대는 왜놈들. 피흘리며 쓰러지던 녀성들…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왜놈들… 그런데 이제는 또 미국놈들이?…

아니, 안된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겨선 안된다. 다시는 그런 치욕스런 노예살이를 반복할수 없어. 미국놈과 일본놈은 다 같고같은 우리의 원쑤놈들이다. 또다시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는 놈들…

두주먹이 푸들푸들 떨렸다.

가슴이 숨가쁘게 오르내린다.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될수 없다. 다시는 그렇게 살수 없다.

《금실이 뭘해?》

로복실이 재촉하는 말을 듣고서야 금실은 서둘러 오물을 버리러 오물장으로 향했다.

 

안동수는 놀랐다.

자기앞에 서있는 서용숙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 처녀가 정말 자기를 희생할 각오를 하였단말인가.

《정말, 정말 그 일을 공개하겠소?》

안동수는 약간 떨리는듯한 소리로 물었다.

서용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나 입술을 꽉 깨물었는지 아래입술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음…》

안동수는 가슴이 저며내는듯 아파났다. 이 처녀가 그 사실을 공개할 결심을 하기까지 오죽 생각을 많이 하였으랴싶었다.

치가 떨렸다.

그렇다. 나라를 빼앗기면 또다시 그렇게 된다. 그래서 이 처녀도 마침내 지금껏 숨겨오던 지난날을 만사람앞에 공개하기로 결심한것이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숱한 녀성들이 또다시 자기처럼 되겠기에… 사람들에게 조국을 지킬 그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주기 위해서…

안동수는 온몸이 격동되는것을 느꼈다.

끝내 자기를 이겨낸 이 처녀, 미더운 이 처녀의 정신적인 성장이 온몸의 피를 끓게 했다.

안동수는 그의 손을 꽉 잡아쥐였다. 목이 꽉 메여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

 

아침식사가 끝나자 안동수는 려단장을 찾아갔다.

《저에게 한 5분간 시간을 주겠습니까?》

《5분?》

류경수는 의아한 눈길로 안동수를 쳐다보았다.

《정치사업때문입니까? 모여앉자면 시간이 걸리겠는데…》

《무선으로라도 합시다. 공개무선으로!》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모든 련대, 대대, 중대들과 무선련계가 이루어졌다.

식사를 하고 땅크에 올라 출발준비를 갖추던 땅크병들은 땅크통신모수화기에서 결전에로 부르는 문화부려단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었다.

《땅크병동지들! 지금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어리석게도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전쟁의 불을 질렀습니다.

100여년전부터 우리 나라를 삼켜보려고 피눈이 되여 날뛰던 미제침략자들이, 남조선땅을 미국양키들에게 통채로 섬겨바친 리승만매국역도가, 지난날 우리를 억누르며 피땀을 빨아먹던 저 계급적원쑤들이 우리를 또다시 노예로 만들려고 승냥이떼처럼 덤벼들고있습니다. 해방후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땅의 주인으로, 공장의 주인으로 되여 행복의 웃음꽃을 피우며 세상에 부럼없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여오던 우리들에게서 다시 땅을 빼앗고… 공장을 빼앗고… 기쁨과 웃음을 빼앗고 또다시 개, 돼지보다도 못한 노예로 만들려 하고있습니다. 이 철천지원쑤놈들을 어떻게 용서할수가 있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땅크병동무들!

대답해보시오. 전기련이, 한계천이, 서창득이…

소년로동으로 뼈빠지게 일하고도 <황국신민서사> 를 외워바치지 않았다고 로임도 못 타고 오히려 죽도록 매만 맞던 그 생활을 되풀이 할수 있는가, 바가지로 물 한모금 마시자는 우리 조선말 한마디를 했다고 벌금을 물고… 매를 맞고… 학교에서 쫓겨나고… 또다시 그렇게 살수가 있는가? 너무도 배고과 소구유짬에 끼운 콩알 몇알 파먹었다고 정신을 잃도록 매를 맞고 시궁창에 처박혔던 그때를 생각해보시오. 조선독립만세를 웨쳤다고 칼로 팔을 자르고, 목을 자르고 배를 갈라죽이고, 불태워죽이고, 목매달아 죽이던 나라없던 그 세월을 돌이켜보십시오. 우리 또다시 그런 노예가 되겠는가,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동지들, 저 승냥이같은 원쑤놈들이 제아무리 미쳐날뛰여도 절대로 우리를 이기지는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하고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십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를 령도하시기에 우리는 반드시 이길것이며 장군님이끄시는 내 나라에서 땅의 주인으로, 공장의 주인으로, 나라의 주인으로 영원히 세상에 부럼없는 생활을 누리게 될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새벽 원쑤놈들이 침략전쟁의 불을 질렀다는 보고를 받으시자 일군들에게 놈들이 어리석기 짝이 없소,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소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동무들, 이 얼마나 우리의 피를 끓게 하는 말씀입니까. 장군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믿고계십니다.

우리모두 위대한 장군님을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살기좋은 내 조국을 위하여, 우리의 행복한 생활을 지키기 위하여 원쑤놈들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며 용감하게 나아갑시다. 저 가증스러운 원쑤놈들을 마지막 한놈까지 격멸소탕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갑시다. 미제승냥이들에게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줍시다.》

안동수의 불같은 선동은 땅크병들의 흉벽을 쾅쾅 두드리며 멸적의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모두들 주먹을 부르쥐며 가증스런 원쑤놈들이 덤벼들고있는 저 남쪽땅을 노려보는데 안동수의 절절하고도 격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동지들, 그럼 이번에는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면 어떻게 비참한 노예로 되는가를 한마디만 더 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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