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1 장
2
(1)
밖에서는 쫙쫙 비가 내리고있었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밤새도록 멎지 않고 한본새로 계속 내린다.
금실은 김치를 담그려고 봄배추를 다듬다가 칼을 놓고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어제 자기를 만났던 문화부려단장의 실망해하던 표정이 자꾸만 눈앞에 얼른거렸다.
금실이 자기를 생각깊이 바라보던 그 눈빛…
그것은 리금실 자기에 대한 힐난이나 원망의 눈빛이 아니였다.
속을 꿍져두고 좀처럼 헤쳐보이려 하지 않는 이 괴벽스럽기 짝이 없는 못난 녀자에 대한 실망도 아니였다.
분명히 문화부려단장은 자기
금실은 울고싶었다. 좌락좌락 떨어지는 락수물소리를 들으니 더욱 괴로왔다.
문화부려단장앞에 죄스러웠다. 그리고 로복실언니에게도…
문화부려단장 안동수는 자기를 송두리채 다 드러내놓고 사는 그런형의 인간이였다.
언제인가 해준 자기가 련애하던 이야기는 얼마나 사람들을 웃기였던가.
그것은 바로 취사장에 들어와 닭곰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하던 그 새벽이였다.
공병중대의 한 전사가 충수염수술을 한 후 몸이 제때에 추서지 않아 닭곰을 손수 해먹이였던것이다.
동지를 위해서라면 자기를 통채로 다 바치는 그런 일군…
아직도 그때 들려주던 이야기가 귀에 쟁쟁하다.
《…이렇게 난 따슈껜뜨에 있는 대학으로 가서 공부하게 되였고 2년후에 중학교를 졸업한 그 녀자는 꼴호즈에 떨어지게 되였소.
그 집에서는 오빠가 둘씩이나 대학에 다니니 부득를 그 녀자는 꼴호즈에서 일하면서 아버지, 어머니도 돕고 오빠들의 뒤바라지도 해야 하였던거요. 함께 대학에 다녔으면 했댔는데… 어찌나 서운하던지… 불쌍하기도 하고… 동정이 가기도 하고… 난 토요일 오후만 되면 따슈껜뜨에서 뻐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그 사람이 일하는 꼴호즈회계실에 슬며시 들려보군했지. 따슈껜뜨에서 우리 마을까지는 200리가 잘되였는데… 그 녀자를 만날 생각에 먼줄도 모르겠더군.… 대체로 저녁 어둑어둑할 때 도착하군 하였는데…
사무실에서 그를 불러내서는 함께 마을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군 했지. 별 싱거운 말들을 다하면서 말이요. 글쎄 사랑한다는 말은 왜 안나가던지, 이번엔 꼭 그 말을 하리라 벼르면서 뻐스를 타고왔지만 정작 그 처녀만 만나면 시시껄렁한 말밖에 안나가더란말이요. 그러던 어느날 회계실에 가보니 글쎄 웬 총각녀석이 하나 와 척 앉아있는게 아니겠소. 심장이 덜컥 내려앉더군. 아차, 야단났구나. 저 친구가 혹시…
그 친구가 처녀에게 마음만 먹으면 난 끝장이란 말이요. 그 친구야 늘 처녀와 붙어있을수 있지만 난 한주일이 되여서야 한번씩 만날수 있으니 야단이 아니요.
가만보니 그 총각이 그 녀자와 뭔가 다정히 말하며 웃기도 하는데…
가슴에서 막 불이 일더군. 마침 그 총각이 회계실에서 나가자 난 창유리를 똑똑 두드려서 그 녀자를 불러냈소.
<오늘은 좀 늦었군요. >
그 처녀가 하는 말이였소. 내가 밖에 와 서서 그 총각녀석이 돌아갈 때까지 지켜서 있은줄은 모르고 말이요. 하긴 알수가 없었지.
<음, 좀 그런 일이 있었소.>
그리고는 <갑시다.> 하며 먼저 앞서 걸었소. 왜서인지 자꾸 숨이 가빠올랐소.
<아니, 어디로 가는거예요?> 하고 그 녀자가 놀라서 묻더군.
아닌게아니라 난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꼴호즈앞에 있는 오리나무숲으로 향하고있었소.
<좀 거닙시다.>
처녀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는것 같더니 조심조심 따라오더군. 난 심장이 툭툭 뛰는게 막 가슴밖으로 튀여나올것만 같았소.
하늘에 달은 밝은데… 오리나무숲속에선 풀벌레소리만 찌륵찌륵 들리고… 불덩이같은것이 자꾸 목에 걸려 말을 할수가 없더란말이요.
에이, 오늘은 무조건 말한다 하면서 난 닭알같은 침을 꿀꺽 삼켰소.
<이리나, 난, 난… 가만, 방금 회계실에 와있던게 누구요?>
하 글쎄 사랑을 고백한다는게 이런 왕청같은 말이 나갈줄이야.
글쎄 처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소. 아닌게아니라 처녀는 나를 흘깃보더니 맵짜게 묻는것이였소.
<누구말이예요?>
차 이런… 글쎄, 아닌보살하더란말이요.
에이, 이젠 다 쑤어놓은 죽이다. 그럴바엔 시원히 털어놓고 물어보자하고 결심했지.
<방금 회계실에 와있던 그 남자 말이요. 멋있게 생겼던데…>
내가 이죽거리는 투로 말하자 처녀는 그제야 들장났다고 생각했는지 흥- 하고 코소리를 내더군.
<잘생기고말고요.>
<그가 누구요?>
<내가 그걸 왜 대주어야 해요?>
<그거야… 내가 동무를 좋아하니까.>
<피.>
<정말이요. 그가 누구요?>
<몰라요. 안 대줄래요>
<뭐?>
나는 더 참을수가 없었소.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한걸음 다가서는데 하, 아 글쎄 나비처럼 홀짝 달아나는게 아니겠소.
죽을기를 쓰고 따라갔지.
<정 안대주겠소?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딜걸…>
<말 안할래요. 몰라요.> 하면서 그 처년 오리나무숲속을 어찌나 날쌔게 빠져달아나는지… 순간 한가지수가 생각났소.
<아이쿠-> 하며 꼬꾸라졌지. <아-아-아-> 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내가 일어설념을 안하니 깔깔거리며 달아나던 처녀가 오똑 서서 한참 쳐다보더군. 그러다가 겁이 덜컥 나는지 발볌발볌 다가오더란말이요.
<왜 그래요, 어디 다쳤어요?>
하하하 끝내 성공했단 말이요.
와락 붙안았지.
<이래두? 하하하, 이리난 어디 못가. 내 사람이야.> 하면서 맘껏 웃었지. 처녀는 그제야 품으로 파고들더군.
<에이, 질투쟁이, 난 몰라…> 하면서…
가만, 흠- 흠- 이거 무슨 냄새가 난다. 밥이 타지 않소?》
문화부려단장의 련애담을 입까지 헹하니 벌리고 듣고있던 로복실이가 갑자기 《어마나!》하는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밥가마에 달려들어 황황히 뚜껑을 열어보더니 아궁에서 불붙는 장작을 끄집어낸다, 찬물사발을 밥가마속에 넣는다 하며 바삐 돌아갔다.
《허, 이거 속까지 다 털리웠는데 밥은 가마치밥을 먹게 되였군.》
안동수가 랑패라는듯 입을 쩝쩝 다시자 국가마의 불조절을 하던 로복실이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걱정마십시오. 남자들은 가마치를 먹어야 좋답니다. 뭐가 커진답니다.》
《뭐요, 하하하. 복실아주머니가 아주 걸작이구만. 그럼 난 매일 가마치밥만 주시오.》
《알았습니다. 호호호.》
로복실이가 벌떡 일어서며 군대처럼 손을 번쩍 올려 거수경례를 하는 바람에 둘은 즐겁게 웃었지만 금실은 아쉬움을 금할수 없었다. 부려단장의 련애담을 더 들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인차 결혼을 했습니까? 그 총각은… 어떻게 되였습니까?》
다시 주저앉아 국가마쪽에 불을 돌려놓은 로복실이가 끈덕지게 묻는 말이였다.
《그 총각은 말이요. 사실은 그 처녀의… 아니, 그건 아무래도 후에 해야 할것 같군. 이 닭곰이 다 되였소. 닭곰까지 태울수야 없지. 그렇지 않소?》
안동수가 리금실을 돌아보며 한눈을 찡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