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회)

제 2 편

전쟁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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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잠을 잘 때 꿈을 꾸는것은 인간본능의 생리적인 현상이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남성이든 녀성이든 설사 그가 한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이름난 대통령이거나 심심산골에서 논밭에 엎드려 땀흘리며 호미로 김을 매는 이름없는 농부라 할지라도 살아 숨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면서 제나름의 꿈을 꾸기마련이다.

아마도 글을 조금이라도 쓸줄 아는 사람이 1950년 6월 25일,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이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대대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한 그 일요일 새벽에 우리 인민들이 평화로운 휴식의 하루를 즐기기 위하여 꾸었던 아름답고도 벅찬 꿈들을 모두 들여다볼수만 있다면… 장담하건데 기막히게 재미나는 책들을 수십권은 잘 써냈을지도 모른다.

전쟁열에 미친 원쑤놈들이 38°선전역에서 전호턱발홈에 군화끝을 박고 독기어린 눈들을 헤번뜩이며 공격신호만을 기다리고있던 그 시각 안동수는 자기 침실의 침대에 누워 달콤한 꿈을 꾸고있었다.

려단장인 류경수가 직접 주관하여 사동산기슭에 아담하게 새로 지은 집으로 아득히 먼 저 우즈베끼스딴의 따슈껜뜨에서 어머니와 아들딸들을 데리고 안해가 찾아오는 꿈이였다. 부엌에서는 아침부터 평양의학전문학교에 다니는 누이동생 안금덕이가 연분홍달린옷에 함박꽃을 수놓은 하얀 앞치마까지 두르고 신이 나서 지지고 볶고 끓이며 점심준비를 하고있었다.

김을 쏘여 발가우리하게 상기된 동실한 얼굴에는 웃음이 남실거리고 작고도 예쁜 앵두같은 입술사이로는 맑고도 경쾌한 노래소리까지 흘러나온다. 먼 이역땅에서 살다가 고생스레 조국으로 오는 어머니와 형님과 조카애들에게 제손으로 지은 음식을 대접하겠다는것이다.

젖먹이때 이역땅에 떨구어두고 가슴을 치며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던 어머니가 저렇게 다 자란 딸이 지성껏 지어올리는 밥상을 받을 때 그 마음이 오죽하랴싶다. 생사조차 모르고 눈물속에 그려보기만 했던 어이 딸의 17년만의 상봉은 생각만해도 가슴이 쩡해지고 눈물이 나온다.

마당에서는 웃동을 벗어제낀 군대속옷차림의 한 청년이 코김을 힝힝 불며 도끼로 장작을 패고있다. 아름드리 통나무가 한번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쩍쩍 갈라져나간다. 자세히 보니 평양학원때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달리 높아 안동수의 눈에 들었던 송억만이다. 어느 보병부대 대대장으로 배치받아 갔다고 했는데 여기에 왜 와서 장작까지 패고있는지 영문을 알수가 없다. 안동수는 고개를 기웃했다.

(저 친구가 여긴 왜 왔을가?)

《아이, 땀을 좀 들이고 쉬염쉬염 하세요.》

부엌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금덕이가 물사발에 물을 정히 떠들고 나온다. 송억만이 처녀를 돌아보더니 허리를 펴며 빙그레 웃는다. 정겨운 눈길로 보름달같이 환한 처녀의 얼굴을 쳐다본다. 수집은듯 얼굴을 살짝 붉히며 돌아서는 처녀.

(아하, 저런 흥클한 친구라구야. 그러니 우리 금덕이가 마음에 들어서?…)

그들을 쳐다보던 안동수는 자기도 모르게 허허 웃었다. 저 친구가 부디 오늘같은 날 우리 집에 와서 나무를 패는게 다 쪼간이 있는것같다. 하긴 이 오빠 모르게 둘이 무슨 약속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안동수는 마음이 흐뭇하기만 했다.

우리 금덕이에게 저런 멋쟁이총각이 생기다니…

중국에서 데려내올 때만해도 여윌대로 여위여 줌안에라도 들듯 체소하기 그지없던 애가 2년반남짓한 기간에 키도 몰라보게 쑥 빠지고 몸도 좋아지고… 금시 이슬머금고 피여나는 한떨기 수선화처럼 싱싱해지고 아름다와졌다.

얼마나 총명하고 이악한지 벌써 평양의학전문학교 학생이 되였다. 일솜씨 또한 어찌나 깐지고 여무진지 모른다. 태여나 지금껏 일에 치여난데도 있겠지만 워낙 눈썰미가 있고 손이 재여 부엌일을 해도 두몫, 세몫이요, 아무 일을 해도 남자들 찜쪄먹는다. 안동수 자기가 평양학원에서 교원을 할 때 저 송억만이 외국어를 배우겠다고 휴식일날 찾아오면 안금덕이가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군했는데 그는 몇술 들어보고는 혀를 차며 엄지손가락을 내흔들군 했었다. 《교관동지, 누이동생의 음식솜씨가 정말 보통이 아닙니다. 내 지금껏 먹던 음식중에는 최고입니다, 최고. …》

그때부터 저 송억만이가 별로 자주 찾아온다 했더니…

(하긴 저런 친구라면 우리 금덕이를 맡길만도 하지. 저 친군 우리 금덕이를 일생 행복하게 해줄거야. 강원도 김화출신이지.)

머슴군의 아들로 태여나 어려서부터 광산에서 소년로동을 하면서 별의별 고생을 다했다고 했었다.… 의리가 있고 정의감이 강하고…

동생 금덕이는 아버지, 어머니 얼굴도 모르고 지주집머슴으로 모진 천대와 구박속에 기를 못펴고 살아왔다. 찬바람이 윙윙 불어대는 추운 겨울에도 다 해진 단벌옷을 입고 외양간에서 거적때기를 덮고 홀로 긴긴밤을 얼고 떨어야 했던 그였다.

그는 제일 부러운것이 지주집에 천정이 닿게 가득가득 쌓여있던 비단이불이라고 했었다. 이제 집이 생기면 비단이불부터 해놓자고 했다. 제놈들은 덮지 않고 가득 쌓아두고서도 금덕이 자기에겐 거적때기밖에 주지 않던 지주놈이 보면 눈깔이 휘딱 뒤집히게 보란듯이 멋있는 비단이불을 해놓고 살자는것이다.

안동수는 송억만에게 이렇게 부탁하고싶었다.

《억만이, 우리 금덕이를 남들이 부러워하게 사랑해주라구.》

아니, 저 억만이는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금덕이를 행복하게 해줄거야. 우리 금덕이가 얼마나 고생해왔는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억만이가 아닌가. 저 사람은 고생한 그만큼 금덕이를 더 사랑해주기 위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을것이다.

밖에서 승용차소리가 났다.

대문이 열리더니 뜻밖에도 려단장인 류경수가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섰다.

《자, 부려단장동무, 여기 누가 왔나보우.》

놀라서 내다보던 안동수는 눈이 둥그래졌다. 뜻밖에도 그처럼 보고싶던 귀여운 아들딸들이 차에서 내려 막 뛰여오고있었기때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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