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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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령님께서는 황해남도를 향해 떠나시면서 농업상을 수행성원에 포함시키시였다.

그이께서 현지지도의 나날에 도안의 한 협동조합을 찾으시였을 때였다. 누가 조직했는지 조합원들이 리당위원회 사무실앞에 나와 수령님을 환영하였고 나이많은 할머니가 큰절을 드리였다.

그이께서는 군중들에게 답례하시며 군당위원장에게 이 추운 날에 누가 이렇게 조합원들이 떨쳐나와 환영하도록 조직했는가, 빨리 헤쳐가게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이곳 관리위원장은 해방후 공산당에 입당했고 토지개혁에도 참가했으며 전쟁시기에는 정치공작대로 전라남도 광주까지 나갔다가 곡산빨찌산에서 싸웠다.

수령님께서 지난해에 조합원 호당 알곡과 현금분배정형을 알아보시고 현금분배가 적다고 말씀하시자 관리위원장은 남새를 많이 심어 수입을 좀 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니 금년에는 현금분배가 많이 돌아갈수 있겠구만.》하시며 수령님께서는 그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이어 올해알곡생산계획과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방도들에 대하여 리당사무실에 들어와 앉아있는 조합의 관리일군들 및 초급일군들과 한동안 진지하게 의논하시고 관리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이 조합에 농산기사가 몇명이요?》

《농산기사가 한명이고 기수는 세명 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안경을 끼시고 군당에서 사전에 작성하여 올린 자료를 보시였다.

《인숙동무가 누구요?》

《접니다.》

젊은 녀성이 일어섰다.

《여기에 언제 왔소?》

《1960년 봄에 농업기술자들을 현지에 파견할 때 왔습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소?》

《원산농대 농업경영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여기 오기전에는 어디에 있었소?》

《상업성에 있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의아해하시였다.

《농업대학졸업생이 뚱단지같이 상업성에는 왜 가있었소?》

녀기사는 농업경영학과를 나왔기때문에 수매량정성에 배치받았다가 기구를 통합할 때 상업성에 갔댔다고 설명드리였다.

《그랬댔구만. 여기가 어떻소?》

《좋습니다.》

《평양에는 얼마나 있었소?》

《일곱달 있었습니다.》

《그러면 평양보다 여기에 더 정이 들었겠소. 그러니 좋다고 할수 있지.》

그이께서 소탈하게 웃으시였다.

《잘했소. 농촌에 진출해야지.

농업대학을 나올적에야 농촌에 나가자고 했겠지 평양에 앉아서 농사를 해먹자고야 안했을테지.》

치하를 받은 녀기사는 얼굴을 붉히였다.

《나이는 몇살이요?》

《스물여섯살입니다.》

《시집을 갔소?》

녀기사가 부끄러워하며 머리를 들지 못하는데 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남편은 고등농업학교 교원이라고 말씀드리였다.

《아주 훌륭하오. 부부가 다 지식으로 농업에 복무하고있구만.》

수령님께서는 농민들도 다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시며 농촌문화혁명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리에서 인민경제학원에 몇명이나 갔는가, 졸업후에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 유자녀학원에는 몇명이나 갔는가 하는것들을 알아보시고 유자녀문제를 잘 해결하였다고 치하하시였다.

《내가 몇년전에 신천에 왔을 때는 유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있었소. 이제는 잘 먹이고 옷도 잘 입혀서 공부도 시키고있소.》

기쁨을 금치 못하시며 참가자들을 바라보시다가 그들이 다 깨끗한 새 솜동복을 입고있는것이 만족스러워 물으시였다.

《솜동복들이 다 있소?》

《예, 조합원들에게 눅은 값으로 다 팔아주었습니다.》

《됐구만, 됐소.》하시며 한시름 놓으시는 수령님의 심중을 참가자들은 다 알수 없었다.

선도리와 원화협동조합에 가시였을 때 덧옷이나 기운 헌 솜옷을 입고 일하는 조합원들을 보시며 얼마나 가슴이 쓰리시였던가! 그이께서 경공업성일군들과 상업성일군들에게 그리고 원화리에 가시여서 군당위원장에게 농민들에게 솜동복을 공급해주지 못하고있는 문제를 가지고 엄하게 추궁하고 비판도 주시였지만 사실 나라의 사정이 어려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문제로 되는것은 농민들을 대하는 일군들의 태도와 립장이였다. 농민들이 지은 쌀로 밥을 지어먹으면서도 농촌을 홀시하고 농민들을 업수이 여기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도당위원회에서 올린 자료들을 보시며 리당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작년에 이 조합에서 로력이 얼마나 조동되였소?》

《34명이 조동되였습니다. 12명은 건설대에 갔고 9명은 학교에 갔으며 그밖의 인원은 시집간 처녀들입니다.》

군당위원장이 보충하여 말씀드리였다.

《군적으로는 1천명이 줄었습니다. 주로 처녀들이 도시와 공장에 시집갔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다시 안경을 쓰시고 자료를 한동안 보시고는 안경을 벗으시였다.

《이것은 심중한 문제요.》

그이께서 앞줄에 앉아있는 한룡택을 일별하고 말씀하시였다.

《나와 같이 온 농업상동무가 여기 앉아있는데 나는 농업일군들에게서 그 문제와 관련한 의견을 듣고 이내 대답을 주지 못했소.

공업로력도 긴장하기때문이였소. 그래서 황해남도에 나와보는 기회에 구체적으로 알아보려고 먼저 이러한 자료를 요구했고 오늘 동무들과 담화도 하고있는데 로동행정사업이 잘못되였다는것이 판명되였소.

군소재지나 큰 도시에는 사람이 증가되는 반면에 농촌로력이 줄어들고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로동행정사업이 잘되지 않았다고 다시 강조하시면서 이것은 로동성이 농촌을 중시하지 않은데로부터 생겨난 현상이라고 지적하시였다.

《농촌을 중시해야 하오. 우선 로력의 류출을 막고 현존로력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겠소.》

리민청위원장에게 조합에 민청원이 몇명이고 남자와 녀자의 인원수는 얼마인가고 알아보시였다. 대다수가 처녀들이였다.

《남자로력이 적소. 앞으로 로력을 뽑으려면 농촌에서 뽑지 말고 공장에서 뽑으시오.

농촌에서 도시로 간 사람이 군적으로 1천명이면 도적으로 19개 군이니까 1만 9천명이나 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수령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내가 농업부문의 지도일군들에게도 말했지만 사실은 로력이 적어도 기계화를 하면 해결됩니다.

로력을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기계화할 생각을 하시오. 기계화만 하면 이 로력을 가지고도 됩니다. 기계를 더 달라고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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