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1 장
1
(2)
앞에는 일곱살잡이맏딸이, 다음엔 다섯살잡이아들이, 그뒤에선 세살잡이막내딸이 깡충깡충 뛰여온다. 그뒤로는 안해와 어머니가…
안동수는 갑자기 코허리가 시큰하고 눈굽에 물기가 핑 돌았다. 그러니 려단장이 차를 가지고 평양역까지 마중나갔다가오는 모양이였다.
《아버지!》
아이들의 명랑한 부름소리… 아, 얼마나 듣고싶던 목소리들인가. 내 살붙이들… 가슴설레이게 하는 그 목소리…
《얘들아!》
안동수는 한걸음 나서며 두팔을 활짝 벌렸다.
《어서 오너라, 내 귀염둥이들아. 에쿠, 이거 내 똘똘이들이 이젠 수태 컸구나, 응? 허허허.》
애들을 한가슴에 그러안고 볼을 비비는데 안해가 웃음을 함뿍 담고 아미를 숙여보인다. 그뒤에는 어머니가 흐뭇한 표정으로 서있다.
안동수는 어머니에게 《먼길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건강은 좀 어떠하십니까?》하며 오는 길에 있었던 일들을 알아보고나서야 금덕이 생각이 나서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저애가 바로 우리 금덕이…》
순간 안동수는 눈이 커졌다.
왜서인지 금덕이가 어머니를 보고도 반겨 달려나올 대신 오히려 눈을 올롱하게 뜬채 비실비실 뒤로 피하고있기때문이였다. 어머니가 아니라 마치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이기라도 한듯 겁이 가득 실린 표정이였다.
《오빠야, 울엄마 언제 올가. 나 어제밤에도 또 꿈을 꿨다. 글쎄 엄마가 날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곱게 따주지 않겠어.》하고 늘 엄마 소리만 하며 그처럼 눈물겹게 그려보군 하던 저애가 왜 이제 와서 저러는지 알수가 없다.
어머니가 성급히 다가가며 기쁨과 아픔이 함께 실린 목갈린 소리로 불렀다.
《얘야, 금덕아, 내가 왔다. 내가 네 어미다.》
금덕은 여전히 뒤걸음질치며 완강하게 도리질을 한다. 성이 난듯 부르짖는다.
《아니야, 아니야, 울엄마가 아니야.》
마침내 어머니가 우뚝 멈춰섰다. 쓰러지듯 무너지듯 그자리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그래, 난 네 엄마가 아니다. 젖먹이를 떼버리고 달아난게 무슨 엄마란 말이냐. 옳다. 난 네 엄마가 아니다.》
안동수는 너무도 억이 막혀 금덕의 어깨를 안타까이 잡아흔들었다.
《금덕아, 너 왜 이러니. 응? 그건 엄마탓이 아니야. 나라를 빼앗긴탓에 그렇게 된거야. 우릴 지켜줄 나라가 없어서, 이국땅에서마저 같이 살수가 없어서 그렇게 헤여져 살지 않으면 안되였던거야. 이게 바로 나라없는 민족의 불행이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슬픔이란말이다.》
그 말에 금덕이가 주춤 멈춰섰다. 눈을 가늘게 쪼프리며 엄마를 쳐다본다. 점점 눈이 커지더니 갑자기 그 큰 눈에 눈물이 핑- 실려오른다. 가슴이 세차게 오르내리고 입술이 파들파들 떨린다. 《엄마, 내 엄마가… 그럼…》하는 소리가 떨리는 입술사이로 새여나온다. 몸을 떨며 발볌발볌 오열을 하는 어머니에게로 다가가다가 마침내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엉엉 소리내여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차마 그 광경을 볼수가 없어 고개를 외로 돌리며 눈들을 슴벅거렸다.
안동수도 세차게 들먹이는 동생의 동실한 어깨를 내려다보느라니 눈굽이 쓰려와 견딜수가 없었다.
《애야, 금덕아, 어디 네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꾸나. 내 딸아.》
어머니의 목소리도 눈물에 꽉 잠겨있었다. 가까스로 일어나 딸에게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다가가다가 그만 비칠거렸다. 그 주름진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되였다.
《애야, 이 못난 에미를… 용서해… 주려마… 응? 내 딸아!》
《엄마!》
마침내 금덕이가 발딱 일어서더니 총알처럼 달려가 엄마의 가슴에 콱 안겨들었다. 엄마의 가슴에 파고들며 주먹으로 엄마의 가슴을 치며 왕왕 울었다.
《엄마야, 엄마야, 내 엄마야, 내 엄마야.》…
《부려단장동지! 부려단장동지!》
갑자기 밖에서 누구인가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안동수는 버릇처럼 화닥닥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그제야 그는 지금껏 침대에 누워 꿈을 꾸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일요일이여서 금덕이가 새로 지은 집으로 와서 또 쓸고닦고 하리라는 생각을 하다가 깜박 잠들었댔는데 아마 그래서 가족이 오는 꿈을 꾼 모양이다. 금덕이는 일요일만 되면 집으로 달려오군 했다. 지금껏 제집이 없이 살아온 금덕이여서 그처럼 집이 소중하고 지금껏 헤여져 살며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던 엄마와 함께 모여살 집이여서 그처럼 분곽처럼 꾸리고싶을것이다.
안해에게도 집이 마련되였으니 이젠 떠나라고, 려단장이랑 여기 사람들이 가구며 부엌세간이며 다 갖추어주어 사람만 오면 당장이라도 들어가 살수 있으니 갈아입을 옷가지와 세면도구나 가지고 떠나면 된다고 편지를 보낸 뒤여서 그런 꿈을 꾸었는지…
하긴 이젠 편지를 보낸지 두달이 거의 되여오니 조만간에 도착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면 자기도 남들처럼 한가족이 모여 오붓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할수 있을것이다.
안동수는 달콤한 꿈에서 깨여난것이 아쉬워 한번 도리머리를 하고는 침대에 앉은채로 두손으로 세면을 하듯 얼굴을 비비고나서 일어나 문쪽으로 향했다.
《누구요?》
《부려단장동지! 련락병입니다. 폭풍입니다. 전쟁입니다.》
《뭐라구?》
안동수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그만 흠칫하며 주춤 서버렸다. 지금까지 심신이 푹 잠겼던 꿈과는 전혀 상반되는 폭풍이라느니, 전쟁이라느니 하는 엄청난 낱말의 의미가 인차 뇌리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도 내가 꿈을 꾸고있는것이 아닐가?)
안동수는 다시한번 세차게 도리머리를 했다.
(설마…)
문밖에서는 여전히 다급해하는 소리가 났다.
《부려단장동지, 전쟁입니다. 폭풍입니다. 전쟁입니다.》
련락병은 너무도 뜻밖의 정황에 당황해서인지 같은 소리만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